‘無爲而治’와 ‘君君臣臣 父父子子’
예전에 ‘無爲而治(무위이치)’와 ‘君君臣臣 父父子子(군군신신 부부자자)’란 이야기를 들려드린 적이 있었다. 無爲而治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해도 다스려진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으로 능히 다스린다는 뜻이다. 군주의 덕이 커야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는 이야기이니 순임금이 그러했듯 후대의 군주들은 도덕적 모범으로 덕을 쌓아야 한다는 날카로운 소리다. 아무튼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아랫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고 참여하는 것이 無爲而治이다. 만백성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알고 역량과 태도를 갖추는 것이니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국가적인 통치형태가 될 것이다.
無爲而治가 가능하게 하는 정신은 “君君臣臣 父父子子”일 것이다. 덕이 높고 국민들 안위를 우선 생각하는 聖王(성왕) 아래 충성심이 가득한 賢臣(현신)들이 슬기롭게 조정을 이끌며, 농부인 아버지는 들판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가정에서는 아버지로서 사랑으로 아이를 가르치며, 아이는 자식 된 도리로 부모에게 효를 다한다. 온 국민이 본인 지위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니 無爲而治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君君臣臣 父父子子’가 되려면 ‘권한위양’과 ‘적재적소’가 뒤따라야 하니 無爲而治의 뜻같이 자연스러움으로 능히 다스린다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자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사마천 사기의 첫 페이지는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논의로 시작된다. 사마천이 분류한 리더십 등급은
1등급: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정치 즉 순리의 정치
2등급: 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정치, 즉 백성을 잘 살게 하는 정치
3등급: 백성이 깨우치도록 가르치는 정치, 즉 훈계형 정치
4등급: 백성을 일률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정치, 즉 위압정치
가장 낮은 등급은 “가장 못난 정치란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다.”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순리의 정치’는 쉬운듯 하지만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어느 조직이나 리더는 리더십을 발휘해 조직을 장악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물론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업무능력은 물론 리더십도 가다듬어야 함은 물론이다. 현대 학자들은 학술적으로 접근해 서번트리더십, 감성리더십, 카리스마리더십 등 다양한 리더십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리더십은 리더의 人性(인성)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황희정승을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의 표본이라 하고 부하의 고름을 빨아낸 오기 장군은 일찍이 서번트리더십을 실천했다 하니 어느 유형의 리더십이 가장 바람직하고 최신의 리더십인가? 라는 논의는 생산적이지 못하다.
발휘되는 리더십은 리더의 인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 리더십이 발현되기에 특정한 한 가지 리더십이 최고라고 꼽을 수 없으며 구성원 성향과 상황에 맞게 리더십을 구사하는 리더가 최고의 리더가 될 수밖에 없다. 인성은 흔히 성격(性格)과 같은 의미로 간주되는데, 성격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나 품성’으로 정의되기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폭압적 품성의 리더에게 서번트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고 독선적 리더에게 소통의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리더가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그런대로 조직이 굴러가고 성과가 나오는 것은 리더십의 영향이라기보다 ‘조직 생리’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듯하다. 또한, 잘못된 인성의 리더가 포지션파워만으로 조직을 이끄는 시대는 막을 내렸으며 구성원들도 변했다. 소위 MZ세대와 업무해야 하는 리더들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2500년 전 공자의 시대나 2100년 전 사마천의 시대에서 강조한 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여기에서 ‘자연스러움’ 이란 무엇일까? 강요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내 자신이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무릇 임금은 덕을 갖고 있어야 자연스럽고, 신하들은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며 고개 들고 갑질 아니해야 자연스럽고, 농사짓는 아비는 땅 파먹고 사는데 충실하지 사고파는 투기에 능하지 않아야 자연스럽고, 자식은 개망나니가 아니라 효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2500년 전 공자의 시대에서나 통할 이야기가 현대사회에서도 적용될 것인가? 4.7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을 이야기하는 평론가가 있었다.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한다는 뜻으로, 국가와 정치는 백성의 신뢰로부터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어가 이 시대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논어는 더 이상 고전 대접을 받지 못할 텐데 논어는 앞으로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모든 정치인뿐 아니라 리더들이 두려워해야할 단어는 ‘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이다.
토론할 때 시간이 흐르며 사안의 본질을 벋어나는 경우가 있기에 ‘리더십의 본질’을 리마인드할 필요가 있다. 리더와 구성원들 간의 소통을 통해 특정 목표를 정해두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도록 하는 영향력이자 설득력이 리더십 이라고 한다면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상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설득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즉, 강제가 아닌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리더인 것이다. 인성은 바꾸기 어렵지만 유능한 리더라면 구성원의 성향과 특징,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고 연구한다. 내 몸 하나 제대로 추스르기 힘든 세상이지만 리더는 심리학책이라도 꺼내 구성원의 성향을 연구해야 한다.
사회의 근간이 되어가는 MZ세대는 누구인가? 최근 IT업계와 전자업계의 오너들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예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임금인상을 했는데도 불만의 목소리가 많고 이직을 이야기하니 뾰족한 해결방법을 찾기 어렵다. 국내 최고의 회사에 근무하고 대우를 받으면서도 내가 노력한 대가가 충분치 않다는 불만과 당면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MZ세대이다. 블루컬러 노동자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동차업계에도 젊은 사무직, 연구직 직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빨간 머리띠의 노조가 아니라 스마트한 노조가 되어야 한다.’ 이들도 MZ세대이다.
정부에서 대기업 단체급식시장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겠다고 하니 그들의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게 들린다. ‘공정위가 식단까지 책임지나?’, ‘급식이 좋다고 해서 입사를 했는데.’, ‘이제 밥 먹는 것까지 정부에서 간섭하나?’ 이들 역시 MZ세대이다. 벌써 리더들의 머리가 따끈따끈해지기 시작했다.
MZ세대는 1980년부터 199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M세대, Y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MZ세대는 2019년 기준 약 1700만 명으로 국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한다. MZ세대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소유보다는 공유를, 상품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특징을 보이며,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나 특별한 메시지를 담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Meaning Out (미닝 아웃)’ 소비를 하기도 한다. 또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과시하는 ’FLEX(플렉스)’ 문화를 즐기며 고가 명품에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경향도 있다. 이들은 야근, 주말근무 많고 노력에 비해 연봉이 적고 소통이 적은 군대식문화와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기업을 싫어한다.
과연 통제 불가할 것 같은 이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MZ세대는 야근, 주말근무 많고 노력에 비해 연봉이 적고 소통이 적은 군대식문화와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기업을 싫어한다.’ 했으니 반대로 하면 된다. 그런데 MZ세대가 싫어하는 기업문화를 보면 그 이전세대인 X세대, 산업화세대도 그런 기업을 싫어했으므로 생소한 것은 아니다. 다만 회사가 시스템적으로 따라가지 못할 뿐이니 심정적으로는 MZ세대가 옳다고 생각해야 정상이다.
야근, 주말근무를 좋아하며 소통적은 군대식문화와 휴가 없는 것을 좋아한다면 당장 퇴사하여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이 좋다. 대다수 사람들은 MZ세대와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므로 소통을 늘린다면 상호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民無信不立’상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君君臣臣 父父子子’를 위해서는 지시일변도가 아니라 권한을 위양해주고 잠시 기다리며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권한 위양은 책임감고취와 연결되어 야근과 주말근무는 지시하지 않아도 되며 창의성 있는 결과물은 덤이다. 노력과 성과에 비례하는 보상이 뒤따라 준다면 2500년 전 이론인 ‘無爲而治’가 완성될 수 있는데 이는 리더의 몫이다.
無爲而治가 가능하게 하는 정신은 “君君臣臣 父父子子”이며, ‘君君臣臣 父父子子’는 ‘권한위양’과 ‘적재적소’가 뒤따라야 한다. 이 상태가 된다면 ‘소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자연스러운 ‘순리’는 쉬운듯 하지만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 오랜만에 만난 후배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좋은 조직을 만들것인가 였으며, 리더로서의 자질부족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조직과 자질부족을 걱정하고 있는 후배를 보고 안도가 되었다. ‘회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쉽게 망하지 않겠구나. 주식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