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성찰해서 고쳐지는 존재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뿐 아니라 산과 들의 짐승들도 먹이주고 보살펴 주면 고마움을 알기에 따르고 감사표시를 한다. 구덩이에 빠진 아기 코끼리를 구해줬더니 고마움을 표시하는 장면은 코끼리 지능이 높으니 가능하다 해도 물에 빠진 아기사슴을 커다란 애완견이 구해줬더니 다음날 어미사슴과 아기사슴이 인사하러온 장면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람은 이해득실(利害得失)에 따라서 판단하고 움직이므로 은혜를 베풀어도 배신하니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경계의 의미로 ‘연장은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배신한 전력이 있는 사람은 다시 배신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머리 검은 동물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속담과 같은 뜻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해득실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담이라는 것은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진리는 아니더라도 警句(경구)로서 손색 없어 보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선별해서 쓰면 된다고 하지만 궁예의 관심법을 쓰지 않는 한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 어렵다. 사람을 충원할 경우에는 평판과 추천으로 인선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출한 능력자보다 대인관계 좋은 사람을 선호한다. 이는 배워서 익힐 수 있는 업무능력보다 타고난 본성인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모든 부서원을 내 마음에 맞는 직원들로 채우거나 고칠 수 없으므로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 성과를 거두려면 用兵術(용병술)과 權限委任(권한위임) 기술이 필요하다. 用兵術과 權限委任 기술은 조직 관리의 기본기술이지만 야구 번트만큼 어렵다. 야구에서 제일 쉬워 보이는 기술이 번트지만 프로들도 실패해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있듯 조직 관리 기본을 무시하면 조직 흥망이 좌우될 수 있다.
금전사고 전력이 있거나 우려가 있는 인물은 돈과 상관없는 부서에 배치하고, 대인관계가 뛰어난 인물은 영업부서로, 후배들이 따르는 인물은 많은 인원을 관리해야 하는 현장부서로 배치하면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연하고 기초적인 인사원칙과 用兵術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좋아하는 직원들은 모든 면에서 예쁘게 보이고, 싫어하는 직원들은 무엇을 해도 밉게 보이는 편향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부서원들 문제가 아니라 리더 본인 문제로 편향된 시각은 인력활용도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무엇을 해도 밉게 보이는 직원들 또한 리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접게 되며 반대세력으로 돌아선다.
用兵術과 같이 쉬우면서도 매우 어려운 기술이 權限委任이다. 모든 면에서 해박하다고 좋은 리더 또는 존경받는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無爲而治(무위이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했는데 국가뿐 아니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칙을 지키는 리더가 중심잡고 꼿꼿이 앉아 적재적소와 권한위임을 시행했다면 리더 역할을 충분히 이행한 것이다. 이제는 조직원에 대해 믿음을 갖고 성과창출에 대한 기다림만 필요할 뿐이다. 성급한 업무개입, 과도한 코칭은 구성원들의 창의와 적극성을 고사시키고 활력 잃은 죽은 조직으로 변화시킨다. 조직이 흔들릴 정도로 업무가 잘못될 기미가 보인다면 개입해야겠지만 간부와 직원들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과도한 코칭은 의존성을 키우고 구성원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창의와 적극성을 말살한다.
無爲而治만 하고 있기에 너무 심심하다면 일하려 하지 말고 같이 놀아주고 칭찬하고 희망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시대가 변해 칭찬하는 방법도 변화했겠지만 더운 날 야외 작업하는 직원들에게 얼음생수 몇 개 갖고 가서 ‘동작 그만, 1시간 휴식’을 선언하고 차가운 물 한 모금을 같이 마시기만 해도 충분하다. 야간작업을 위해 저녁 먹는 직원들을 식당에서 만났다면 슬그머니 밥값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너무 물질적인가? 아니다. 얼음생수가 얼마나 한다고? 물론 얼음생수와 저녁식사는 유대감을 이어주는 물질이기는 하지만 ‘물질’이라기보다 ‘마음’에 가깝다.
리더는 과도한 코칭보다는 소위 ‘Vision'이라 하는 조직의 미래 모습과 조직원들의 미래를 이야기 해줘야 한다. 현재에 충실한 구성원들에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해 주는 것은 리더의 의무이다. 물론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한다. 리더는 후배들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하며, 미래를 보여주므로 써 후배들이 변화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상황에 맞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動因(동인)을 제공해야 한다.
군대는 목적상 고쳐 쓰는 것이 허용된다. 어리바리한 총각을 살벌한 눈빛의 전투머신으로 고치는 곳이 군대이며 변화시키는 결정적 動因은 다름 아닌 ‘선착순’이다. 아무리 무서운 조교라도 ‘선착순’이라는 動因이 없다면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
군대를 보면 사람은 고쳐 쓴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지만 예비군들을 보면 틀린 표현 같다. 눈빛이 살아있는 정예군인 이라도 제대신고를 마치고 군부대 정문을 지나자마자 모자 삐뚜루 쓰고 말 안 듣는 예비군으로 변한다. 예비군복을 입혀놓으면 저질스러운 노상방뇨와 기댈 곳만 있으면 잠을 자는 무기력한 홈리스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을 보면 강제에 의한 사람개조는 순간적임을 알 수 있다. 예비군들에게 ‘조기 퇴근’이란 動因을 주면 현역과의 어떤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절대 강군으로 변모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물론 動因이 사라진다면 원래의 헐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도 순식간이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고쳐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성찰해서 고쳐지는 존재’라고 한다.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은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요즘시대와는 맞지 않고 인간을 비인격화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겨 요즘 세태와는 맞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用兵術도 ‘고쳐 쓰는’에 버금가는 단어지만 월급이라는 대가와 인간의 노동력을 교환하는 측면에서 보면 用兵術은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는 기술, 用力術’로 해석하면 되겠다.
집사람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딱 맞아.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빨래통을 보면 양말은 돌돌 말려져 있고 와이셔츠 소매는 둥둥 접어져있으니 빨래하는 것보다 풀어내는 것이 더 힘들어. 어쩜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일관성이 있을까. 그래도 여름이 되니 반팔와이셔츠 입어서 좋네. 아마도 양말 돌돌 마는 것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못 고칠 거야.’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집사람이 動因을 제공했으면 좋겠다. ‘용돈 2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