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마세요, 피나요.”,.., 이번에는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온갖 병마에 쓰러졌다가 오뚝이처럼 일어나셨던 어머니께서 또다시 외상성 뇌출혈과 고관절 및 척추골절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대장암, 당뇨병과 저혈당 쇼크, 부정맥, 갑상선과 신장 기능 저하, 고혈압과 뇌출혈, 갈비뼈골절..., 온갖 병에도 꿋꿋하게 버텨 오신 어머니는 올해 89세, 늙으셨다고 하기보다 거친 風波(풍파)에 닳아 너덜너덜해진 작은 어선의 깃발처럼 낡으셨다.
1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일시적으로 말을 못하게 되셨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허둥지둥 낚싯대를 접고 나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열차 안에서 불길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또다시 거짓말처럼 일어나셨다. 오른쪽 손발에 남은 약간의 장애, 단어구사력이 떨어지는 언어장애에도 혼자 식사도 하시고 식후 헬스 자전거를 타실 수 있었다. 몸 상태를 보면 요양병원에 입원하셔야 했지만 펜데믹으로 인해 병원이 더욱 위험할 수 있어 요양보호사와 형제들이 수발을 들었고 어머님 의지도 강했다.
두 번째 뇌출혈, 고관절과 척추 골절, 의사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豫後(예후)가 좋지 않다. 형제들과 상의해 어머니 묘 자리를 가족묘로 바꾸는 리모델링을 급하게 진행시켰다.
30년 전 미국에서 교육 받고 있을 때 큰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귀국 후 성묘 갔더니 공원묘지에 부친 삼형제의 부부묘 여섯 기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 의아하고 생경스러웠다. 부모님 모두 북한이 고향이며 625사변 때 월남하셔서 우리 집은 선산도 없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 어른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본적이 없어 “죽음, 무덤”과는 무관하게 살았었다. 돌아가셔야 무덤에 묻힌다는 단순한 생각에 살아생전 묘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30년이 흘러 아버님 3형제분들이 묘 자리를 마련할 때 만큼의 연배가 되었다. 부모님과 3형제 몫의 묘 자리를 만들었는데 꺼림칙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담주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에 안도감까지 생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기에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수긍되지 않으면 고개 빳빳이 들고 저항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못된 성격도 많이 누그러진듯하다.
물과 낚시를 좋아해서 죽으면 화장 후 저수지주변에 뿌려지길 원했으나 위법이므로, 아마도 낚시 친구들이 낚시 갈 때 마다 막걸리 한잔 부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님이 1년 전에 쓰러지셨을 때 벌써 요양병원에 모셨어야 하는데 코로나펜데믹을 핑계대고 요양병원에 모시지 않은 것이 더욱 불효인지 모른다. 아무리 집안 곳곳에 손잡이를 많이 설치했다 하더라도 아파트는 병원보다 생활하기 어려운 구조다. 병원에서도 외부충격에 위한 뇌출혈과 골절이니 집안생활을 하시다 넘어지셔서 뇌출혈과 고관절 및 척추골절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효도 하기위해 요양병원에 모시지 않은 것인데 불효로 바뀐 셈이다. 담당의사와 면담하니 전치 12~13주 진단이 나왔고 퇴원하셔도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이제는 감성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하는 시점이 되었다.
어머님이 쓰러지신 후 부모님을 모두 여의신 선배님을 만났다.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불효인 것 같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불효가 아니다. 주위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해 본인들이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이제는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병수발경험이 없으니 ‘편히 집에서 모시겠다.’ 는 것은 감성적일 수 있다. 전문가도 3개월 입원하셔서 재활치료를 받아도 정상생활이 어려우니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한다 하니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인생선배 말처럼 본인 문제는 오히려 제3자 의견을 듣는 것이 합리적이다.
처음 경험했던 무덤에 대한 생경함이 그리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살아가며 얻는 경험들은 지식이 되고 나이 들면 연륜이 된다. 어머님 병구완 과정은 우리도 거쳐 가야 할 절차이며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염색은 분기, 목욕은 매주, 손발톱은 격주로 깎아드렸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기시면 손발톱부터 깎아드려야 한다. 힘없고 여윈 팔다리를 잡고 “움직이지 마세요, 피나요.”,.., 이번에는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 이승하 -
-전략-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