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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배우는 이야기 셋

어린아이를 스승으로 삼은 공자

by 물가에 앉는 마음

입사한 지 26년 됩니다. 그동안 회사는 아파트, 자가용도 주었으며 많은 경험과 지식도 주었습니다. 이제는 회사에서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얼마 전 후배와 술자리를 하면서 아직도 배움의 길은 멀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서실 이 차장은 나이는 어리지만 이야기 나누다 보면 마음속에 노인네가 한분 들어가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윗분들을 모셨기에 세상을 보는 視野(시야)가 넓고 思慮(사려)가 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선배 잘못을 忌憚(기탄) 없이 이야기하는 그가 그리 밉지 않은 것은 웃는 연습을 꾸준히 하여 인상이 좋은 것도 있지만 제가 이 차장 허물을 이야기해도 고맙게 받아들이는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월 거르지 않고 영어 시험을 보는 것도 이 차장 장점입니다. 출퇴근 시 이어폰을 끼고 어학공부를 하는 이 차장을 보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이며 게으른 저에게 부지런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합니다.

知天命(지천명)의 나이가 넘었으니 이제는 후배들을 가르쳐야겠다는 것은 분수 모르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차장에게 많이 배우듯 사람은 태어나 어머니 젖을 빠는 것부터 죽기 전 壽衣(수의)를 준비하는 것까지 평생을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겸손하게 배우려 해도 이 차장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곤 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耳順(이순: 60세)이 되어야 지천명의 경지에 오르려나 봅니다. 오늘은 배우는 것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모아 봤습니다. (이번에는 이 차장의 좋은 면만 이야기했는데 기회를 봐서 좋지 않은 면을 잘근잘근 맛나게 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뉴델리에서 북부 펀잡 지방의 아므리차르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노인은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들에게는 제각기 배울 점이 있다면서 노인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한 가지씩 알려 주었다. - ‘바람에게서는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배우고, 강에게서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감을 배울 수 있지.’ -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던 노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기차에도 배울 점은 있는데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배울 수 있지.’ 과연 그랬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붙들고 오랫동안 슬퍼하거나 괴로워한다. 이런 집착이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좀먹는 벌레 같은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잃기도 하고,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들이 기차에게서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배웠다면 더 좋은 삶을 일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류시화는 호기심에 다시 물었다. ‘신발에게서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 ‘어떤 어리석은 자가 쓸데없는 걸 발명하면 얼마 안 가서 전 세계에 퍼져 버린다는 걸 배울 수 있지.’ ‘그럼 내가 들고 있는 이 배낭에게 서는요?’ - ‘안에 먹을 것이 들어 있으면 앞에 앉은 사람과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


2. 휴머니스트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은 ‘로마의 휴일’에서 공주로 출연하여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흑백필름으로 본 영화인데도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으며(집사람 빼고 ^^j) 영화배우가 아닌 실제 공주인 듯 착각케 하는 고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 오드리 헵번이었다. 童話(동화) 속 성에서 살아야 할 것 같은 오드리 헵번은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된 후에는 세계인에게 휴머니즘을 가르치려는 듯 아프리카에 있었다. 銀幕(은막)의 여왕에서 은퇴 후 飢餓(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던 오드리 헵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생을 마감하였다. 은막의 여왕이 아닌 휴머니스트였던 오드리 헵번 曰(왈)

- 네가 매력적인 입술을 갖기 원한다면 친절한 말을 해라.

- 네가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라.

- 네가 날씬한 몸매를 원한다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어라.

- 네가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려면 하루에 한 번 아이로 하여금 그 머릿결을 어루만지게 하여라.

- 네가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네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어라.

- 나이를 먹으면서 너는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사용하도록 하여라.


3. 어린아이를 스승으로 삼은 공자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알게 될 나이가 되고 사회적인 지위나 체면 따위를 고려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점차 몰라도 아는 척하거나 궁금해도 관심이 없는 척한다. 설사 앎을 구하고자 해도 虛心坦懷(허심탄회)하게 자신을 낮추며 진지하게 가르침을 청하는 대신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아진다. 만약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마음을 비워 가르침을 청하되, 상대방의 나이나 지위, 재산이나 학력 따위는 가리지 않고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진보가 빠를 것이다. 유교의 시조이자 중국 역사상 博學多識(박학다식)하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던 공자도 어린 꼬마를 스승으로 삼은 적이 있었는데 이 아이의 이름이 바로 항탁(項橐)이다. 항탁은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이다. 어느 날 항탁이 친구들과 함께 길에서 성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공자는 수레를 타고 제자들을 거느리며 여러 나라를 周遊(주유)할 때였다. 공자가 탄 수레가 다가오자 다른 아이들은 모두 피하기에 급급했지만 유독 항탁만은 의연히 길 가운데 쌓아놓은 작은 성에 앉아 있었다. 공자가 의아하게 여겨 수레에서 내려 물어보았다. ‘너는 왜 수레가 오는 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느냐?’ 항탁이 고개를 들어 공자를 보더니 당당하게 대답했다.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은 위로는 천문(天文)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알며 그 가운데 인정(人情)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고로 수레가 성을 에둘러간다는 말을 들었어도 수레를 통과시키기 위해 성을 옮겼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공자는 이 어린이의 말에 흥미를 느껴 그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자 좀 어려운 질문을 했다. ‘어떤 산에 돌이 없느냐? 어떤 물에 물고기가 없느냐? 어떤 문에 빗장이 없느냐? 어떤 수레에 바퀴가 없느냐? 어떤 소가 새끼를 낳을 수 없느냐? 어떤 말이 새끼를 낳을 수 없느냐? 어떤 칼에 고리가 없느냐? 어떤 불이 연기가 나지 않느냐? 어떤 나무에 나뭇가지가 없느냐?’ 그러자 항탁이 즉시 대답했다. ‘토산(土山)에는 돌이 없고, 우물에는 물고기가 없으며, 열린 문에는 빗장이 없습니다. 또 가마에는 바퀴가 없고, 진흙으로 만든 소는 새끼를 낳지 못하며 목마(木馬)는 새끼를 낳을 수 없습니다. 작두에는 고리가 없고, 반딧불은 연기가 나지 않으며, 마른나무에는 가지가 없습니다.’ 공자가 이 대답을 듣고는 아주 기뻐하면서 연신 칭찬했다. 그러자 得意揚揚(득의양양)해진 항탁이 이번에는 자신이 질문을 했다. ‘거위와 오리가 물에서 뜰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러기와 학은 왜 울음소리를 내나요? 소나무와 잣나무는 왜 사철 푸릅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거위와 오리가 물에서 뜰 수 있는 이유는 발에 갈퀴가 달렸기 때문이고, 기러기와 학이 우는 이유는 목이 길기 때문이며, 소나무와 잣나무가 사철 푸른 이유는 속이 단단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항탁은 이 대답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틀렸습니다! 두꺼비가 우는 것은 목이 길기 때문이 아니고 거북이가 물에 뜨는 것은 발에 갈퀴가 있기 때문이 아니며 대나무가 사철 푸른 것은 속이 단단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항탁의 반박에 공자는 잠시 할 말을 잊고는 옆에 있던 제자들에게 말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보아하니 내가 저 아이를 스승으로 삼아야겠다.’

세 사람이 길을 지나가면 그중에 반드시 자신이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있다고 했던 공자의 말이 虛言(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좋은 逸話(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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