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출발합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기다린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 조병준의 “따듯한 슬픔” 중에서 -


올해 인사가 끝났습니다.

매번 그랬듯 영광의 축배를 드는 사람보다 고배의 쓴잔을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억 개 정자 중 운 좋은 한 마리가 난자와 만나는 확률보다는 높지만 우리 회사 승진심사도 치열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고배의 쓴잔을 마신 사람은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위의 눈을 의식하여 숨어 지낸다면 형벌의 시간이 될 것이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간다면 기다리는 시간도 희열이 될 것입니다.


불가의 인연은 劫(겁)으로 표현하는데 부부의 연을 맺는 데는 칠천劫이 소요됩니다. 머리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번쩍이도록 눈에 띄는 배우자를 만나는데 3조 200억 년이 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전생의 전생부터 기다리고 기다려서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나이 찼다고, 혼기 놓쳤다고 걱정하시는 미혼 사우들도 조금만 기다리시면 칠천 겁의 인연이 맺어집니다. 물론 콩깍지가 씌어 만나는 배우자들끼리는 만남도, 헤어짐도 빠르지요. 기다려야 할 때를 참지 못한다면 심리학자인 김정운교수 저서 제목같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가우디성당으로 불리는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 lia) 성당은 1882년부터 짓기 시작했으니 130년이 지났습니다. 향후 100~200년이 소요될 것이라 하니 우리 시대에서 완성된 성당을 보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우디가 평생을 기다린 것도 모자라 그의 제자들은 아직도 짓고 있고 그제자의 제자들도 계속 기다릴 것입니다. 불이 난 숭례문을 몇 년 걸리지 않아 뚝딱 짓고 있는데 한번 혼나고도 방염 처리되지 않은 목재를 썼다 하네요. 300년 넘게 기다리며 짓는 성당도 있는데 그깟 1년만 더 기다리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간편하고 빠르게 먹는 패스트푸드가 각광받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식탁에서도 슬로우 푸드 열풍이 부니 된장찌개 보글거리는 옛날 식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적게 고생하고 많이 거두려는 인간 욕심으로 GMO 옥수수, 콩 등이 식탁을 점령할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광우병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른 것을 벌써 잊고 말았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먹는 것도 조금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도 빠르게 합니다. 또 여러 개를 봐야 합니다. 저도 외국연수를 가서 1박 2일, 1000마일을 달려본 적이 있습니다. 패키지여행이란 것도 주마간산 식으로 돌아보고 기념품 하나 사면 여행이 끝납니다. 여행 후 별다른 추억이 없어 그렇게 사진도 많이 찍었건만 캘린더가 바뀌면 이곳이 영국인지 프랑스인지 구분도 못하게 됩니다. 저는 기회가 좋아 워싱턴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워싱턴에 가면 빼놓지 않는 구경거리가 스미소니언박물관이며 전시물이 엄청납니다. 자연사, 미국사, 항공우주, 미술 등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저는 하루에 한 가지 꼴로 봤으니 운이 좋은 편입니다. 느리게 보지 않으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도 지나치게 됩니다.


기술개발실이 처급으로 다시 출발합니다. 처에서 2009년 1월에 실이 된 후 2010년 10월에 기술연구원에 속한 기술기획팀으로 전락했습니다. 2011년 7월 실로 부활했고 4년 만에 처로 새 출발 합니다. 물론 저는 2년밖에 기다리지 않았습니다만 직원들은 4년을 기다리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기술실이 처로 다시 시작합니다. 업무품질은 높이고 개혁의 고삐를 더욱 세게 당겨보겠습니다.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먼 훗날 회사 식구들이

어둠 속에서 길 잃고 헤맬 때에

기술개발실이 켜 놓은 작은 촛불 하나

座標삼아

험하고 거친 길이라도

길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기술개발실은 召命을 다한 것입니다.

기다려야 한다.

작은 촛불하나 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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