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잡한 자료와 원고들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네덜란드에서 직장생활 하는 작은 아이가 귀국 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재택근무를 했으니 단지 시차가 생기고 잠자리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회사의 배려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召天(소천)하셨을 때 작은아이가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하니 안정 될 때까지 쉬라며 배려했단다. 작은아이가 회사 에이스이기에 배려해 준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조직보다는 개인 입장을 생각해주는 네덜란드 특유의 관용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상호신뢰가 기반이 되어 생겨난 문화로 시야만 벗어나면 논다는 관리자 인식과 시야를 벗어났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근로자 인식이 존재하는 한 자생하기 어려운 문화다.
네덜란드는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려 마트와 약국만 제외하고 사회적 봉쇄(~2022.01.14까지)에 들어갔으니 두 달을 예정하고 들어온 한국에서의 재택근무 기간도 유동적이다. 작은 아이는 네덜란드 출국 전 PCR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되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텅 빈 이코노미 석에 길게 누워 퍼스트클래스처럼 타고 온 아이는 1년 만에 만난 부모에게 눈인사만 건넸다. 간이검사 키트로 또다시 검사하고 문제 없자 비로소 마스크를 벗었다. 면역이 생기지 않는 고모에 대한 배려이자 상대방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개인의무를 다하고 있는 작은 아이에게서 西歐化(서구화)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입국 다음날 한국정부의 PCR검사를 받기위해 성남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일요일 09시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렬로 늘어선 대기 줄이 3~400미터 정도로 길었다. 태어나 처음 본 광경이지만 왠지 눈에 익었다. 전쟁으로 식량배급을 받기위해 길게 늘어선 영화 속 피난민 대열과 흡사한 풍경이었다. 추위 속에서 1시간20분을 기다린 아이는 능숙한 검사원에게 순식간에 코를 찔리며 검사를 마쳤다.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너무 허무하게 한국입국의례가 끝났다.
어머니 장례식 전 미국에서 온 누나는 신장이식을 했기에 죽기 전까지 면역억제제를 상시 복용해야 한다. 코로나 백신을 맞아도 면역이 생기지 않지만 비행기를 타려면 백신을 맞아야 하며 PCR검사도 해야 한다. 물론 입국해서도 작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PCR검사를 받아야 했다. 두 달여를 한국에 머물며 어머니 장례식 때 친척들과 대면하고 출간을 위해 출판사관계자를 만난 것 이외에는 외부에서 대면접촉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전화로 혹은 페이스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만Mile 떨어진 곳에 살다 한국으로 왔으나 심리적 거리감만 줄었을 뿐이다. 몇몇 친구들은 집으로 찾아오거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코로나시대에 맞는 인사를 나눴다.
누나는 글재주도 뛰어나지만 천생 이야기꾼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기억력도 비상하고 상황묘사력이 뛰어나 본인이 유치원 면접에서 떨어졌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친구들과의 학창시절 에피소드, 고모, 이모, 삼촌에 대한 祕史(비사)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무뚝뚝하고 말수 적은 사람과 살았던 집사람은 오랜만에 시누와 이야기꽃을 피웠으니 30년 넘은 한이 한 번에 풀렸을 것 같다.
교민이 많은 LA에 거주하고 있어 한국음식에 대한 배고픔과 그리움은 덜할 것 같았으나 순 한국식 치킨, 선지해장국, 보리굴비, 냉면, 한정식, 족발, 집 밥 등 2달간 한국음식 위시리스트를 정복한 누나는 PCR검사 후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환기문제로 비좁은 사무실에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 로비에서 만나거나 사무실 근처 음식점에서 간단한 점심을 나눈다. 친구가 많이 있는 나주에 내려간 지도 오래된다. 나주에 가면 필히 있을 식사시간 중 코로나에 감염되거나 2차 접촉자로 분류되어 격리되는 상황이 오면 현직에 있는 직원들, 특히 공기업 직원들 처신이 곤란해질 것 같아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외부활동이 줄어들고 실내 활동이 늘자 컴퓨터가 고생한다. 원래 낚시꾼들은 겨울에도 쉬는 법이 없다. 하우스실내낚시를 하거나 낚시채비를 새로 하면서 상상속의 낚시를 즐기며 봄을 기다린다. 실내낚시를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집안에만 갇혀있으니 정리되지 않아 난잡한 자료와 원고들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원고관리의 편의성이 높은 brunch를 시작했다. 폐쇄성을 가진 Band, e-Mail, cafe에 글을 올리다가 개방성의 brunch를 하려다보니 솔직히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다. 보수/진보, 종교/무종교와 관련된 댓글이 달릴 수 있으며 조회 수에 눈길이 갈 수도 있다. 버킷리스트에 ‘專業作家(전업 작가)’라는 단어가 없기도 하거니와 논란을 불러일으킬 댓글에는 응답하지 않으면 될듯하다. 원래 인간은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하지도 않을 일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 쓸데없이 걱정하는 동물이다. 杞憂(기우).
집사람이 off-line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팀은 개린이 엄마 모임이 유일하다. 모임이름이 ‘마쵸콜’로 특이하고 생소한데 강아지이름인 ‘마로, 쵸코, 콜라’에서 따왔듯 강아지 사랑이 유별난 개 엄마 모임이다. 간첩 접선하듯 강아지 산책시간을 맞춰 만난 개린이 엄마들은 붐비는 곳을 피해 한적한 곳을 찾는다. 잠시나마 마스크를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나 눈은 여전히 불안하다. 혹시 다른 사람이 접근할까봐 수시로 四周警戒(사주경계)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 활용시간이 늘어나고 활용범위를 넓힌 집사람은 모든 일을 휴대폰으로 처리하고 있다. 금융, 세금, 쇼핑수준이 내 수준과 비교하면 넘사벽이다. 임종직전이신 어머님의 숨겨진 예금을 찾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전국각지의 질 좋은 제철 농수산물을 좋은 가격으로 구매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시대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먹는 것을 인생의 커다란 낙으로 생각하는 큰 아이는 요즘 코로나로 인해 몸조심 하느라 발길이 뜸하다. ‘여행은 먹는 것’이라 생각하는 큰 아이는 국내, 외 맛집 탐방이 취미로 스페인 세비야에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세비야 음식이 맛있기는 하지만 조금 과했다.
큰 아이는 ‘식욕 없음’이라는 태어나서 처음인 특이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후각과 미각도 빼앗아간다는 코로나 후유증 탓이 아니라 입덧 탓이다. 입덧을 완화시키는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커다란 약효는 보지 못하고 냄새적은 ‘시리얼’로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 음식냄새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기에 치아바타 잘 구워내는 사위도 덩달아 살이 빠지는 등 고생하고 있다. 코로나와 더불어 입덧도 종식되길 바란다.
치아바타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코미디프로 한 장면이 생각난다. ‘시골노인이 아들과 통화하며, 옆집은 보일러 새로 놓아 뜨끈뜨끈하고 좋더라. 나는 괜찮다. 차갑게 자도...’라는 장면이 연상된다. 사위가 치아바타 구워 갖고 오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려나? ‘나는 괜찮다. 포르투갈 가서 사먹으면 된다.비행기타면 금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