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이의수著, 한국경제신문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김난도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홀로 선 젊은 청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며 유영만교수의 ‘청춘경영’도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아픈 청춘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는 이의수 씨가 50대뿐 아니라 아픈 중, 장년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우리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인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세울 명함도 없고, 사는 집의 평수도 작고, 자식은 명문대학에 다니지 않으면 솔직히 친구 만나기도 꺼려진다. ‘언제 밥이나 먹자.’라는 말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같이 되어 버렸다. 나보다 공부 못했던 아이들이 BMW, 에쿠우스를 몰고 다닌다. 공부=돈, 행복=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기울인 노력에 비해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나와 절친인 R과는 둘이서 곱창에 소주 한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그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없어도 마음으로 지켜지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인생 팔십, 마흔의 반환점을 돌았다면 이제는 정상에서 내려올 때다. 그럴 때 친구라는 동행자가 있으면 한결 힘이 덜 든다. 내가 힘들 때 아무 조건 없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 중에 배우자, 부모, 형제 같은 가족도 있겠지만 친구가 갖는 의미는 다르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친구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식당에서 메뉴를 놓고 고민할 때도 상사가 ‘오늘은 김치찌개 어때?’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상황이 종료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된장찌개를 먹고 싶었어도 김치찌개를 먹어야 하며 메뉴를 선포한 상사에게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며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상사의 눈에서 벗어나면 곤란하다. 그게 바로 마흔의 모습이다. 신세대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지만 마흔 세대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호불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세가 중요했다. 언제나 전체의 흐름을 따랐다.


개인의 인생을 놓고 보면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란 없기 때문이다. 노력하였으나 생각했던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하지 말자. 노력했다면, 최선을 다 했다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겠는가.


13년 동안 8곳의 전셋집을 전전하다 조그만 집을 샀다. 아내는 공동명의를 하자고 했고 나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사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집을 사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오케이를 했다. 그런데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때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동등기가 아니라 아내의 이름으로 등기를 했어야 했다.


모든 일에는 작은 여유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염려와 조급증 앞에서 우리는 여유라는 깃발을 높이들 필요가 있다. 무언가 더 많은 것 들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은 우리를 늘 조급증으로 몰고 간다. 서두르다 모든 것을 망치기보다 기다리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직장 내에서도 나이와 직급 때문에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면 나이 어린 상사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럴 때마다 마흔의 남성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더럽고 치사해서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내가 왕년에는 진짜 잘 나갔는데. 그렇다, 우리는 왕년에 학교를 주름잡고 껌 좀 씹었으며 공부깨나 했고 연애도 했다. 이제는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 ‘내가 자존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덧붙인다.

안타깝지만 자존심을 버릴 때다. 자존심대신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자존감은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존재이고 성과를 이뤄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 믿는 마음이다.

후배가 나보다 앞서 승진하고, 옆집 남편이 나보다 월급이 많고, 아파트 주차장의 고급차를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왕년의 자존심은 훈장에 불과하다. 마흔이 넘어 내리막길로 향해 간다면 명예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인생에 실패가 많았다고 해서 주저앉아서는 곤란하다. 역사는 결코 성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패한 뒤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절절한 기록이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꿈에 도전한 사람들이다. 실패를 맛보고 그 실패를 극복해 성공의 열매를 거두었다. 그런 점에서 실패는 성공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실패와 성공은 함께 살고 있는 샴쌍둥이와 같다. 성공에 너무 자만하거나, 실패에 너무 낙담할 필요도 없다. 마흔이면 일희일비하며 경거망동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는가. 명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정말 죽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올바른 인생 만들기 매뉴얼을 줘야 한다. 성공하는 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너졌을 때 한계를 극복하며 다시 일어서는 방법이다. 어린 시절 행복을 많이 경험하면 인내력은 커진다.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며 가족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가족문화를 만들어주 면 아이들은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이기는 법이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방법 노력하고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이기는 법을 알게 해야 한다. 성공하고 성취하는 맛을 알게 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비관적인 삶의 환경이 닥쳐도, 견디며 이를 누리고 즐거워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꾸는 꿈은 다르다. 여성은 신데렐라를 꿈꾸고 남성은 아내가 예쁘고 돈이 많기를 꿈꾼다. 남자는 미래를 지향하고 여성은 과거를 돌아보며 산다. 남성이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처럼 부부의 꿈이 다르다는 점이다. 게다가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모든 일에 충돌이 생긴다. 서로가 말이 없어지고 식사도 따로 하는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우선 친밀감을 회복해야 한다. 사랑이 식어버리면 원망과 이해타산밖에 남지 않는다. 부부란 서로 마주 보는 사랑의 관계를 통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전반전에 실축을 했건 자살골을 먹었든 이제 그 사실에 연연하지 마라.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려라. 당신의 아버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기에 당신보다 더 많은 가족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당신도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여러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겪으며 얻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인생을 주도해 나갈 시간이다. 노련미와 원숙미를 마음껏 발휘할 시간대다.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보톡스를 맞아가며 주름을 펴는 것이 아니라 기억 저편에 구겨 넣었던 청춘의 기억을 다시 꺼내 다림질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 꿈을 위해 다시 뛸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아직도 건강하다. 우리는 달려야 한다. 인생의 쓴맛도 여러 번 봤으니 별로 무서울 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꿈을 이루기에 딱 좋을 때다. 가자. 우리는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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