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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중년의 심리학노트

중년의 심리학노트(곽소현, 박수선著, 좋은책만들기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풋풋한 사랑과 통기타, 팝그룹 Smokie의 Next door to Alice를 들으며 가슴 설렜던 낭만이 남아있을까? 부부간의 키스조차 시들해진 중년들, 부부간의 소통은 있는 것일까? 소통을 위해 대화를 시작하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질까봐 갈등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사는 중년부부들의 모습이 현재 중년들의 모습이다.

스위스 출신 심리학자 융(Carl Jung)은 마흔 살을 기점으로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구분했다. 마흔쯤 되면 노년을 생각해 보게 되는 나이가 된다. 어린아이들이나 청년들은 자기 삶이 너무 푸르러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자신만만하고 세상이 무섭지 않으니 호기도 부려보고 큰소리도 쳐본다. 자신에게 중년이라는 시기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성큼 40대, 50대에 접어든다.


요즘 남학생들은 예쁜 여자, 아침밥 해주는 여자가 아닌 자기 일에 충실하고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는 여자를 찾고, 여학생은 돈 많이 버는 남자보다 대화가 통하고 아침밥을 스스로 해결하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중년은 가장으로서 충실, 주부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바랬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희생으로 비춰질 수 있었고 부모로서, 며느리와 사위로서가 아닌 배우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중년 남성은 힘들어도 쓸쓸해도 내색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무겁다. 그래서 마음의 병, 몸의 병들이 많다. 그런데 제법 잘 자라준 자녀들을 보면 뿌듯하다. 묵묵히 따라 와준 아내 억척같이 저축해 집장만하고 옷 하나 반듯하게 사주지 못했는데 배시시 웃는 아내가 안쓰럽고 미안하다.

중년들은 70~80년대 고도성장을 모토로 삼은 국가정책과 민주화 시기와 결합하여 성실과 인내심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 왔고, 가족, 회사, 나라걱정까지 하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지만 가족주의의 쇠퇴와 함께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저 생각하는 자녀세대와의 갈등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렇게 살아온 중년들은 자랑스러운 세대임이 분명하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인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며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로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중년이 되니 “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나? 잘 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중년남성들은 아직 부모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이 많은 사람들이다. 집안형편이 어려워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크고 아내에게 돈 벌어오라는 이야기는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세대요, 자식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경제적 부양이 국가나 사회로 이양되는 추세이기는 하나 충분한 혜택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고 자녀들에게 기대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중년남성들은 바쁘다. 부모부양도 해야 하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신들의 노후대첵도 준비해야 하는데 역부족인 경우도 많다. 은행이 60정년이라지만 지점장은 50정도에 은퇴를 한다. 재취업시장의 문호도 넓지 않아 퇴직한 중년남성들은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나, 출산과 살림으로 집밖생활을 하지 못한 아내들은 이때부터 집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중년이 되면 괜히 시간이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아등바등 살았던 지금까지의 삶에서 이제 뭔가 달라지는 듯싶고 뭔가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옛날에 익숙했던 것으로 돌아가고 통하는 친구끼리가 가장 편안한 관계가 된다. 이젠 앞만 보고 달리는 것 보다는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자. 느려질 수 있겠지만 더욱 견고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젠 조금 천천히 갈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한 번쯤 돌아보고 한 번쯤 쉬어간들 크게 차이날 것도 없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부부간에도 매일 대화해야 하며 내면을 드러내야 한다. 상대방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수 있고 유대감도 높아진다. 매일 한 번이라도 칭찬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은 이 방법의 노랄만한 효과는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살다보면 가기 싫은 길을 가야할 때가 있는데 그 길 중 하나가 노년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세상에 큰 사고나 질병 없이 무사히 이 시기에 이르는 것도 고마워해야 한다. 어쩌면 인생후반을 위해 인생전반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을 수 있다. 직장일이나 자녀 키우는 일과 같이 책임이 큰일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위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는 앞으로 다가오는 시기일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중심에서 부부중심으로 시선을 바꾸고 이제는 자녀들에게 그만 관심을 거두어도 된다.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인생이라는 길에서 살 수 있도록 성장했다면 그 다음 일은 자녀들 몫이다. 이제는 노년을 같이할 황혼의 동반자에게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다음은 나를 배려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속도를 늦추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경치도 바라보면서 내가 지쳤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자, 좋은 방법은 종교를 갖는 것이다.


앞으로 몇 년간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 “버킷리스트” 후반부에 이런 대사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혼이 하늘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대답에 따라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진다더군.”

“그게 뭔데?”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하는 질문이었어.”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준적이 있는가? 아니 그전에 나 스스로라도 기쁨을 누린 적이 있는가? 아직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도 앞으로의 세월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이제부터 또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것, 각박하고 답답한 세상에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그리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작업,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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