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釣五作位(구조오작위)의 낚시 等級(등급)
先親(선친)은 文人(문인)들 사이에서 낚시꾼으로 유명하셨다. 김시철시인, 소설가 곽학송, 언론인이자 소설가 서기원, 정신과의사이자 수필가 최신해선생님은 아버님의 낚시실력을 묘사한 글을 자주 쓰셨다. ‘임 시인은 붕어를 만들어내는 신기한 재주를 갖고 있다. 도저히 붕어가 없을 곳 같은 데에서도 꼼지락거리며 붕어를 낚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낚시 짐을 들어드리려 낚시를 따라가면 釣仙(조선)과 酒仙(주선)의 반열에 오르셨던 어른들은 항상 거나해지셔서 낚시하는 시간보다 취해 계시는 시간이 많았다.
대물림된 재주가 낚시밖에 없어 30여 년간 혼자서 낚시터를 돌아다니며 술 한 잔 먹고 땅을 베개 삼아 구름을 이불 삼아 눈을 붙이면 붕어는 잡지 못해도 釣仙의 경지에 올라 있는 듯 혼자만의 착각을 하게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낚시 가면서 고기 한 마리 집에 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하숙집 할머니들은 ‘미칫는 갑다.’를 연발했다.
물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붕어를 잡기보다는 빠~알간 찌가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황홀한 모습을 보러 낚시 가는데 그것을 이해할리 없는 하숙집 할머니들의(요즈음 집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눈에는 ‘미칫는 갑다.’가 아니라 ‘미쳤다.’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누구의 글인지는 몰라도 九釣五作位(구조오작위)의 낚시 等級(등급)이 있다. 조졸, 조사, 조마, 조상, 조포, 조차, 조궁을 거쳐 남작, 자작, 후작, 공작, 그리고 조성과 조선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구조오작위이다. 즉 조졸, 조사, 조마, 조상, 조포, 조차, 조궁, 조성, 조선이 구조이고 남작, 자작, 백작, 후작, 공작이 오작위에 속하는 것이다.
1. 조졸(釣卒) 행동, 태도 모두 稚拙(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초보의 단계. 낚싯대를 든 것만으로 태공인체 하다가 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은 술에 취해 고성방가 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빵점이며 낚싯대를 들고 고기만 잡으면 무조건 낚시꾼인줄 아는 부류를 조졸이라 칭한다.
이 단계에서 낚싯줄이 많이 엉키거나 바늘이 옷에 걸리거나 초릿대 끝이 망가져버리는 수가 많은데 마음가짐에 따라 낚싯대나 낚싯줄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동작여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 좋은 수확을 거두거나 대어라도 두어 마리 낚게 되면 차츰 사람이 바뀌게 된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게 되며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게 되고 목에 힘을 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히 고상하고 낭만적인 존재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2. 조사(釣肆) 선비사의 조사(釣士) 아닌 방자할 사(肆) 자가 붙는 단계. 대어를 한두 번 올린 경험만으로 낚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듯 기고만장해 있다. ‘입질이 온다.’라고 말해도 될 것을 ‘어신이 온다.’라고 말하고 ‘고기가 잡이지 않는다.’를 ‘오늘 조황이 별로 좋지 않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이 단계에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게 되는데 몇 해 전 잡은 작은 고기가 상상 속에서 자라나서 월척이 되고 4짜급이 되는 무용담을 이야기하나 옆에 앉은 사람이 큰 고기를 잡거나 많이 잡으면 고수를 알아보고 의기소침해진다.
3. 조마(釣麻) 홍역 할 마(麻), 당구 치는 사람이 100점 정도의 실력이 되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며 당구알이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낚시꾼도 조마 수준이 되면 홍역을 앓듯 밤이나 낮이나 빨간 찌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주말에 낚시를 못하면 한 주 내내 끙끙 앓는다.
아내 바가지도 불사/친구, 친지의 결혼식 불사/결근도 불사하며 휴일에 친구가 결혼이라도 하면 정강이라도 걷어차 주고 싶은 생각이 들며 절친 결혼식이라도 장모님이 위독하다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낚시터로 간다. 비로소 낚시에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며 딸 가진 부모는 딸을 주지 않으려 한다.
4. 조상(釣孀) 과부상(孀), 드디어 아내는 주말과부=필수, 주중과부=선택이 된다. 직장생활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며 집에 쌀이 있는지, 자식이 대학에 붙었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며 아내가 이혼소송을 해도 모르는 단계이다.
5. 조포(釣怖) 공포를 느끼고 절제를 시작한다. 낚시가 사업이나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낚싯대를 접어둔다. 아내와 자식들은 가정으로 돌아온 아빠를 기쁨 반, 우려 반으로 반기지만 글쎄...
6. 조차(釣且) 다시 차(且),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는 공포로 멀리했던 낚싯대를 다시 찾는 단계로 행동이나 태도가 한결 성숙해져 고기가 잡히건 잡히지 않건 상관하지 않는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기만 하면 고기보다 세월이 낚싯바늘에 달려있음을 느끼게 되다. 고기는 방생해 줄 수 있지만 자신을 방생하지 못하는 단계이다.
7. 조궁(釣窮) 다할 궁(窮), 낚시를 통해서 도를 닦을 수 있는 수준의 단계. 낚시를 통해 삶의 진리를 하나 둘 깨닫기 시작한다. 초보 낚시꾼의 때를 완전히 벗어 버리는 것도 이 시기이다.
8. 남작(藍作) 쪽빛 藍자는 좋은 또는 명문가의 뜻으로 쓰인다. 인생을 담고 세월을 품는 넉넉한 바구니를 가슴에 만든다. 펼쳐진 자연 앞에 한없는 겸허함을 느낀다. 술을 즐기되 결코 취하지 않으며 사람과 쉽게 친하되 경망해지지 않는다.
9. 자작(慈作) 마음에 자비의 싹을 만들고 거짓 없는 자연과 한 몸이 된다. 잡은 고기를 방생하면서 자기 자신까지 방생할 수 있다. 욕심이 사라지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낚싯대를 타고 전해온다.
10. 백작(百作) 마음 안에 백 사람의 어른을 만든다. 아직도 참으로 배울 것이 많으니, 인생의 지혜를 하나하나 깨우치는 기쁨에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자연도 세월도 한 몸이 된다.
11. 후작(厚作) 마음 안에 두터운 믿음을 만드는 단계. 낚시의 도(道)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지만 결코 지혜를 가벼이 드러내지 않으며, 몸가짐 하나에도 연륜과 무게가 엿보인다.
12. 공작(空作) 모든 것을 다 비우는 무아의 지경. 이쯤 되면 이미 입신의 경지에 거의 도달한 상태. 지나온 낚시 인생을 무심한 미소로 돌아보며 신선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13. 조성(釣聖) 낚시와 자연이 엮어내는 기본원리를 터득하고, 그 순결함에 즐거워한다. 간혹 낚시를 할 경우에는 양팔 길이의 대나무에 두꺼운 무명줄을 감아 마당 수챗구멍 근처에서 파낸 몇 마리 지렁이를 들고 집 앞의 개울로 즐거이 나간다. 아마도 중국의 제갈공명이나 강태공 우리나라의 퇴계 이황 선생님 같은 경우가 조성의 단계가 아니었을까?
14. 조선(釣仙) 수많은 낚시의 희로애락을 겪은 후에 드디어 입신의 경지에 이르니, 이는 도인이나 신선이 됨을 뜻한다. 낚싯대를 드리우면 어느 곳이나 무릉도원이요, 낚싯대를 걷으면 어느 곳이나 삶의 안식처가 된다.
몇 십 년간을 혼자 낚시하는 것을 즐겼는데 본사 낚시회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것은 순전히 담당하고 있는 업무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본사 낚시회에서 始釣會(시조회) 행사를 하면서 安全祈願祭(안전기원제)를 지낸다기에 따라가 가입하게 되었다.
기독교 母胎信仰(모태신앙)을 갖고 있기에 어릴 적부터 굿판 음식을 먹지 못했다. 동네에 굿판이 벌어지면 동네 꼬마들은 떡 한 조각 얻어먹기 위해 몰려들지만 나는 울굿불굿 한 옷을 입고 칼을 휘둘러대며 작두에 올라서 핏발 선 눈매를 한 巫堂(무당)이 무서웠다. 어머니께서는 굿판 음식은 귀신이 맛보고 간다며 먹지 말라고 당부 하셨기에 굿판의 시루떡 또한 구미를 당기는 음식이 아니었다.
信心(신심)이 깊지 못한 사이비 기독교 신자 입장에서도 안전기원제나 上梁式(상량식) 등 미신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꺼려지는 일이지만 올해도 본사 낚시회에서 올리는 안전기원제에 참석하여 막걸리 한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전 직원들 안전을 기원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