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 外

사장님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易姓革命(역성혁명)에 성공한 이씨조선 7대 왕인 세종대왕께서 정인지 등에게 지시하여 만든 용비어천가는 직계 6대조의 업적을 칭송하여 왕조 창건을 합리화하기 위한 서사시로 고등학교 국어시험에 단골로 출제되었던 관계로 얼마나 외어대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우리나라에 여섯 성인이 웅비하시어 하는 일 모두 하늘이 주신 복이시니...)

*** 들어주시는 분은 다른 세상에 계시니 오늘로 사장님에 대한 추억이야기는 끝을 맺으려 합니다.


1. 관리처와 공개대화가 취소되어 드리지 못한 말씀

사장님의 미니 홈페이지 개설되어 전 직원과 열린 대화를 하고 계신데 매우 잘하신 일로 칭송받고 있고 사장님께서도 일일이 답글을 주시니 직원들 사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향후에도 미니 홈피가 사장님과의 대화통로이자 직원들 아픔을 어루만져줌과 동시에 기쁨을 함께하는 화합과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장이 되기를 고대합니다.

열린 대화란 무릇 직원들의 고충도 여과 없이 듣고 경영진의 경영철학도 듣는 쌍방향 대화채널이 구축되어야만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장님의 열린 마음을 칭송하는 이야기를 굳이 용비어천가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나 행간의 의미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잘하신다, 지당하십니다.’라는 이야기가 용비어천가로만 들린다면 유명무실한 대화통로로 전락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장님께서 홈피를 오픈하셨지만 방향성을 유도하고 내실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땀에 젖고 기름에 쩌든 진정한 현장 목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서 회사 앞날을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여 전 직원이 참여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옛말에 하던 짓도 멍석을 펴니 그만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화통로가 없을 때는 현장 목소리가 사장님께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하려 해도 통로가 없다는 식의 말들이 무성했으나 미니홈피가 신문고와 같이 억울함과 불만까지 털어놓고 대화하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용비어천가는 사장님이 임기가 끝나실 즈음 직원 모두가 합창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3년간 직원들과 소통을 하고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으로 괄목할만한 회사성장을 이루시고 은퇴 후의 달콤한 휴가계획을 궁리하고 계신 사장님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께서는 정부의 재임용요청을 고사하고 계시나 전 직원이 연임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새로운 3년을 만들어나가는 선봉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3년을 사장님과 같이 생각하며 호흡했던 4500여 직원들의 눈망울을 보시고 생각을 고쳐주시길 간청드립니다.라고...

사장님 듣고 계십니까?


2. 사장님 비자금과 스크린 골프

사장님의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속할 수도 있기에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려는지 고민 됩니다. 모든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사장님께서도 복지통장(비자금통장)을 갖고 계십니다. 애경사가 생기면 비서실 서 여사님이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옵니다. 역대 사장님 중에 본인 비자금으로 축, 조의금을 내신 분이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몇몇 분들은 회사와 무관한 친인척 혼사에 대한 경조금도 회사 돈으로 해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해외 출장 시 법인카드로 개인용품을 구입하여 담당자들을 곤혹스럽게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장님께서 돌아가신 후 비자금 통장에 남아있는 돈은 제 통장의 잔금보다 적은 기백만 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생을 깨끗하게 사시려 노력하신 사장님 뒷자리가 너무도 깨끗하여 그것마저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장님께서는 골프를 좋아하셨습니다. 공직기강 확립이다 뭐다 하니 정식골프장에는 가시지 못하고 스크린골프장에만 가셨습니다. 처실의 팀장들과 고등어김치찜 또는 우렁쌈밥에 막걸리 한잔으로 간단한 식사 후 스크린골프장 가시는 것을 즐겨하셨는데 스크린골프 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들으시곤 좋아하시는 골프도 자제하신 사장님이셨습니다. 사장님께서는 72타 미만을 치실 때도 많지만 저는 골프를 치지 못하니 140타를 칩니다. 제 방에 들러서 ‘어디 보자 임 팀장은 본전 뽑았고... 임 팀장, 다음에 내가 레슨해 줄 테니까 같이 가자. 스크린골프에도 요령이 있거든.’ 상대방 마음이 상할까 봐 같은 말이라도 가려서 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게 스크린골프를 레슨 해주실 사장님이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3. 사장님의 부탁

사장님께 청탁이 들어와 제게 몇 건의 검토 지시가 아닌 부탁을 하셨습니다. (지시로 받아들이면 필히 해야 하므로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부탁하시는 것으로 생각해야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합니다.) 사장님께서도 부담 갖지 말고 검토해 봐라 하시지만 아무래도 부담되는 사안입니다.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 분을 소개하시면서 좋은 물건이라는데 검토해 봐라 하셨으나 사실 업체 사장님과는 일면식이 있는 사이입니다. 납품대상 물건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나 저하고 이야기할 때 가격을 깎아주지 않아 경쟁사 제품을 사업소에 안내한 적이 있었는데 사장님을 만나 보신 후 경쟁사가격보다 좋은 가격을 제시하니 검토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어서 손쉽게 끝이 났습니다.

두 번째 청탁 건은 직원들에 대한 스트레스진단 프로그램을 무료로 주겠다는 사안(프로그램은 무료이나 세상에 공짜가 없듯 전산망과의 연계 및 컨설팅비용이 수반되는 사안입니다.)이었으나 현장에 접목하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진단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직원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문제가 있어 현장도입이 곤란하다는 보고를 드렸더니 사장님께서는 ‘그래 나도 한전에 있을 때 검토했던 프로그램인데 우리 현장에 접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야. 임 팀장이 정확하게 판단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니 고맙구먼.’

청탁받고 물리치기 어려우셨을 텐데 회사와 직원들을 위한 일이라면 당신의 어려움을 감내하신 분이 사장님이십니다.


제가 힘이 부족하니 임. 경영간부께서 안전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주셔야 직원들이 다치지 않는다는 제 이야기를 귀담아들으시고는 사업소를 방문하실 때마다 확대간부회의시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안전을 강조하셔서 안전분야에 힘을 실어 주셨던 사장님.


오늘이 백 스무 번째 안부편지

靈前(영전)의 사장님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워지면 어쩌지요.


오늘은 막걸리 한잔 해야겠습니다.

사장님 몫으로도 한잔 채워 놓겠습니다.

당신이 보고파지면 어쩌지요.


막걸리 잔이 하나 둘 비어 가고

기억을 지우려 취하게 술을 먹어도

당신의 엷은 미소가 남아있다면

..... 할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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