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기

100. 준 것일까? 받은 것일까?

100번째 안부편지를 보낼 때면 안전의식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by 물가에 앉는 마음

누구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바로 갚아야 하는 성격을 두고 집사람은 보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 마음의 부담감으로 인해 받는 것조차 꺼리지만 받을 때도 있고 줄 때도 있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맛이 아닐까 합니다. 울진과 영광에서 같이 근무했던 식구들은 명절이 되면 오징어와 굴비 등 선물을 보내줍니다.

선물 받기 부담스러워 안 주고 안 받기를 하자고 하기도 하고, 저에게 보낼 선물값을 미리 주거나 먼저 선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준 것의 배로 받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아무튼 집사람 표현대로 예의도 없고 성격이 못되었다고 할까 아니면 情感(정감)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 몰라도 선물 받는 것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닙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안전편지를 쓰는 것을 직원들에게 주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업무 하면서 얻는 지식들을 共有(공유)하는 것이므로 직원들에 대한 무료 서비스로만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선, 후배님들과 술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흰소리들도 편지로 나가고 있으니 이것은 서비스도 아니고 굳이 따진다면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안전사고를 줄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회사에서 월급 받고 있으니 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편지 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업무 외 시간에 편지 쓰는 것이므로 적어도 직원들에게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란 시간이 흐른 다음 생각해 보니 제가 준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받아 부담이 커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니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관심과 사랑은 커다란 빚으로 남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기획처 김 차장님은 개인 홈피와 같은 패키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사실 처음 편지는 비공식적인 형식이었으니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다했으나 패키지가 만들어지고 난 후 筆禍(필화)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여 언어와 문장선택에 신경 쓰게 되었습니다. 거칠고 험한 편지내용을 조금은 세련되게 변화시켜 준 사람은 김 차장님입니다.

멀리 필리핀사무소에 있는 배 대리님부터 가깝게는 노동조합 이 국장님도 든든한 후원자이며 언젠가 單行本(단행본)으로 책을 만들어 내자며 격려해 주신 분입니다. 격려해 주신 분들로 인해 코가 꿰어 한주도 쉬지 않고 있는 말, 없는 말을 쏟아냈는지 모릅니다.


오늘로 백 번째 안전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강의실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

공문으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

오프라인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도 온라인상에서는 가능했기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한 업무 하며 知得(지득)한 많은 정보들을 쌍방향으로 주고받으며 100개 이야기를 만들어왔습니다.

답장을 보내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든 선, 후배님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방문하시는 사업장마다 ‘안전해야 한다, 안전해야 가정이 행복하다.’고 귀에 못 박히도록 말씀해 주시는 사장님, 감사님, 본부장님께도 거듭 감사인사 드립니다. 일일이 거명하기 벅차지만 월요일 간부회의 시 안전편지 읽어봤냐고 숙제검사하시는 처장님과 사업소 게시판에 게시하고 사업소 통신망에 다시 띄우시는 소장님과 안전관리자도 계십니다. 솜씨 없는 내용이었지만 많은 분들 도움으로 안전이 우선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一助(일조)하였다고 감히 自評(자평) 해 봅니다.


25년 넘게 근무하면서 회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결혼도 해주게 하였고 집을 주었고 차를 주었는데 제가 회사를 위해 한 것은 너무 보잘것없기에 무엇인가 꼼지락 거리며 회사를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많이 남은 듯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고 회사 옆을 지날 때마다 ‘내 회사, 아빠 회사, 할아버지 회사’라는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남은 것을 아낌없이 줘야 하니까요.


인사이동으로 본사에도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자리가 정리되고 나서 새로운 식구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면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 같습니다. 사무실 앞의 민들레가 피어 홀씨 날리는 것도 이야깃거리가 될 테니까요. 현장 경험이 많은 새로운 식구들과 이야기가 오간다면 새로운 주제의 이야깃거리가 생길 듯합니다.

같은 군인이되 해병대와 육군이 다르듯 한전KPS는 다른 정비회사와 무엇이 다를까?

타 정비업체는 백만 원짜리 정비를 하고 우리는 천만 원짜리 정비를 해도 팔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천만 원짜리 정비를 하려면 무엇이 달라야 할까?

한전KPS人 이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100번째 안부편지를 보낼 때면 안전의식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첫 번째 안부편지를 보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드디어 100번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드린 사랑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랑 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