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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Dec 24. 2023

835. 아주 보통의 행복(2)

최인철著, 21세기북스刊

자기만의 질문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signature는 본인 고유의 필체로 자기 이름을 서명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요리와 골프장의 시그니처 홀은 그곳만의 특징을 담고 있는 요리와 홀을 뜻한다. 사람에게도 당연히 ‘그 사람’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특징이 있다. 오바마는 품격, 이순신은 용기, 테레사수녀는 박애가 생각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시그니처 특성이기 때문이다.

 시그니처 특성은 질문으로 나타나 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어느 드라마 주인공의 ‘이게 최선입니까?’, 정주영 회장의‘해보기는 했어?’라는 질문처럼 자기만의 질문이 있다. 어머니는 평생을 ‘밥은 먹었니?’라고 물으시는데 형편도 좋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존재이유가 그 질문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밥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라면 성직자는 영혼의 양식에 질문하는 존재다.

 한 사회에도 시그니처 질문들이 있다. 갤럽은 각국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제 하루,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았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했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믿을만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까?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여기에 대한 답이 우리의 행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때, 무언가를 배워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충만할 때,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일을 잘 해낼 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믿을 가람이 있다고 안심할 때,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을 때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은 존중, 성장, 유능, 지지, 자유와 같은 내면의 욕구에 의해 결정된다.

 다섯 가지 질문에 ‘예’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을 토대로 순위를 측정한 결과 충격적 이게도 우리나라는 89개국 중 83위를 차지했다. 우리 사회가 주로 던지는 질문들은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에 관한 것들이다. 돈을 잘 버는지는 묻지만 자율적으로 살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아파트 평수는 묻지만 외롭지 않은지는 묻지 않는다. 내면에 대한 질문이 실종된 사회다.

 자기만의 질문을 가져야 한다.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시그니처 질문을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이건 사회건 그것의 품격은 그가 던지는 질문의 품격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비결이 뭡니까?’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는다. 잔국 수석을 차지한 학생에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비만 환자에게, 맨손으로 회사를 창업한 사업가에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싱겁기 짝이 없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죠.’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을 많이 했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죠.’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난감 한 질문이다. 행복에도 특별한 것이 없으니 말이다. 행복이란 오로지 일상을 위한 일상에 의한 일상의 행복이다. 행복에는 사교육도 신비로운 묘약도 없다. 행복이란 그저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밥 먹고, 일하고, 대화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함 속으로 더 깊이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 행복이다.


마음의 가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테복음). 성경에서 ‘마음의 가난’을 행복의 첫째 조건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비우라 한다. 마음이 텅텅 비고 가난해야 모든 것이 선물로 다가오기 때문이며 모든 것이 선물로 느껴질 때 행복은 정점에 도달한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이미 넘친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선물로 다가오지 않는다. 구태여 물질적인 가난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아침의 햇살, 불어오는 바람, 불타는 노을, 밤하늘의 별 등세상의 어느 하나 선물 아닌 것이 없다.


나이 듦: 만병통치약

 나이 드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다. 나이 들수록 감사가 늘어나며 물욕과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줄어들며 몸은 부지런해진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외로움이 증가하는 것으로 젊은 날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은 좋은 친구를 만드는 것임이 분명하다. 


당신은 큰일 났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삶의 만족도가 증가하지만 타인에게 불친절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행복감이 감소한다. ‘고집불통 영감쟁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사람들로 괴팍하고 별난 성격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떠나간다.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나이 들면 행복으로 보상받는다.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라면 노후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불친절하다면 당신은 큰일 났다.


생각의 속도위반

 빨라지는 다운로드 속도, 새벽배송 등 우리는 엄청난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은 속도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은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다. 빠른 생각보다 뚝심 있는 생각이 이긴다. 생각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오랜 화두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저력이 있다. ‘느리게 생각하기, 천천히 걷기, 여유 있게 바라보기’는 속도의 시대에 필요한 행복의 조건이다. 


반전의 행복

  가장 부자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예쁜 사람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건강한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면 인생은 별 재미가 없다. 신은 곳곳에 반전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더 행복할 수 있고,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즐거울 수도 있고, 평범한 사람이 누구보다 비범한 삶을 살 수도 있다. 학자들은 이를 ‘웰빙의 역설’이라 한다.

 행복에 단 하나의 원인만 존재한다면 이 역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을 결정하는 원인이 다수이기에 반전이 만들어진다. 한 가지 원인에서 뒤져도 다른 원인에서 앞설 수 있기에 행복의 조건이 많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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