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 잘 살고 있는지?(10): 마음 편하게 살기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나태주詩)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전편의 마지막 문단: 결국 급여의 적정선은 본인 마음에 그어져 있으며, 월급통장은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는 스님의 장삼자락이나 바랑을 닮았다.

월급 많은 곳보다 마음과 영혼 편한 곳을 찾는 것이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며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선후배들과 막걸리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듯 끄적거린 것이 너무 길게 이어졌다. 밤새워 마시고 동이 트려 하니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열꼭지를 맺으려 한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살기로’ 한 것은 현시점의 결론이지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 살고 있는지?’는 죽기 전까지 고민해야 하는 주제이기에 잠시 접으려 한다. 마음 편하게 살려고.


특정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직장인들의 공통된 욕구이며, 넓은 세계에 대해 동경을 갖지 않는 것은 무생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었다. 퇴직 전까지 세상을 넓게 보는 능력을 기르는 한편 전문가가 되기 위해 아니 적어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다. 나이 50 되기 전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고갈되어 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회사에 매어있는 공적 영역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다. 승진시켜야 할 딸린 식구들이 많으니 조금 더 참아야 한다.

드디어 때가 왔다. 퇴직 이후의 삶은 넓지 않고 깊지 않게 살기로 했다. 넓고 깊게 따라가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따라다니다 끝날 것만 같았다. 이제는 넓은 세상 쫓아다니기보다는 고유의 삶을 살기로 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마음 편하게 살기로 했다.’에 가까울지 모른다.

의도적으로 넓고 깊음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누르려하며 삶의 속도도 낮추려 한다. 흥미를 갖게 되면 심취하는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김정운 교수처럼 존경스러울 정도로 죽자 사자 달려드는 것은 아니다. 김정운 교수는 잘 나갈 때 교수직을 던졌고 방송, 강연도 접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일본에 春畫(춘화) 배우러 유학 가서 그림을 배웠고 현재는 외딴섬에서 그림 그리고 글 쓰며 살고 있다. 교수로 정년퇴직하면 시기를 놓쳐 진정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았기에 용기 냈다고 한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무모하게도 보이는 김 교수님 만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끄적거린 지 10년이 넘었으나 발전도 없고 주제와 스타일이 비슷해 조금 식상해졌다. 취미활동으로 끄적거리는 것이니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방향변화가 필요할듯하다.

퇴직 전에는 전 직원들이 보게 되니 회사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했으며 퇴직 후에도 회사 이야기를 끄적거린 내용이 상당수였다. 회사에 매어있던 재갈 같은 것을 풀었다. 매주 글을 받아보던 독자들도 일부 정리하고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브런치로 왔다.

취미와 재미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돈, 시간, 노력’을 투자한다. ‘재미’가 아닌 ‘수입’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면 ‘취미’가 아닌 ‘본업’이자 ‘사업’이다. ‘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쓰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취미’, 벌기 위해 하는 일은 ‘사업’이다.


따져보면 모든 취미가 그렇듯 끄적거리는 것도 철저한 비효율성과 비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낚시와 일맥상통한다. 신선놀음처럼 보이는 낚시도 꽤나 힘이 소모되는 취미다. 새벽같이 일어나 먼 길 떠나고 무거운 짐 지고 낚시 포인트까지 이동해야 한다. 게다가 여름 더위는 살인적이며 붕어와 치열하게 머리싸움 해야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머리 굴려 얻는 것이라고는 비린내 나는 붕어 몇 마리에 불과하다. 투망이나 통발을 놓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그나마 꼬박 밤새워 잡은 붕어들을 다시 놓아주는 것을 보면 생산성은 마이너스다. 낚싯대 한쪽에는 벌레가 달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멍청이가 달려 있다는 것은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끄적거리기는 취미도 유사하다.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멍청이가 앉아 좋지 않은 머리를 짜내며 고민한다. 이렇게 표현할까? 아니면 저렇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머릿속이 헝클어진 날에는 원고 한 줄도 얻기 어렵다. 책 읽고 끄적거리는 것이 돈이 되기는커녕 용돈 상당액을 투자해야 한다.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낚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하지만 취미이기에 오늘도 용돈을 투자하며 재미를 배가 시키기 위해 낚시소품과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구입한다.


넓지 않고 깊지 않은 나만의 삶을 살기로 했지만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계획수립 업무를 했기에 사생활도 계획 내에서만 움직였고 사소한 일이라도 계획이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편했다. 무계획이란 용납되지 않는 단어였다. 취미로 끄적거리는 것 하나도 계획과 방향 설정이 필요했었으나 이제는 재미있지 않다면 하지 않는다.

마음 편하게 살기로 했으니 의도적으로 머리 비우고 마음 비우고 산다. 취미와 재미로 낚시하듯 또 끄적거리듯..., 한편으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끝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만 편하면 되지.


최근 읽은 책에 살아왔던 방식과 반대되는 내용이 있었다. 무계획으로 살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선배들의 이야기, 과연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의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선배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가는 선배가 계시다는 게 참으로 고맙다. - 그러라 그래 (양희은著, 김영사刊) -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나태주詩)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 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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