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선친이 쓰신 詩인데 요즘 우리들 생각과 별반 차이 없지요?
酒神(주신) 班列(반열)에 오를만한 주량은 아니지만 술을 어지간히 마시고 다녔다. 친구는 양조장집 아들이라 종일 술 냄새를 맡고 자랐고 나는 젖꼭지 떼자마자 병꼭지 문다는 林氏(임씨) 집안 둘째 아들이 아니었던가.
고량주에 한참 입맛을 빼앗겼을 때 장충동 원조족발집에서 친구와 둘이 앉아 소주하나에 고량주하나를 다섯 번이나 시켰다. 친구가 소주 다섯 병, 나는 고량주 다섯 병을 먹을 때쯤 주인이 다가와 둘이 싸우고 있냐? 아니면 술 먹기 내기를 하고 있냐? 물을 정도로 술을 마셨고 학교에 출석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단골술집으로 찾아올 정도로 학교에서는 유명한 酒黨(주당)중 한 명이었다.
酒神(주신)을 넘어 酒仙(주선)의 경지에 들어섰던 아버님도 약주를 즐기셨다. 詩(시)를 쓰시고 신문기자를 오래 하셔서 주머니가 얄팍한 글쟁이들과 通禁(통금)이 없었던 신문기자들은 술집 문을 닫으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延禧屋(연희옥), 날마다 酒宴(주연)이 열리는 연희동 우리 집 別號(별호)는 연희옥이었다.
변변한 안주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니 우리 집에는 안주용으로 닭을 키웠고 한두 마리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이백마리 정도 키웠던 기억이 난다. 날마다 벌어지는 주연에 연희옥은 손님들로 넘쳐났고 닭이 줄어드는 만큼 술 향기에 취한 내 酒量(주량)은 늘어만 갔다.
신혼은 결혼식 올리고 2달 여가 지나서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노는데 미쳐서 결혼도 늦었지만 결혼식 후 2달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먹고 다니니 새색시 눈물이 마를 날 없었다. 하도 술 먹고 다니니 아버님 모시고 낚시 갔을 때 忠告(충고)를 해주신 말씀이 있다.
둘째야,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평생 먹을 술의 양을 정해주시는데 젊었을 때 많이 마시면 나이 들어 마실 술이 없어진단다. 음미하면서 조금씩 마시고 다녀라. 1년 365일 약주를 드시고 다녔던 아버님은 신장투석으로 말년에 약주를 못하셨으니 맞는 말씀이시다.
주량은 예전 같지 않지만 지금도 가장 행복한 시간은 포장마차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이다. 酒(술)에 醉(취) 하지 않고도 雰圍氣(분위기)에 醉하고, 言(말)의 饗宴(향연)에 醉하고, 同僚(동료)와의 友情(우정)에 醉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직장인들 하는 이야기야 처음부터 끝까지 회사이야기이니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포장마차에서는 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른다.
가끔씩 시계를 보면 10시, 12시, 2시... 행복한 시간 외 근무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포차 사장님 얼굴이 찌푸려들 때쯤이면 아쉽게도 행복한 시간 외 근무를 끝내야 한다.
매번 하는 다짐이지만 나이 들어 마실 술이 적어지지 않도록 다음부터는 아버님 말씀대로 술을 조금씩 나눠 마셔야지 다짐하면서...
酒 酊 (주 정)
오입장이들이 모이면 오입이야기,
신문장이들이 모이면
신문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에선 술값을 따로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직골 명월네 집이나
광화문 골목 특별집, 납작집,
그런데서
월급이 나오면 갚기로 하고
술을 청한다.
제길헐
이거야 소경 제 닭 먹는 격이지,
신문 이야기는 회사가 잘 되라고 하는거 아닌가.
진짜 회의를 하는건데
진행비 몽땅 우리가 대고.
자, 우선 술을,
술을 들고 얘기하자구.
아침만 해도 그렇지,
우리야 뭐
눈만 뜨면 신문,
다방에 들러서도 못다 본 신문을 보며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
자, 우선 술을
술을 들고 얘기하자구.
그렇지 않냐 말이요.
말하자면 새벽부터 잘 때까지
회사 일을 하고 있는데,
나 같으면 사정을 살펴서
이 자식들이 얼마나 마시나 보자,
턱 솜씨를 보이겠어.
자, 우선 술을
술을 들고 얘기하자구.
아,
갈리래오, 봉소아, 그린․포트
명동의 그 술집들
아가씨들은 어찌됐노.
* 40년 전 선친이 쓰신 詩인데 요즘 우리들 생각과 별반 차이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