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로 삼을만한 인생의 스승
師表는 學識(학식)과 德行(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란 뜻입니다. 그런 분을 가리켜 배우고 깨우침을 많이 줘서 내 인생의 사표로 삼을만한 분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합니다.
뺑뺑이였지만 나름 名文(명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사표로 삼을만한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학창 시절 공부를 게을리하여 뚜렷하게 생각나는 스승님은 많지 않습니다. 편지 쓰면서 학창 시절 어느 분께서 깨우침을 많이 주셨을까 생각을 곰곰이 했는데 이상하게도 ‘미친개’, ‘독사’, ‘돼지아빠’ 등 저를 괴롭히셨던 분들만 떠오르니 사표로 삼을만한 분이 계시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탓이며, 야단맞은 기억만이 强烈(강열)하게 남아 있는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정신 차리고 회사에 들어와 여러 선배님들께 배우는 것이 학창 시절 배웠던 것의 몇 배가 됨을 알고 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휘청거렸던 직업관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시고 업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틀을 잡아주신 M처장님은 아직도 현직에 계십니다. 업무 하실 때 날카로움은 여전하시며 분석력과 미래에 대한 慧眼(혜안)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요즘도 번득이는 아이디어 보따리를 풀어놓으시는 것을 보면 저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사 올라와서 모신 H본부장님은 언제나 눈웃음을 멋지게 지으시던 분으로 퇴직하셨지만 대표적인 德長(덕장)중의 한분이라고 누구나 꼽는 분입니다. 요즘도 술자리에서 모시게 되면 인생을 의미 있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는 등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친형님보다 따뜻함을 느낍니다.
부사장님을 하셨던 Y처장님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남다르셨습니다. 원자력정비기술센터 밑그림을 일주일 만에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실 정도였고 한전에 계실 때부터 업무에 관한 한 一家(일가)를 이루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Y처장님은 원자력정비센터 확보계획, 중장기 교육훈련계획, 중장기 기술개발계획, 종합연수원 확보계획 등 회사의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게 하여 저에게 장기적인 眼目(안목)을 길러주신 분으로 기억됩니다.
停年(정년)을 앞두고 계신 K부처장님은 은근함과 꾸준함이 남다르셨습니다. 또한 順理(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없으셔서 업무와 인생의 FM으로 불릴만한 분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시는 적이 없었고 부하직원들 고충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스타일로 제가 팀장을 하게 되면 K처장님 같이 통솔해야겠구나 할 정도로 가르침을 많이 주셨습니다.
제 딴에는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되어 책상서랍을 잠그고 업무 보이콧을 한 적이 있었는데도 제 마음을 헤아려 시간이 지난 후 속사정을 이야기하셔서 오히려 제 얼굴이 붉어지게 만든 분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고 한참 혈기왕성했던 차장 시절이었습니다.
김수환 樞機卿(추기경)님의 善終(선종)은 사회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臟器寄贈者(장기기증자)가 急增(급증)하였고 사회 전반적으로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사랑과 봉사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가톨릭계, 불교계, 기독교계에서도 큰 어른이 떠나신 것에 대해 추모하고 전국에서 모인 조문인파가 40만 명을 넘었다는 것을 보면 인생의 사표였던 분께서 他界(타계) 하신 것임에 분명합니다. 통장에 남은 잔고가 900만 원이나 주변에 나눠준 黙珠(묵주) 값을 제하고 나면 잔고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집권 후기 장기집권을 노린 독재자라는 평가를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헤어진 내의와 색이 바래고 너덜너덜 해진 혁대를 차고 생활하셨습니다. 또한 선친께서 점심 초대를 받아 엄청 기대했는데 청와대 반찬이 특별한 것이 없더랍니다. 검소한 정신은 충분히 사표로 삼을만합니다.
직장에 들어와 사표로 삼을만한 인생의 스승이 계셨다는 것은 선배님들을 잘 만났다고 할 수 있으며 운도 따랐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늦기 전에 M처장님과 K부처장님 모시고 소주 한잔하면서 비법에 대해 자문을 구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