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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16. 2024

−1. 始釣會(시조회)

막걸리를 두 잔씩이나 천지신명께 올린 효과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혹한기에 고운 손을 호호 불어가며 두꺼운 얼음을 뚫고 겨울 낚시하는 광적인 분들도 계시지만 일반적인 주말조사들은 봄철 물 낚시가 시작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겨우내 묵혀두어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낚싯대를 꺼내 닦고, 낚싯줄도 갈아주는 등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조사들의 애끓는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 얼음은 쉽게 풀리지 않아 물 낚시 시즌이 시작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4월 12일, 본사 시조회는 조금 늦었습니다. 조직 단위로 업무가 추진되다 보니 회원들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택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양평에 소재한 물 맑은 저수지에 모인 십여 명의 조사들은 소풍 온 아이들 마냥 마음이 들떠 낚시터가 시끌 법석합니다.


 시조회 겸 안전기원제가 열렸습니다. 제주가 강신을 하고 축문을 외우며 본사 낚시회원 모두가 올 한 해 본사낚시회가 번창을 하고 회사의 안전을 기원했습니다. 안전재난관리팀에 근무하는 제가 따라갔기 때문에 예정에 없던 순서가 갑자기 생겼습니다. 회사와 전 직원들의 안전을 위하여 막걸리 한잔 올리고 제상에 올려놓은 북어 입에 만 원짜리도 물려주었습니다. 붕어낚시를 하는 시조회이기 때문에 돼지머리가 아닌 북어가 올랐는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올 한 해 낚시회원들은 어복 충만하고 임, 직원들이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기원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막걸리를 두 잔이나 드신 천지신명께서 취하지 않으셔야 기원을 들어주실 텐데... 한편으로 걱정입니다만 두 잔을 연거퍼 드셨으니 올 한 해 두 배의 성과를 내려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안전이 중요시되고 있는 문화가 생겨 속으로 흐뭇합니다. 사업소에서, 본사에서, 공식적이던, 비공식적이던 해가 바뀌고 첫 번째 하는 모든 행사에는 안전을 기원하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 알게 모르게 회사의 무사고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고 회사가 성숙기에 들어섰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자신이 안전팀에 몸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회사 저변에 안전해야 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은 회사가 일류기업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증거이니 기분이 흐뭇해지는 것입니다. 예전에 못 살고 못 먹을 때는 돼지머리 놓고 하는 제사의 기원문은 “사업이 번창하고 돈 많이 벌게 해 달라”는 금전적인 기원 일색이었으나 웬만큼 먹고살게 되었으니 안전과 직원들의 삶의 질을 챙기게 되었다는 반증입니다. 사실 예전 우리 회사의 문화 역시 그랬습니다. 돼지 잡아 고사를 지내는 날에는 무슨 행사인지는 관심이 없었고 고사가 끝난 후에 먹는 막걸리와 돼지고기에 신경을 쓰던 흑백사진처럼 색 바랜 기억들이 우리 회사 고사문화이자 당시 수준이었습니다. 


 시조회에는 본사 회원들 뿐 아니라 멀게는 삼천포에서도 오셨고 울진에서도 오셨고 본사낚시회에 몸담고 계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붕어를 많이 잡고 적게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랜만에 친한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하고 기뻐하는 자리였습니다. 회사와 직원들 안전도 같이 빌어주는 소중한 회합의 장이었으며, 동료가 잡은 붕어 한 마리에 내가 잡은 것 같이 기뻐하며 손뼉 쳐주는 진정한 조사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막걸리를 두 잔씩이나 천지신명께 올린 효과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어복 충만하라고 기원 했었는데 제가 1등을 하였고 큼지막한 상을 받았으니 효과가 즉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와 임직원들의 안전도 기원했으니 아마도 즉시 효과가 나타나서 올해는 병상에 누워계시는 동료가 없는 사 창립 이후 첫 번째로 '무재해원년'이 될 것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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