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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09. 2024

862. 여유를 마시는 커피

우리 집 커피는 느린, 여유 있는 커피로 매일 맛이 다르다.

 커피 열매(커피 체리)에서 과육을 벗겨내면 씨앗이 나온다. 이를 커피콩(coffee bean), 커피 生豆(생두)라 부르지만 실은 씨앗이다. 生豆를  볶으면(Roasting) 우리가 흔히 보는 짙은 갈색의 原豆(원두) 커피콩이 된다. 이를 갈아서 뜨거운 물에 우려낸 것이 속칭 원두커피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말에 커피가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1인당 커피소비량은 세계 2위, (1위 프랑스), 커피시장규모는 세계 3위(1위 미국, 2위 중국)다. 은퇴자들이 창업한다는 전국 치킨가맹점수는 2022년 기준 32000개인데 반해 전국 커피점은 약 10만 개로 3배에 달한다. 

 ‘얼죽아’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원두커피가 대중화되었다. 사무실이나 전화상으로 ‘차 한잔하지’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튀어나온다. 여기서 ‘차’는 '녹차나 홍차'가 아닌 ‘coffee'가 된 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길만 나서면 쉽게 접하는 대중음료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부잣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차가 커피였다. 맥스웰, 맥심, 초이스 인스턴트커피는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오던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 귀국 선물이었다. 이후 국산커피가 생산되고 세계 최초라는 ‘봉지커피(믹스커피)’가 등장하며 폭발적 인기와 함께 대중화되었다. 

 낚시터에서도 낚싯대 펴고 자리 잡은 후 마시는 커피 맛은 일품이다. 하긴 커피 맛이 없던 적이 있었던가? 일어나자마자, 식사 후 습관처럼, 야근하며 졸음을 쫓기 위해, 논일하는 농부들도 휴식시간이면 믹스커피를 피로회복제처럼 마셨다. 설탕과 크림이 들어가니 고열량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피로회복이 되는 것도 맞다. 2022년 11월 4일 경북 봉화에서 탄광매몰로 광부 2명이 221시간 만에 구조되었다, 그들을 살린 것은 봉지커피 30개였다.


 집에서는 원두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려먹는다. 미각이 발달하지 않아 섬세한 맛을 잡아내지는 못하고 ‘맛있다, 없다’ 수준이지만 커피 내리는 시간과 과정을 즐긴다. 원두를 가는 핸드밀과 전동밀이 있지만 핸드밀을 좋아한다. 전동밀은 자동으로 여러 면에서 편리하나 신경질적인 소음이 듣기 싫어 핸드밀을 사용한다. 

 핸드밀은 약간의 노동을 요구하지만 그라인딩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피 향은 마실 때 풍기는 향과 다르다. 또한, 핸드밀에 배인 커피 향은 노동의 수고를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10년 이상 커피 향이 밴 핸드밀은 어느 커피 향에도 꿀리지 않으며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대리만족을 준다.

 차 한 잔 마시는 여유와 전동밀은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전동밀의 높은 소음은 여유를 저 멀리 쫓아낸다. 조금 느려도 손으로 직접 가는 동안 커피 향내를 음미하는 것도 커피를 마시는 과정이다.


 커피전문가들은 생두가 절대적으로 커피 맛을 좌우한다고 한다. 물론 생두를 볶고, 커피 내리는 기술도 커피 맛에 영향을 주지만 일단 생두가 좋아야 한다. 대부분은 로스팅된 원두를 구매하여 내려먹고 있지만 요즈음에는 본인이 직접 볶고 내려먹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원두가 같더라도 손으로 내리는 커피 맛은 매일 조금씩 다르다. 원두의 분쇄도, 커피 물의 온도, 드립퍼에 물을 붓는 속도와 양이 같을 수 없기에 매일 커피 맛이 다르다. 물론 바리스타(Barista)들은 그들 고유의 레시피가 있지만 비전문가들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 


 모든 정보가 있다는 유튜브에 있는지 몰라도 ‘커피원두를 곱게 갈 것인가? 거칠게 갈 것인가?’도 관건이다. 거칠게 갈면 收率(수율)이 떨어지나 雜味(잡미)를 줄일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쳐 핸드밀 粉碎度(분쇄도)를 중간정도에 맞췄다. 물 온도는 85~90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너무 뜨거우면 쓴맛과 떫은맛이 따라오는데 요즈음 정수기는 커피 물 온도에 맞추는 기능이 있어 편리하다. 물 양도 커피 맛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커피 10g을 물 100cc로 내린 후 물 50cc로 희석하라고 한다. 누구는 30~40초만 추출하라고 하며, 커피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는 초시계를 켜고 커피를 내린다. 

 원두 20g 정도를 갈고 커피껍질을 불어서 제거한다. 커피머핀(coffee muffin: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머핀모양이 형성된다. 신선한 원두일수록 머핀이 풍성하게 커진다.)이 깨질 때까지 밖에서 안쪽으로 원을 그리며 물을 부으면 150~170cc 정도 추출된다. 입맛에 맞게 뜨거운 물로 희석한다. 양이 아쉽다면 2차로 커피를 내릴 수 있지만 색상은 비슷해도 쓴맛과 떫은맛이 우려 지며 원두 품질이 낮은 커피일수록 2차 커피는 마시지 못할 만큼 맛이 떨어진다.


 시행착오 끝에 얻은 비전문가 커피 레시피디. 대충 계산해 보면 ‘20g에 200cc 물로 30~40초만 추출, 50cc 물로 희석,’등의 전문가 레시피를 수렴한다. 비전문가가 내린 우리 집 커피는 느린, 여유 있는 커피로 매일 맛이 다르다. 원래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카페의 ‘today's special’도 주방장 기분에 따라 미묘하게 맛이 다르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원두의 품질, 바리스터의 기술과 무관하게 마음이 여유로울 때 마시는 ‘여유를 마시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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