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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21. 2024

867. 맹모삼천지교, 커피 로스팅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

 커피 로스팅 전문가들이 주위에 있어 언제나 신선하고 향긋한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지인들이 볶은 커피는 꽃향기와 과일향, 스모키향이 어우러진 오묘한 맛으로 입과 코를 만족시켰다. 오래 얻어먹다 보니 커피맛이 원래 그런 줄 착각했다. 가끔 맛보는 체인점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 차가운 맛에 마시는 음료로 생각했었다.

 퇴직 후에도 커피를 볶았다며 보내주는 고마움과 외출하면 마시는 스타벅스, 배달받아 집에서 내려마시는 원두커피사이에서 고민했다. 사실 로스팅하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고민할 일은 아니다. 편하고 경제적인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해서 내려마시면 그만인 것을 지인들로 인해 올라간 입맛은 내려올 줄 모른다.


 주문해서 먹는 커피원두 1kg 가격은 3만 원 정도다. 저가지만 프랜차이즈 커피 맛보다 좋은 맛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최소 1kg 10만 원 정도 줘야 제대로 된 커피맛을 즐길 수 있다. 물론 10만 원 이상되는 커피가 맛이 있다. 그동안 지인들이 내려주고, 보내줬던 커피는 10만 원대 커피다.

 1kg에 10만 원이라니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1회 20g을 소비한다면 50회를 먹을 수 있으므로 1회 2천 원이다. 카페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유명 프랜차이즈커피점보다 헐하며 커피 맛은 비교불가다. 뷰가 좋은 카페 커피가격은 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인들에게 매번 신세 지는 것은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다.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니 집에서 로스팅을 하려면 100만 원 정도 되는 장비(roaster)를 갖춰야 한다. 장비는 그렇다 쳐도 로스팅기술을 어떻게 습득할까? 지인들은 전문가에게 유료강습을 받았으니 시간투자를 해야 하는데 학원 가서 배우는 것은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게다가 로스팅과정에서 기름 섞인 연기가 발생하므로 배연가능한 장소도 확보되어야 한다. 

 이것저것 따지는 사이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새해 들어 세 번째 직업인 손녀돌보기가 시작되었고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는 아내의 희망에 따라 집안정리를 시작했다. 집안정리가 별것 있나? 가끔 사용하는 물건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 정리다. 아파트가 넓어지기 시작해 뒷베란다 공간을 확보했다. 공간이 생긴 김에 커피를 볶기로 결정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게는 기술보다 커피 볶는 장소가 가장 커다란 문제였다. 기술? 무식하게 독학으로 부딪쳐보기로 했다.


 사실 독학은 경제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프로로 나서려면 필히 유료강습을 받아야 하며 집에서 홈 로스팅을 하려는 사람도 제대로 된 커피맛을 보려면 유료강습을 받는 것이 좋을듯하다. 독학으로 로스팅을 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지인들이 로스팅하는 것을 봐왔던 소위 ‘서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이고, 들은 풍월과 어깨 너머 배운 지식’이 있었다. 원두 구입과 보관, 로스팅과정, 로스팅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로 인해 발생한 이웃과의 분쟁을 지켜봤었다.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살아가는 데 있어 환경과 친구가 중요하다. 친구를 잘 두니 친구 따라 로스팅을 하기로 했다. 믹스커피 좋아하는 친구들과 다녔으면 카누, 일리, 맥심을 놓고 어느 인스턴트커피가 기호에 맞을 것인지 논쟁을 벌였을 수도 있다. 지인들에게서 들은 풍월과 어깨 너머 배운 것들이 용기를 주었고 간접경험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듯하다.


 유튜브도 몇 가지 뒤져봤다. 수천만 원대 업소용 roaster와 설비를 갖추고 로스팅하는 내용도 있고, 로스팅전문가이면서 당근에서 3만 원에 구입한 중고 자동전기냄비를 이용해 로스팅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 유튜버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 로스팅하면서 10년 이상된 전문가와 똑같은 수준의 커피 맛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맞다. 내가 하려는 로스팅은 전문가 수준이 아닌 신선하게 갓 볶은 원두커피를 아침에 한잔 내리는 것이다. 기껏해야 아내와 내가 먹을 하루 20~50g을 소비한다. 원두커피를 구입한 후 냉동실에 한 달 묵힌 커피와 신선한 커피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물론 전기냄비로 로스팅하는 것은 커피 고유의 다채로운 풍미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만 원두가 좋으면 근사한 맛이 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지인들도 그랬다. ‘로스팅기술이 좋아야 하지만 결국에는 원두품질이 절대적이다. 로스팅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저가 원두로는 한계가 있다. 대형프랜차이즈들은 바잉파워가 있어 만 원짜리 생두를 5000원 미만으로 구입해 로스팅으로 기술을 입혀 근사한 맛이 나도록 만든다. 일반인은 만원에 구입해도 같은 맛을 내지 못하니 고가 생두를 구입해야 한다. 대신 대형프랜차이즈가 만들지 못하는 신선함과 풍미를 얻을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일단 저질렀다. roaster로 자동전기냄비를 주문하고 生豆(생두)는 망칠 것을 감안해 kg당 1~2만 원대 가격으로 7kg을 구입했다. 분명 실패와 성공사이를 오고 갈 것이므로 고가의 생두는 부담이고 그렇다고 저가의 생두를 구입하면 만에 하나 로스팅에 성공해도 맛이 떨어질 테니 생각해서 고른 가격대다. 물론 지인들은 이 정도 가격의 생두로도 훌륭한 맛을 낸다.

 전기냄비는 매우 간단하다. 온도와 시간은 다이얼로 설정하게 되어 있고 자동으로 교반 되는 전기 프라이팬이다. 치명적 단점이 있다. 자동전기냄비는 땅콩, 아몬드, 커피 등 모든 곡물을 볶는 범용성은 있으나 아무런 설명이 없다. 냄비 내의 온도파악과 조절은 불가능하여 결국 눈과 코로 성공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예열시간, 생두투입량, 가열지속시간, 가열온도는 미지수라 시행착오를 통해 특성을 파악하기로 했다. 

 변수는 또 있다. 구입한 생두는 특성상 로스팅포인트가 상이하다. high(연한 갈색), city(중간 갈색), 또는 Full city(진한 갈색)로 구워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roaster 성능이 아닌 사람의 오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생초보의 생각이다.


 생두껍질인 체프를 날리기 위한 거름망과 냉각용 팬, 로스팅과정을 기록할 노트, 무게를 다는 전자저울을 준비했다. 빠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눈과 코와 입이 있으니 얼추 준비된 듯하다. 이제는 많이 볶고, 덜 볶는 시행착오만 남았다. 


주의 및 경고 1: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이므로 따라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주의 및 경고 2: 로스팅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된다. 취미를 붙이지 못할 때는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 

주의 및 경고 3: 앞으로 계속되는 커피이야기는 전문적이지 못하므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구입 또는 전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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