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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28. 2024

870. 로스팅 첫걸음, 역시나 곰손

‘인생은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연녹색 또는 황색의 커피 生豆(생두)는 커피 豐味(풍미)가 전혀 없다. 되려 약간 시큼하고 매콤하다고 할까? 우리가 접하는 커피 향과는 거리가 멀다. 숙성과정에서 생긴 시큼하고 매콤한 향을 구수하거나 향긋한 맛과 향기로 이끌어내는 과정이 로스팅이다.

 無香(무향)인 생두에 열을 가하면 1500가지 성분이 변한다는데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을듯하다. 단백질과 당분 등이 캐러멜화되며 고유의 풍미를 끌어내는 것이 로스팅기술이다. 밥 하는 것과 비교하면 설익거나 타지 않게 하여 고유의 밥맛을 내게 하는 것이 로스팅기술이다. 


 구입한 Roaster의 볶음 가능한 용량이 800g이라 했지만 어림짐작으로 300g이면 적당 할듯하다. 생두 300g을 투입했으나 전기적 용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300g을 투입하니 일시적으로 내려간 온도가 회복하는 시간이 더디며 攪拌作用(교반작용: 휘저어 섞어줌. 아내에게 교반이라는 올드한 단어를 사용한다며 핀잔을 들었다. 적당한 단어가 무엇일까?) 이 시원치 않아 커피색이 균일하지 않은 현상이 발생된다. 추후 150g으로 줄였다가 200g으로 올렸더니 로스팅 均質度(균질도)가 향상되었으며 popping이 잘 일어났다. 예열은 2분 정도가 적당했다. (교반, 균질도 등은 올드한 단어가 맞으나 수십 년 전 중고등학생 때 배운 단어이기에 어쩔 수 없다.)

 로스팅학원에서 전문가에게 이론과 실습을 받아야 하지만 독학하기로 했으니 시행착오는 당연하다. 시작할 때부터 시행착오과정을 즐거움으로 여기기로 했다. 잘못 볶아진 키피콩을 버리는 것은 독학의 수업료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빨리 로스팅학원에 등록하거나 로스팅된 스페셜티원두를 구입해 커피를 내리는 것이 좋다.


 드디어 실습이 시작되었다. 자료를 찾아가며 로스팅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린다. 첫 번째 선택한 원두는 Guatemala huehuetenango SHB EP다. SHB EP는 뭘까? SHB(Strictry Hard Bean)는 1100미터 이상 고지에서 생산된 높은 밀도의 생두로 향미가 풍부하다. EP(European Preparation)는 유럽시장 규격에 맞게 결점 있는 생두를 골라냈다는 뜻이다. 구입한 5종의 생두 중 가장 저렴하나 청포도, 체리, 아몬드, 사향초, 맥아 향과 맛을 갖고 있다. 풍미. 산도 등은 가장 처지나 잘만 볶아내면 일반 카페에서 마시는 원두커피보다 맛날 수 있다.

 로스팅포인트는 Full city로 흑갈색으로 구워내 산미가 약하고 바디감을 높여야 한다. 검색결과 이 원두는 아이스커피용으로도 적합하다고 한다. Full city로 로스팅해야 하나 오버히팅되어 프렌치급으로 로스팅되었다. 난생처음 볶는 것이지만 Roaster 내에서 볶아지는 원두 색상과 향을 보고 실패임을 직감했다. 재빨리 Roaster의 전원을 내리고 원두를 냉각시켰다.

 전용 냉각설비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어깨너머 배운 대로 채반과 창고에 있던 써큘레이터를 준비했다. 써귤레이터를 가동하자 chaff(커피콩의 얇은 껍데기로 마늘 속껍데기 같은 얇은 막이다. 로스팅과정에서 원두에서 분리된다.)가 실패를 축하라도 하듯 바람에 벚꽃 잎 떨어지는 것처럼 날린다.


 로스팅 후 원두 내 가스가 빠지도록 2~3일의 숙성기간을 거쳐야 한단다. 마음이 급했는지 다음날 그라인딩을 하고 맛을 봤다. 심하게 탄 것은 아니지만 역시 탄 맛이 따라올라와 고유의 풍미를 사라지게 했다. 시행착오과정이고 수업료를 낸 것이다.

 버릴까 하다 혹시나 하여 로스팅 3일 후 커피를 내렸다. 탄 맛은 줄었지만 남아있다. 이번에는 자동밀로 그라인딩을 했기에 진하게 뽑아졌다. 청포도, 체리 아몬드, 사향초, 맥아 향이 있다 했지만 맛을 특정하기 어렵지만 첫날 내린 커피보다 풍미는 올라갔으며 끈끈한 맛과 무 바디감이 올라갔다. 아마도 맥아향으로 인해 끈끈한 맛을 느꼈을지 모른다.

 버리기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제 마셨던 북한강변 카페 ‘DAENERYS’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풍미가 좋은듯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탄 맛이 줄어들고 바디감으로 묵직하다. 어제 마셨던 전문업소 커피보다 2배는 맛난 것 같다. 실패한 원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용으로 쓰기로 했으니 첫 번째 로스팅 치고 완전 실패는 아니다. 갈 길은 멀어도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인들 수준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로 비교불가하다. 내 입맛에 맞게 커피원두를 고르고, 볶고, 갈고, 내리고 조용히 한잔 하는 재미로 시작한 놀이이자 취미다. 가끔 제대로 볶아 고유의 향과 맛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변덕으로 로스팅을 그만둘까 봐 저렴한 장비로 시작했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묘한 매력이 있다.

 원래 놀이와 취미는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며 서두르면 재미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게 살고 있다. 마사이족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격언을 좋아한다. ‘인생은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주의 및 경고 1: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이므로 따라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주의 및 경고 2: 로스팅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된다. 취미를 붙이지 못할 때는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 

주의 및 경고 3: 앞으로 계속되는 커피이야기는 전문적이지 못하므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구입 또는 전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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