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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n 04. 2024

873. 겁먹은 커피, 예가체프 아리차

2번째 로스팅은 덜 익어 실패했다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다. 그렇다고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며 무사히 회사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 했으므로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 꼼지락거리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낚시도 낚시동호회에 가입해 몰려다니는 것보다 혼자 다니는 것을 즐기고 끄적거리는 것도 작가회 회원들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커피 볶는 것도 동호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럿이 어울려야 하며 동호회 가입이 필수였다면 애당초 시도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커피로스팅은 낚시와 비슷한 면이 있다.  수온, 기압, 계절과 시기, 낚시터여건에 따라 채비와 미끼를 바꿔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듯 커피로스팅도 생두의 품종에 따라 로스팅 시간과 온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물론 전문가가 옆에서 도움을 주면 진도가 빠르겠지만 그리 빠르게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붕어를 낚아 먹는 것이 아니듯 커피를 볶아 팔려하는 것이 아니기에 혼자 노는 취미로 삼아 천천히 가려한다.


 두 번째 로스팅 대상은 Ethiopia yirgacheffe aricha G1 natural이다. G(Grade)는 결함 있는 원두 숫자로 나타내는 커피등급으로 숫자가 작을수록 품질이 좋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Ethiopia 기준으로는 350g당 결함 있는 원두가 0~3개일 경우 G1으로 분류한다. G2는 3~8개 G3는 9~23개, G4는 24-86개다.

 로스팅 후 깨지거나 모양이나 색상이 이상한 결함원두를 골라내 버리는데 G1등급인 경우는 생두 생산단계에서 꼼꼼하게 걸렀기에 버릴 원두를 찾기 어렵다. 이번에 볶은 aricha G1은 결함원두를 골라내지 않고 그라인딩을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일반적으로 Grade가 높을수록 가격도 높다. 하지만 커피의 풍미는 매우 주관적인 사항이므로 가격이 높다고 꼭 맛있다고 할 수 없다. 누구는 산미가 높은 맛을 좋아하는 반면 커피의 산미를 싫어할 수 있으니 가격의 고저보다는 입맛에 맞는 커피가 제일 좋은 커피다.

 같은 원두라고 해도 약하게 로스팅을 하면 향과 산미가 유지되고, 강하게 로스팅을 하면 쓴맛이 강해지고 바디감이 올라감과 동시에 산미와 향은 떨어진다.


 yirgacheffe aricha의 cupping note는 망고, 딸기, 자몽, 장미, 재스민으로 향이 뛰어나고 산미가 좋다. 생두의 로스팅포인트는 high, 다갈색으로 산미와 향미가 균형을 이루게 볶아내야 한다. 특히 Ethiopia yirgacheffe품종은 강하게 로스팅하면 고급스러운 맛과 향이 달아난다. 직전에 huehuetenango를 오버히팅하였기에 조심스럽다.

 로스터 온도를 200도로 낮추고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300g을 투여하고 15분이 지났으나 popping은 물론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 듯하다. 온도를 다시 올렸다. 이번에는 소심하게 온도를 너무 낮춰 잡은듯하다. 원두 색상은 제대로 나온 것 같으나 느낌으로는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 Roaster의 특성을 모르고 300g을 투입한 것도 한 가지 실패요인이다. 300g을 로스팅하기에는 열량이 부족하다. 또한 교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일부는 타고 일부는 익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여 huehuetenango의 경우에는 모두 익히려 하다가 오버히팅이 되었다. 반면 yirgacheffe는 낮은 온도에서 로스팅을 하다 설익는 현상이 발생되었다. 이를 계기로 투입량을 줄이기로 했다.


 Ethiopia yirgacheffe aricha G1 natural은 Guatemala huehuetenango SHB EP를 오버히팅시킨 후 로스팅한 두 번째 생두다. 이번에는 높은 온도에 겁을 먹었는지 낮은 온도로 로스팅하여 적정포인트인 high보다 한두 단계 낮은 수준으로 로스팅되었다. popping이 덜 일어나 핸드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 때 빡빡한 감이 느껴질 정도다. 첫 번째 로스팅은 태워서 실패했고 2번째 로스팅은 덜 익어 실패했다.

 하지만 그라인딩과 커피 내리는 과정에서 커피고유의 향기가 따라 나왔다. 산미도 적당하고 과일향과 장미향이 입안에서 맴돈다. 가벼운 맛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내도 맛을 보더니 산미와 향이 괜찮다고 한다. 지인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로스팅기술이 좋다고 해도 결국에는 원두품질이 좌우한다.’ 원두가 좋으니 대충 볶아도 되는 모양이다.


 Guatemala huehuetenango를 오버히팅시켜 겁을 많이 먹었나 보다. 로스팅포인트도 낮고 오버히팅을 조심해야 하는 예가체프라 너무 낮은 온도로 로스팅했다. 설익었지만 향기를 뛰어나게 만드는 방법을 체험했으니 독학으로 로스팅하는 사람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리고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아내도 원래 마시던 커피보다 좋다며 다음날에도 이번에 볶은 커피를 내려달라고 한다.

 한편으로 큰일이다. 로스팅에서 중요한 것은 再現性(재현성)이다. 다음에 로스팅을 할 때 같은 맛이 나오도록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불 조절에 실패하여 온도를 내리고 올렸다. 재현 불가능이다. 게다가 다음에는 투입량도 줄여야 한다.

 원두품종에 따라 로스팅온도를 조정하기보다 온도를 고정시켜 볶아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로스터의 온도는 225도로 고정하고 Roaster 예열시간은 2분으로 하기로 했다.


주의 및 경고 1: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이므로 따라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주의 및 경고 2: 로스팅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된다. 취미를 붙이지 못할 때는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

주의 및 경고 3: 앞으로 계속되는 커피이야기는 전문적이지 못하므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구입 또는 전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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