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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앉는 마음
Jul 30. 2024
898. 커피 고수의 훈수
'방화동 커피 볶는 집' 안남영 바리스타
Roasting Round 1을 끝내고 Round 2를 준비할 즈음 파이낸셜뉴스에 실린 커피 고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커피 고수는 서울에서 '방화동 커피 볶는 집'을 운영하는 안남영 바리스타로 2013년부터 커피를 본격적으로 배웠단다. 그의 말이 인상적이며 알고 싶었던 몇 가지를 해결해 줬다.
“같은 원두, 같은 온도에서 커피를 내려도 감정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커피 맛도 날마다 다르며 로스팅과 드립도 매일 다르다.”
“한 번에 한 가지 맛과 향에 집중한다. 커핑노트의 모든 맛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맛이 망가진다..”
독학으로 로스팅을 시작하며 온도와 시간을 표준화시키기 위해 품종별 로스팅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나 온도, 시간 편차가 많아 고민하고 있었다. 베란다가 작업장이며 창문 열고 작업하기에 外氣(외기)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기온과 외기에 열을 빼앗기는 정도는 기록하지 않았으니 편차가 발생하는 것 같다. 여건 좋은 카페에서 능숙한 기술자가 로스팅을 하는데도 ‘매일 다르다...’ 이것이 정답 아닐까?
사람이 하는 일이니 공산품처럼 품질이 일정할 수 없다. 그러나 고수의 로스팅은 완성도가 100이라 했을 때를 기준으로 예를 들면, 매일 다르다는 표현은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99.95, 어제는 컨디션이 저조해 99.80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초보자처럼 하늘과 땅을 오고 간다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배우고 있는 초보로스터에게는 매일 달라도 비슷한 맛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너무 많이 볶아서 묵직하기만 하고 산미와 향이 전혀 없다. 어제는 너무 덜 볶아 산미와 향은 있으되 날아갈 듯 가벼워 커피 같지 않다면 커다란 문제다.
로스팅과정의 기록이 ‘표준화’는 시키지 못하더라도 원두 품질 편차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깜박깜박하는 연령대에 접어들었으므로 지난번 로스팅에서의 문제점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리마인드 시키는 기여 또한 가능하리라 판단된다. 어느 정도 손에 익기 전까지는 편차를 줄이는 가이드북 정도가 될듯하다.
‘기록, 표준화’의 목적도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100% 똑같은 품질의 원두를 만들어내고자 함은 아니고 비슷한 수준의 원두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비슷한 수준’이 ‘100% 똑같은’으로 변해 고민으로 바뀐 것이다. ‘커피 맛도 날마다 다르며 로스팅과 드립도 다르다.’ 아무렴,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인데 다른 것이 정상이지.
또 다른 고민은 커핑노트였다.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나름 오감을 집중해 맛과 향을 구분하려 노력하지만 커핑노트에 있는 모든 향과 맛을 느끼지 못한다. 초보가 로스팅해서가 아니라 전문가가 로스팅한 커피에서도 예닐곱 가지에 달하는 향미를 모두 느낀 적이 없었다.
원두커피는 여러 가지 향과 맛을 가지고 있으며 커피 내리는 단계마다 팔색조처럼 변신한다. ‘원두를 용기에서 꺼낼 때 향기’, ‘핸드밀로 그라인딩 할 때 풍기는 향기’, ‘드립 할 때 신선한 거품이 만들어내는 향기’, ‘희석 전 맛과 향’, ‘희석 후 맛과 향’, ‘첫맛과 뒷맛’이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르지만 커핑노트에 있는 맛을 모두 느끼지 못했다. 장미향이 모든 향기를 덮어버리기도 하고 흑설탕 맛이 입안을 지배하기도 한다. 향과 맛에 집중하며 천천히 커피를 마셔도 내 후각과 미각은 둔감해 많아야 2~3가지 밖에 구분해내지 못한다. 그것도 운이 좋은 날에만.
커피 고수의 훈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번에 한 가지 맛과 향에 집중한다.’ 한 번에 여러 가지 맛과 향을 구현하려 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하다면 커핑노트에 적혀잇는 맛과 향은 저절로 따라 나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이야기지만 로스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유용하고도 회초리 같은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기교 부리지 마라. 기본에 충실하라.’ 세상 어느 일이나,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제1의 법칙이자 불문율이지만 가끔이 아니라 너무 자주 잊어서 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