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슬기로운 어부생활

쓰고 보니 ‘어리석은 어부생활’이 맞을 듯하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상황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기에 인간은 슬기롭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생활을 혁신시키고, 백신개발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생명이 걸린 일이기에 강제하지 않아도 술자리 잔 돌리는 오랜 관습을 일거에 고쳤고, 코로나19 확산정도에 따라 회식과 소모임도 금지했다. 가급적이면 출장을 가지 않고 영상회의, 이메일 자료교환으로 업무공백을 최소화 했다. 회사를 비롯한 식당에는 칸막이가 등장해 동료들과 같이 식사하는 재미를 앗아갔으나 혼술, 혼밥에서 재미를 찾는 중이다.

야외 취미활동도 단체 아닌 혼자 등산, 낚시하는 나 홀로 취미가 증가했다. 재택 취미활동도 늘어나 큰아이는 바느질 인터넷 강좌에 등록하여 양말을 뜨고 있고, 사위는 주방 한쪽을 제빵전용으로 만들어 빵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마들렌, 생크림 케이크, 식빵, 치아바타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제빵기술자 수준에 도달했다. 지병으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여 바깥출입이 어려운 미국 누나는 텃밭을 가꾸며 제법 탐스런 가지, 오이, 고추를 생산해 내는 농부로 변신했다.

우리 집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비싼 소고기는 집에서, 기름이 튀어 청소가 걱정되는 돼지고기는 음식점에서 먹었던 가족 외식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피자와 햄버거는 물론이고 족발, 회, 찜닭, 해장국까지 모든 메뉴가 해결되는 배달강국 대한민국에 사는 덕분에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을 배달하여 집에서 먹는다.


내 취미는 여전히 낚시이며 퇴직하면 지겨워질 때까지 낚시하기로 작정했기에 평일에 홀로 出釣(출조)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남들이 일하는 평일, 낚시터는 조용해 사색(좋게 말하면 사색이나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하기 좋다. 수달이 노는 나주의 川(천)은 주변이 깨끗하고 조용해 가끔 수달이 고개를 들고 경쟁자인 낚시꾼의 조황을 감시하곤 한다. 펜데믹 여파로 초래된 세계적 경기침체로 미세먼지도 줄었는지 하늘은 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깨끗하다. 얼마 전에 봤던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국립공원의 하늘과 사뭇 닮았다.

사실 이런 날은 釣果(조과)가 좋지 않다. 파란하늘과 짙은 초록, 데칼코마니로 물위에 비친 풍경은 도무지 낚시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에 찌 올림을 보는 둥 마는 둥이다. 아니 일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이렇게 좋은 풍경을 감상하려면 입질타이밍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낚시한지 50년이 넘었지만 자연지에서 처음으로 越尺(월척)을 잡은 곳이 나주이며 운 좋게도 매년 월척을 만나고 있다. 시간도 많아지고 붕어욕심이 많지 않아, 잡으면 바로 방생하고 잡히지 않아도 내일 잡는다는 생각에 느긋한 낚시를 즐기지만, 월척을 잡고나면 마음이 들뜨고 숨어있던 욕심이 고개를 쳐든다. 集魚(집어)된 붕어들이 흩어질까 봐 부지런한 헛챔질로 밑밥을 주고 눈을 부릅뜨고 찌를 주시하나 월척은 자주 만나지 못한다. 부릅뜬 눈이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에는 여지없이 멋진 찌올림을 보여줘 욕심 많아 슬기를 잃어버린 어부의 허를 찌른다.

인간은 붕어 기억력이 3초에 지나지 않는다고 깔보지만 인간에게 욕심이 많으면 미물인 붕어조차 이기질 못한다. 낚시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욕심이 많아지면 되던 일도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기억력도 붕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사실 중국 철학자인 장자 시점(壯者的인 視點), 즉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붕어나 인간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더위로 인해 釣士(조사)나 붕어 모두 힘들어 낚시가 어려운 7월초, 35Cm짜리 월척을 낚은 후 같은 장소로 연속해서 출조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손바닥만 한 붕어 낱마리에 그쳤고 날이 갈수록 마릿수가 줄어 한 마리밖에 잡지 못한 날도 있었다. 월척도 잡았고 경험상 분명 붕어가 모일 장소이며 시간도 입질이 활발할 05시, 미끼도 같은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같은자리, 수심, 탁도 까지 같고, 미끼와 입질이 활발할 시간대도 같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온이 오르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다. 7월초 수온이 상승하면 붕어들이 깊은 곳으로 이동하는데 월척 낚은 것에 눈이 멀어 수온은 계산에 넣지 못한 변수였다. 월척을 잡지 않았다면 이성적 판단이 가능했을 텐데 욕심이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우연히 잡은 월척을 본인 실력으로 잡은 줄 착각하여 더 맛있게 미끼를 준비한들 더위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붕어들이 입질할리 없었다. 이는 송(宋) 나라의 어리석은 농부가 나무 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쳐 죽는 것을 보고 농사는 집어치우고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렸다는 고사, 守株待兎(수주대토)와 같았기에 혼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수온이 올라 깊은 곳으로 피신해 식욕까지 잃은 붕어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날 것이라 굳게 믿는 내가 어리석어 보인다. 이래서 낚싯대 한쪽에는 벌레가, 다른 한쪽에는 바보가 달려있다고 말했나보다.

제목이 ‘슬기로운 어부생활’이나 쓰고 보니 ‘어리석은 어부생활’이 맞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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