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볶은 경우에는 숙성기간을 늘려라
Roasting 연습을 하고 있다 하니 사부가 Nicaragua san jose pacamara washed를 추천하며 취급하는 회사를 안내해 줬다. san jose는 농장명이고 pacamara는 커피품종이다. 생두 크기도 있고 맛이 상당히 좋은 반면 싼 가격으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회원으로 가입해 거래하는 생두판매회사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품종이다.
커피시장 구조는 모르겠으나 생두를 판매하는 여러 회사가 같은 품종을 취급하지 않는다. 현재 3개 회사에서 구입하고 커피 상식을 배우고 있는데 서로 다른 품종을 판매하니 초심자들은 회사 선택이 쉽지 않다. 케냐 AA를 취급해도 회사마다 명칭과 가격이 다르다. 생두회사와 커피농장과 직계약 형식으로 생두를 도입하고 소분 판매하는 구조 같다.
후배가 원두를 보내줘 맛있게 먹었던 Guatemala El Injerto Nativo를 판매하는 회사는 국내 한 곳밖에 없다. 이 회사는 Cup of Exellence에서 9회 연속 1위를 수상한 최초 농장인 엘인헤르또와 2010년 파트너십을 맺어 산지직거래 방식으로 수입한다고 한다. Injerto가 먹고 싶다면 이 회사를 필히 거쳐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커피 생두시장은 좋은 시장은 아니다. 동일 제품을 여러 곳에서 취급해야 서로 팔기 위해 단가를 낮추거나, AS를 강화한다던지 하는 소비자 친화적 마케팅이 진행될 텐데 판매자가 의도한 대로 소비자가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좋아하는 생두를 여러 곳에서 구입해야 하므로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작게는 택배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적정가격인지 여부를 비교할 수 없으므로 손님이 王(왕)이 아니라 鳳(봉)인 시장이 커피 생두시장이 아닐까?
Nicaragua san jose pacamara washed 커핑노트는 오렌지, 자두, 플로럴, 꿀, 밀크초콜릿이다. 판매사에서 추천한 로스팅포인트는 弱中(약중)焙煎(배전)이라 했으니 yirgacheffe Aricha정도로 볶으면 될듯하나 판매사마다 기준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 생두를 판매하는 회사는 적어도 초보로스터에게는 친절한 편이 아니다. 산미, 바디감, 뒷맛, 맛과 향의 균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pacamara 생두 크기가 압도적이다. 크기만으로 따지면 더욱 비싼 값에 팔려야 할 생두다. 150도로 2분간 예열하고 200g을 투입한 지 6분이 지났으나 볶아지는 기색은 물론 수분도 제대로 건조되지 않는 듯하다. 180도로 온도를 올려 4분 정도 건조시켰다.
생두 크기가 커서 열용량이 크다고 판단되어 다른 생두보다 높은 온도인 230도까지 올려 로스팅하기로 했다. 11분 정도 흐르자 popping이 시작되었다. 12분 30초 만에 로스팅을 끝내고 온도를 160도로 낮췄다. 토털 소요시간은 26분이 소요되었다.
같은 날 볶은 Costa rica tarrazu pastora SHB EP 보다 1.5배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tarrazu도 yirgacheffe에 비해 생두가 큰 편이나 pacamara에 비하면 애들 크기다.
생두판매사에서 추천한 로스팅포인트는 弱中(약중)焙煎(배전)이나 한단계정도 낮춰 로스팅했다. 처음 볶는 생두이기에 커핑노트의 향을 맛보려면 조금 덜 볶는 것이 좋을 듯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아내의 취향은 적당한 바디감에 산미가 높은 것이기에 덜 볶았다. 볶은 후 원두에서 커피 향이 덜 난다. 2일 숙성 후 희미한 커피 향이 올라왔다. 이번에도 실패한 것일까?
숙성기간 3일이 지났다. 핸드 그라인더를 큰 아이 집에 두고 왔기에 전동 밀로 갈았다. 갖고 있는 전동 밀은 Delonghi KG시리즈로 원두 그라인딩이 끝나면 신경질적인 고음을 낸다.
전동 밀은 손발이 편하지만 핸드 그라인더를 돌리면서 맡을 수 있는 커피 향을 느끼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그라인딩 된 원두에서는 커피 향이 조금 올라오지만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커피 내릴 때도 산미 이외 커핑노트의 향은 느끼지 못했다. 맛은 풋내가 따라왔으니 덜 볶은 것은 확실하다. 처음 볶는 품종이라 yirgacheffe Aricha정도로 볶았는데 조금 더 볶아야 제 맛을 낼 수 있을 듯하다.
사부에게 자문을 구했다. ‘덜 볶았을 때 방법은? 볶을 것을 더 볶아야 하는가?’
‘더 볶은 커피와 섞는 것이 낫다.’
일련의 로스팅과정을 Round2에 접어들었는데도 덜 볶고 있다. 특히 원두 크기가 컸기에 외관상으로만 익었던 것 같다. 로스팅 후 생두대비 원두 무게를 측정해 보니 88%로 로스팅이 덜된 것이 확연했다. yirgacheffe Aricha는 덜 볶아도 향이 좋았기에 다른 커피도 오버히트보다는 덜 볶는 것을 답습하고 있다.
과감하게 볶고 오버히트되면 버리는, 실패에서 배우는 성공방정식을 외면하고 안전한 길을 가고 있으니 로스팅 연습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남양주 수종사를 다녀오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과감하게 로스팅하기로 했다. 실패기억이 생생할 때 재도전하려는 것이지 수종사 입구 출입문 현판 명칭이 解脫門(해탈문)이라 갑자기 깨달은 것은 아니다.
이번 로스팅에서 패착은 뜸 들이는 시간을 늘린 것도 원인일 수 있다. 고온으로 로스팅된 후에도 원두의 색상이 균질하지 않아 160도로 4분간 뜸 들였더니 외관상 균질도는 좋아졌지만 내부는 로스팅된 것이 아닌듯하다.
원두에서 올라오는 커피 풍미가 적어 냉동보관 대신 실온 숙성을 계속했다. 1박 2일 낚시를 다녀온 후 확인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풍미가 높아졌다. 커피를 내리니 뛰어난 맛은 아니더라도 산미도 올라가고 향도 깊어졌다. 로스팅에는 실패했지만 상당히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덜 볶은 경우에는 숙성기간을 늘려라.’
주의 및 경고 1: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이므로 따라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주의 및 경고 2: 로스팅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된다. 취미를 붙이지 못할 때는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
주의 및 경고 3: 앞으로 계속되는 커피이야기는 전문적이지 못하므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구입 또는 전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