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下
며칠 후, 김진수는 자료 수정을 위해 휴가를 낸 문정우의 집을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메일 한 통이면 족했겠지만, 요 며칠간 문정우는 파일을 보내는 것조차 늦었고, 회신도 없었다. 김진수는 어쩔 수 없이 서울 외곽, 문정우가 산다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 골목을 찾아갔다.
언덕 끝에 다다른 건물은 붉은 벽돌 외벽에 곰팡이와 물때 자국이 얼룩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우편함에는 지난주의 전단지가 쌓여 있었고, 초인종 버튼은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복도 천장은 낮고 축축한 느낌이었고, 전등은 반쯤 깜빡이는 상태였다. 김진수는 문 앞에서 숨을 고르고, 노크를 했다.
“문 열려 있어요.”
문정우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렸다. 그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말만 했다.
김진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고, 공기는 정체되어 있었다. 커튼은 완전히 닫혀 있었고, 책상 위에는 반쯤 마른 컵라면 용기와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방안에서는 묵은 물 냄새가 퍼져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눅눅한 매트리스가 놓여 있었다.
문정우는 창백한 얼굴로 매트리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불을 반쯤 몸에 두른 채,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앉아요.”
김진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문정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있는 얼룩은, 그가 사무실에서 봤던 것과 완전히 같았다. 중심이 짙고, 그 가장자리는 뒤틀린 타원형을 이루며 무언가의 얼굴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조명이 없는데도 그 음영은 뚜렷했고, 눈과 입처럼 보이는 부분이 은근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어젯밤엔... 그게 내려왔어요.”
문정우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김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 안은 숨이 막힐 듯 조용했고, 바깥에서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 정적 속에서 그는 문정우를 바라봤다.
문정우의 얼굴은 며칠째 잠을 자지 않은 사람처럼 텅 비어 있었다. 눈동자는 깊게 꺼져 있었고, 눈가의 경련이 미세하게 떨렸다. 손가락은 끊임없이 무릎 위를 긁고 있었고, 손톱 아래엔 검은 때가 끼어 있었다.
“계속, 저기서 날 보고 있어요. 사무실도, 여기서도. 어딜 가든... 내 위에 있어요.”
문정우는 잠시 김진수를 쳐다보다,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물이라도.”
김진수는 손을 가볍게 저었다.
“괜찮아요, 문 과장님. 그냥, 잠깐 얼굴이라도 보려고 온 거예요.”
문정우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김진수는 조심스레 수첩과 노트북을 꺼내 들고, 책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문 과장님, 요즘 너무 안 좋아 보여요. 괜찮으신 거죠?”
문정우는 대답 대신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김진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조용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노트북을 열고, 파일을 직접 꺼내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했다.
"여기 있는 파일이죠? 수정한 부분이 이거..."
김진수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문정우는 천장을 향하던 시선을 잠시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예요. 미안해요 번거롭게 여기까지 오게 해서.."
"메일이 다른 첨부 파일이 들어 있거나 첨부 파일이 없는 메일 와 있더라고요. 그냥 USB 메모리에 가져갈게요."
문정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USB 메모리 스틱을 건넸다.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김진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뭐, 중요한 건 아니에요. 사실 과장님 상태가 더 걱정돼서 온 거예요."
문정우는 입꼬리를 아주 약간 올리며 대답했다.
"여기 있으면... 못 자게 되네요. 자면... 꿈에서 계속 그게... 벽을 타고 내려오거든요."
김진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요즘 장마라 습해서 더 그런 걸 거예요. 몸 잘 챙기세요, 문 과장님."
문정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요."
김진수는 USB 메모리 스틱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이거 정리해서 팀장님께 넘길게요. 몸 추스르고 다시 봐요."
문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김진수는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서며 문을 닫을 때, 김진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문정우를 돌아봤다. 문정우는 다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원룸 건물에서 나와 다시 천천히 숨을 내쉬었을 때, 김진수는 자신의 어깨가 무겁게 굳어 있었단 걸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휴가가 끝난 문정우는 평소보다 15분 늦게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는 여느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왔지만, 그 안엔 무언가 허물어진 느낌이 스며 있었다. 휴가를 다녀온 사람이라기보단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셔츠는 다림질되지 않은 채 구겨져 있었고, 바지는 허리에 잘 맞지 않는 듯 삐뚤게 내려앉아 있었다.
손에는 땀에 젖은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손등은 어딘가 긁힌 자국으로 붉게 얼룩져 있었고, 피부는 탈진한 사람처럼 창백했다. 눈 아래는 검푸르게 파였고, 다크서클은 마치 멍든 것처럼 깊었다. 문정우의 시선은 허공을 부유하듯 정착하지 못한 채 떠다녔고, 걸음은 무언가를 피해 걷는 듯 비틀거렸다.
문정우가 자리에 앉는 순간, 사무실 안의 기류가 조금씩 변했다. 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틀었고, 또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으며 볼륨을 높였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의 중심은, 천장이었다.
사무실 천장의 얼룩은 전날보다 더 크게 퍼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내부에서 바깥으로 밀고 나오는 것처럼, 중심은 두툼하게 불거져 있었고, 외곽은 점점 더 복잡한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균열처럼 얽힌 선들은 기존의 곰팡이 자국과는 전혀 다른, 살아 있는 유기체의 모세혈관처럼 얽히고설켜 있었다.
문정우의 자리 위로 집중되어 있던 얼룩은 이제 옆자리 형광등 근처까지 번지고 있었고, 그 경계는 인간의 손으로 그릴 수 없는 곡선으로 뒤틀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타원형이지만, 일정한 비율을 따르지 않고 비대칭적으로 퍼진 그것은 마치 신체 일부, 혹은 인격 그 자체가 확장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김진수는 프린터 근처에서 자료를 정리하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얼룩의 중심 어두운 그림자와 흰 회반죽의 대비가 만들어낸 기묘한 음영 속에서, 그는 어딘가 익숙한 형상을 보았다.
눈.
콧대.
입꼬리.
그리고, 각진 턱.
그건 문정우의 얼굴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정우와 닮은 무언가였다. 형체는 흐릿했지만, 응시하는 듯한 시선의 방향, 표정 없는 입꼬리, 눈두덩의 굴곡까지 그 모든 것이 문정우의 얼굴을 흉내 내고 있었다.
김진수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얼룩은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문정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룩의 형상은 오직 한 사람, 문정우를 향해 있었고, 다른 이들이 아무리 천장을 올려다보아도 그 얼굴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천장의 어딘가에 자리 잡은 관찰자가, 문정우라는 한 인간을 집요하게 기록하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문정우가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천장의 얼룩도 그와 눈을 마주쳤다.
문정우의 눈은 얼룩을 응시했지만, 오래전부터 자신을 쫓아온 불길한 존재와 마주한 사람처럼 기묘한 공포와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두 눈은 서로를 정확히 포착했고, 문정우의 얼굴 근육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입술이 아주 작게, 천천히 움직였다.
“으... 같아졌어.”
그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자랑하듯, 혹은 체념하듯.
문정우의 그 말 이후로, 분위기는 더 삭막해졌다. 직원들 사이에선 조용한 수군거림이 돌기 시작했다.
"야... 너도 봤지? 저거, 점점 얼굴처럼 생기지 않았냐?"
"응. 오늘 보니까 입꼬리 같은 것도 생겼어."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나도 눈 비슷한 거 보였어."
"누구 닮지 않았냐?"
"에이, 누구? 설마...."
그러나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 얼룩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떤 금기를 깨는 일인 양, 그저 눈빛으로만 동의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얼룩의 얼굴은 계속해서 문정우를 응시했다. 실존하는 감정을 흉내 내듯, 문정우의 감정과 표정을 반영하는 듯 움직이지도 않는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미묘하게 찡그리거나 웃는 듯한 잔상을 남겼다.
문정우는 점점 더 조용해졌고, 사무실 사람들도 더 이상 그의 주변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새부터 인지, 모두가 알았다. 얼룩은 얼굴이 되었고, 그 얼굴은 문정우만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문정우는, 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았다.
김진수는 마지막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저건 문정우를 닮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문정우가 저걸 닮아가고 있는 걸까.’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퇴근길에 지하주차장에서 우연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천장 한쪽에 생긴 얼룩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사람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순간의 장면에서 시작됐습니다. 마치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얼룩, 그리고 그것을 계속 바라보다가 오히려 내가 닮아가게 되는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