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上
서울 외곽 김진수가 일하는 사무실의 건물 복도는 아침부터 불쾌한 공기로 가득했다. 전날부터 내린 폭우는 건물 전체를 스펀지처럼 물러지게 만들었다. 복도 벽지에는 누런 물자국이 번져 있었고, 간이 소화전함 틈 사이에선 검은곰팡이 흔적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발밑에서는 눅눅한 고무와 물기가 섞인 미세한 소리가 찰박찰박 울렸다.
이 건물은 곧 철거 예정이었다. 이미 회사의 다른 부서들은 몇 달 전 새 사옥으로 전부 이사를 마쳤고, 몇몇 부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부서 중, 디자인 마케팅 부서만이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서에는 장형식팀장, 문정우 과장, 김진수 과장, 한유리 대리, 그리고 이보람 주임이 일하고 있었다. 각자 맡은 업무에 열중하며, 대부분의 시간은 책상 앞에서 보내는 일상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더 짙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곰팡이 냄새에 먼지, 그리고 오래된 전선에서 피어나는 이상하고 퀴퀴한 냄새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에어컨은 꺼져 있었지만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단순한 온도와는 다른, 사람이 오래 없는 빈 공간 특유의 정지된 냉기.
사무실 내부는 전날 퇴근 무렵과 똑같았다. 창가 쪽 테이블엔 종이컵과 누군가 메모했던 이면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책상 위 정렬되어 있지 않은 마우스와 키보드는 먼지가 앉아 있었다. 형광등은 간헐적으로 깜빡였고, 그 아래 접대 또는 회의용으로 사용되는 낡은 가죽 소파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듯 끈적끈적해 보였다.
출근한 직원들은 한 명씩 무표정한 얼굴로 제자리에 앉았다. 누군가는 습한 책상 위를 휴지로 닦았고, 누군가는 커피포트를 확인하다 미지근한 물에 실망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아니 진짜, 이 사무실 언제까지 써야 되는 거야?"
"다른 부서는 지난달에 다 이사 갔는데. 우린 왜 여기 남겨두는 건데?"
"그러니까. 저번에 관리실에 누수 얘기했더니, 알아본다고만 하고 감감무소식이야."
"김 씨 아저씨, 기억나지? 이 건물 관리하던 분. 요새 통 안 보이던데? 그만두신 거 아냐?"
"그분 그만둔 이후로 진짜 뭔 일 생겨도 말할 데가 없어. 이 건물 지금 누가 관리하긴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만 이 폐건물에 남겨두고, 일부러 여기서 썩으라는 거나 다름없지."
"이참에 진짜 사내 게시판에 정식으로 다시 올리자. 이러다 철거하는 날까지 여기에 있는 거 아냐?."
그때 이보람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장팀장님께 얘기해 봐야죠. 너무 오래됐어요, 이 얘기."
말을 들은 한유리가 장팀장을 향해 말했다.
"팀장님, 우리 부서도 이사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솔직히 여기 곧 무너질 거 같아요."
장팀장은 잠시 뜸을 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알겠어. 부장님께 다시 한번 말씀드려 볼게."
"팀장님, 예전에도 그렇게 말하고 결국 그대로였잖아요. 진짜 뭔가 조치가 있어야죠."
"그러게. 이건 진짜 인권 침해야. 이 건물에서 귀신 나올 거 같아."
장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이따가 전화 넣어볼게..."
작은 웃음과 비아냥 섞인 탄식이 오갔다. 하지만 아무도 진심으로 웃지는 않았다. 단지 더는 익숙해질 수 없는 불쾌한 공기 속에서 버티는 법을 익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게 보이기 시작했다.
형광등 아래, 문정우의 자리 위쪽 천장에서 누런 얼룩이 번져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누수 자국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것은 단순한 물자국과는 달랐다.
형태가 이상했다. 타원형이었지만, 완벽한 타원은 아니었다. 중심은 진하게 눌린 점처럼 어두웠고, 테두리는 번지듯 옅어졌다. 그 경계는 살아 있는 세포처럼 들쭉날쭉 불규칙했고,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선들은 무언가가 천장 안쪽에서 바깥을 뚫고 나오려는 모양새였다.
“문 과장님 자리 위... 저거, 누수예요?”
한유리가 커피를 홀짝이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약간의 경계가 섞여 있었다.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아주 살짝 까딱일 뿐이었다. 그의 눈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고, 손은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눈 밑은 퀭했고,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다.
진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얼룩은 분열하며 확장 중인 유기체처럼 느껴졌다. 조명 아래, 얼룩의 윤곽은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주변의 습기와 형광등의 잔상이 얼룩에 걸쳐지면서 이상한 깊이감을 만들었다.
사무실 사람들 중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는 자리를 옮기며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정우는 여전히 그 아래 앉아 있었다. 그는 그 얼룩을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았다.
아직 물방울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떨어져야 할 것이, 왜 떨어지지 않는가?
무언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사무실은 불쾌한 긴장감을 머금은 채, 하루의 시작을 맞고 있었다.
그날 퇴근길.
문정우는 서울 외곽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 골목 안,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언덕 끝에 있는 원룸에 살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의 외벽은 얼룩과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고, 우편함에는 광고지를 토해 내듯 꽂혀 있었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은 드물었고, 가로등은 황색으로 깜빡이며 새벽까지도 꺼지지 않았다.
비에 젖은 신발로 계단을 내려간 문정우는, 습기에 절은 철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와 함께 좁은 원룸의 내부가 드러났다. 낮은 천장, 노란 형광등, 낡은 고무장판에서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 싱크대 근처에는 설거지하지 않은 컵이 쌓여 있었고, 옷걸이에 매달린 셔츠들은 눅눅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문정우는 가방을 벗고,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몸이 눌리는 소리에 맞춰 삐걱거리는 철제 프레임이 울렸다. 그는 한쪽 손으로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다. 지상파 재방송 채널에서 예능이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어딘가 지친 얼굴로 억지웃음을 띠고 있었다.
TV 속에서는 출연자들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야야야, 형이 이걸 못 맞혀? 이건 진짜 방송 접어야지!]
[형! 바보야? 힌트 다 나왔잖아. 아 진짜 답답해.]
[잠깐만요, 잠깐만요. 저 이거 진짜 자신 있어요. 정답은...!!]
[에이~ 틀렸어요!! 정답은 고구 마였습니~다!]
[으아아악! 고구마라고? 와 나 진짜 이 형 때문에 미치겠네!]
스튜디오 안의 출연자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과장된 리액션을 쏟아냈고, 배경 음악은 어수선한 효과음과 박장대소로 채워졌다.
정우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실소를 흘렸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TV의 빛이 어두운 방 안에 희미하게 번졌다.
정우는 화면을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TV의 빛이 어두운 방 안에 희미하게 번졌다. 그러나 그 희미한 불빛보다 더 그를 끌어당긴 건, 바로 위였다.
천장이, 시야 한가운데 있었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얼룩이었다. 누수로 생긴 어두운 그림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얼룩은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무늬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듯 윤곽을 가졌다. 정우는 미동도 없이 그 얼룩을 응시했다.
눈, 코, 입, 턱. 분명히 얼굴이었다. 그것은 단지 우연히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의 머리맡 천장에 얼굴을 그려 넣은 것처럼 정교한 비율과 배치를 갖추고 있었다.
‘사무실 천장이랑 똑같은 모양이야...’
입술이 말랐다. 그는 삼키지 못한 침을 혀끝에 머금은 채, 숨을 쉬는 것도 잊은 듯 그대로 누워 있었다. 천장의 얼룩은 무표정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인상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보이는 형태는 멈춰 있었지만, 그 기척만은 움직이고 있었다.
천장 너머에서 무언가 살아 있는 기운이 꿈틀대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느다란 곤충이 벽 속을 기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정우는 눈을 감지 못했다. 감으려 할수록 그 형상이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눈꺼풀 안쪽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감아도 보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었지만, 그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얼어붙은 듯 무거웠고, 눈은 얼룩에 고정되어 이탈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났다. 벽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다. TV는 꺼져 있었고, 실내엔 형광등만이 남아 번들거리는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빛조차 얼룩의 테두리를 따라 움직이는 듯한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문정우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손을 모은 자세로, 천장을 바라보며 밤을 새웠다.
그날 이후, 그는 매일 같은 자세로 잠을 ‘버텼다’. 잠든 것이 아니었다. 단지 깨어 있었고, 견뎠다. 눈앞의 얼룩을, 얼굴을,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어떤 존재의 ‘시선’을.
사무실 천장의 얼룩은 눈에 띄게 확장되어 있었다. 하루 이틀 사이 그 무늬는 중심에서 뻗어 나와 사방으로 꿈틀거리는 듯한 경계를 만들었다. 얼룩은 단순히 넓어지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무언가가 서서히 영역을 넓히는 것처럼 보였다. 색도 짙어지고 있었고, 가장자리는 갈색에서 검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야, 저거... 점점 심해지는 거 아니야? 아까 보니까 경계 더 번졌던데."
"그러니까. 물 떨어지는 거 아니야? 저 정도면 곧 한 방울 뚝하고 떨어질 것 같은데."
"문 과장님, 혹시 책상 위에 물방울 떨어진 거 없었어요?"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지만, 정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 듣고 계세요?"
또 다른 누군가가 말을 덧붙였지만 문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손은 멈춘 듯 마우스 위에 얹혀 있었다. 주변 직원들은 서서히 그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다시 키보드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형광등의 빛이 얼룩에 반사되며 내부의 질감을 강조했다. 천장 석고보드 아래로 뭔가 살아 있는 게 숨겨져 있는 듯한 기분.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키보드에만 집중했다. 천장을 보는 것은 일종의 금기처럼 되었다.
하지만 문정우만은 달랐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치고 있었지만, 몸의 각도는 예전보다 더 일그러져 있었다. 어깨는 축 처졌고, 등을 곧게 펴지 못한 채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은 사무실 가구의 일부처럼 정지되어 있었다.
그가 얼룩에서 더러운 물이라도 떨어질까 책상을 약간 옮겼던 날, 얼룩도 미묘하게 이동해 있었다. 천장의 중심은 다시 정우의 정수리 위쪽으로 맞춰져 있었고, 얼룩의 선명도는 의도적으로 중심을 잡은 듯 더 또렷했다. 형광등 아래에서 얼룩은 기묘한 깊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가끔 진수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그날 저녁, 진수는 퇴근하며 무심코 천장을 바라보다 얼룩의 한가운데에서 사람의 눈동자 모양을 보았다. 둥글고 진한 동공, 흐릿하지만 확실한 형태. 그는 몸이 굳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살짝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본 것이 환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엔, 그것이 단순한 얼룩 이상이라는 의심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자리 잡았다.
다음 날 아침, 정우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출근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더 망가져 있었다.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셔츠는 다림질하지 않은 주름으로 가득했다. 얼굴은 야위었고, 눈 밑은 붓고 꺼져 있었다. 눈빛은 불안정했고, 잦은 깜빡임이 동공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었다.
“나를... 계속... 보고 있어... 나를... 맞지?”
문정우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누군가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독백처럼 들렸다.
김진수는 그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정우의 손등에는 긁힌 자국이 몇 개 있었다. 자다가 긁은 것처럼, 일정한 방향과 깊이를 가진 자상. 그의 손톱 아래에는 검은 찌꺼기 같은 것이 끼어 있었고, 손가락 끝은 붉게 부어 있었다.
문정우는 오후 내내 말이 없었다. 그가 앉아 있는 자리 근처엔 다른 직원들이 접근하지 않았고, 커피를 따르러 오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다른 경로를 이용했다. 사무실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고, 키보드 소리조차 메마르게 울렸다.
그 조용함 속에서도 사람들의 입은 쉬지 않았다. 다만 그 목소리는 최대한 낮게, 눈치를 보며 흘러나왔다.
"요즘 문 과장님... 좀 이상하지 않아?"
"응, 말도 거의 안 하고, 표정도... 뭐랄까. 텅 비어 보여."
"어제 회의 때도 말 한마디 안 했잖아. 팀장님이 물어봐도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밤새 잠도 못 자는 것 같던데. 얼굴이 점점.. 맛이 가고 있잖아."
"누가 봐도 뭔가 이상하지?. 근데 아무도 그 얘기 안 꺼내."
"응. 괜히 괜한 소리 했다가 더 이상해질까 봐 그러는 거지."
"아까 보람 씨가 살짝 걱정돼서 말 걸었는데... 그냥 모니터만 계속 보고 있더래."
“진짜 저러다가 내가 먼저 정신 나갈까 모르겠네. ”
그리고 그날, 문정우는 처음으로 화면을 보지 않은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단 몇 초였지만, 그의 시선은 얼룩의 중심에 꽂혀 있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얼룩도 그에 응답하듯, 그 중심이 더 짙어졌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