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上
장마로 공기는 축축하게 눅눅했고, 끈적한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열흘 넘게 이어진 장마로 모기떼가 급증했다. 구청에서는 모기 개체 수가 예년의 두 배를 넘는다는 발표를 하며, 방역 계획을 재조정 중이었다.
경기도 외곽 작은 사무실 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가 저물 무렵, 퇴근 준비를 하던 민영은 손목을 긁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진짜 모기 왜 이렇게 많아요? 어젯밤에 모기 때문에 다섯 번은 깼어요."
민영이 팔목을 긁으며 짜증을 섞어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김대리는 기다렸다는 듯 팔을 내밀었다.
"민영 씨, 이거 좀 봐요. 어제 물린 건데, 아직도 이렇게 부어 있어요. 점점 커지는 것 같지 않아요?"
"헉, 진짜 멍처럼 됐네요. 어떤 사람은 알레르기처럼 심하게 부어서 병원 간대요."
그때, 민영의 맞은편 책상에 앉은 최수정이 노트북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모기가 요즘은 너무 똑똑해서, 잡으려고 다가가면 알아서 도망가더라니까요. 나 요즘은 눈 마주친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맞아요, "
김대리가 웃으며 맞장구쳤다.
"어제는 전기 모기향 바로 옆인데도 윙윙거리면서 유유히 날아다니더라고요. 내 피가 그 정도 맛이 좋나?."
모두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거나 한숨을 쉬었다. 끈적한 날씨, 짜증 나는 몸 상태, 날아다니는 모기떼. 그런 웃음 뒤로 민영은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릿한 빗줄기 너머, 어두워지는 골목 어귀가 스며들듯 보였다. 그곳에서 며칠 전 다시 마주쳤던 여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째 되던 날, 민영은 퇴근길에 동네 슈퍼 앞에서 그 여자를 다시 보았다.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늘어진 회색 티셔츠를 입은, 창백하다 못해 반투명해 보이는 얼굴. 마치 혈관 속 피가 전부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녀는 언제나 조용했다. 말도 없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슈퍼에서 생수를 들고 카드를 꺼내다가 결제가 되지 않자 곤란한 표정을 지었을 때, 민영이 무심코 대신 계산해 준 적이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더운 날이니까 물이라도 마시세요."
그녀는 순간 멈칫하더니 작게 입을 열었다.
"... 고맙습니다."
민영은 그 짧은 대답이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인상 깊게 느껴졌다. 말투는 또렷했지만,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어렵게 나온 듯한 말.
며칠 후, 공원 벤치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민영은 아이스 음료 두 잔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티셔츠를 입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거 드셔보실래요? 얼음 많이 넣었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잠시 망설이다 컵을 받았다.
"여기 자주 나오시네요."
민영이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린 것 같았다. 감정이 비치는 것 같기도,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
"근처에 사세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입을 열었다.
"네. 바로 저쪽 골목 끝에 살아요."
민영은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다. 나지막하고 숨죽인 듯한 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마치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천천히 내뱉는 사람처럼.
"혹시... 이름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민영이에요."
그녀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입술을 떼었다.
"... 하연. 윤하연이요."
민영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 씨, 반가워요. 저도 이동네로 온 지 얼마 안돼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고, 다시 말없이 음료를 들이켰다. 그날 이후에도 몇 번인가 공원에서 마주쳤고, 짧은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하연은 여전히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민영이 작은 간식이나 음료를 건네면 그녀는 조용히 받고, 짧게 고개를 숙이는 걸로 응답을 대신했다.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 이상하게 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그러다 며칠 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늦은 밤. 골목 어귀 가로등 아래서 마주친 그녀는 전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피부에 붉은 기운이 돌고, 걸음걸이에도 힘이 느껴졌다. 마치 긴 병을 앓다 갑자기 회복된 사람처럼.
민영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
"어?.. 하연 씨?"
하지만 그녀는 민영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혹은 애써 못 본 척하듯 시선을 돌린 채 걸음을 재촉했다. 어깨너머로 힐끗 돌아본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그저 밤공기를 헤치며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민영은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 몇 초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시당했다는 기분보다는, 마치 방금 본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였던 것 같은 이질감이 더 강했다.
그날 밤, 민영은 자꾸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생기 있는 혈색이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고,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습한 공기에 눅눅해진 이불, 피부에 들러붙는 잠옷, 끈적한 땀방울. 이 모든 게 그녀의 모습과 겹쳐졌다.
다음 날 아침, 민영은 팔뚝에 붉은 모기 자국을 발견했다. 붓고, 따갑고, 간지러운 자국이었다. 그녀는 잠결에 긁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날 이후 매일 아침 하나씩 늘어가는 붉은 자국에 점점 불쾌감이 쌓여갔다.
그 와중에도 그 여자는 계속 나타났다. 어떤 날은 멀리서 마주쳤고, 또 어떤 날은 불쑥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고, 얼굴에 감정도 없었다. 이상한 건—어느 날은 다시 창백했고, 또 어느 날은 혈색이 돌았다.
민영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동네의, 그 조용한 여자. 그녀의 혈색은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는 걸까? 그리고 왜, 그녀가 혈색이 좋을 때면 항상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걸까?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하늘은 늘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민영의 머릿속도 점점 흐릿해졌다. 그녀는 몰랐다. 이 작은 불쾌감이 곧 더 깊고 끈적한 공포의 시작이 될 거라는 것을.
퇴근 후 슈퍼에 들른 어느 날, 그녀는 다시 하연을 마주쳤다. 슈퍼 입구 옆 냉장고 앞에 선 하연은 전과 달리 얼굴에 혈색이 돌아 있었고, 눈빛도 또렷했다. 이전의 그 퀭하고 흐릿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었다.
민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요즘 좀 괜찮아 보이시네요."
하연은 이번엔 민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빛은 흐리지 않았고, 목소리는 또렷했다.
"요즘은 꽤 괜찮아요. 오랜만에 상쾌한 느낌이에요"
그녀는 말을 멈추고 음료수 병뚜껑을 조심스럽게 돌렸다. 그 동작조차 힘 있고 느긋했다. 민영은 순간 멈칫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투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요즘 이상하게 기분 좋고 힘이 넘쳐요 이 동네 좋은 기운이 다 저한테 오나 봐요."
말만 보면 활기찬 일상 대화였지만, 민영은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꼈다. 하연은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민영에게 짧게 웃어 보였다.
그 미소는 더 이상 무표정한 감정 결핍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감정이 ‘너무 많아서’ 누르고 있는 듯한 이상한 생기였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 어깨는 펴져 있었으며, 뒷모습엔 더는 무기력함이 없었다. 민영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던가? 불과 이틀 전만 해도 거의 쓰러질 듯 보였는데.
그날 밤, 민영은 다시 잠에서 깼다. 이번에는 왼쪽 발등이 간지러워 긁다가 깨버린 것이다. 불을 켜고 확인해 보니, 발등엔 또다시 크게 부풀어 오른 자국이 있었다. 근처엔 모기 한 마리가 벽에 붙어 있었다. 민영은 바닥에 놓인 잡지를 말아 손에 쥐고, 그대로 '퍽' 하고 내리쳤다. 벽에서 떨어진 모기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흰 벽엔 진한 피방울이 튀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지만, 그 자국을 한참 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작디작은 몸에서 쏟아진 피는 너무 진했고, 너무 선명했다. 죽이고 나서도 찜찜한 기분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민영은 하연을 또 마주쳤다. 이번엔 공원 벤치였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은 저녁, 잔잔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연은 조용히 비를 피할 수 있는 벤치 끝자락의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작은 나무 하나가 그 위를 덮고 있었지만, 그래도 빗방울은 간헐적으로 그녀의 어깨와 무릎 위에 맺혔다. 그녀는 우산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고개는 여느 때처럼 숙여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더욱 무겁고 느릿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몸 전체가 땅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정적이었다.
“하연 씨?”
민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한참을 민영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마치 멀리서 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민영 씨... 요즘 잠 잘 와요?”
뜻밖의 질문에 민영은 멈칫했다.
“저는 요즘 이상하게 자꾸 깨요.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이 안 와요. 어두운데, 밝은 것 같고... 몸이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이상하죠?”
하연의 말투는 부드럽고 차분했지만, 말의 내용은 어딘가 불안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손등 위에 앉은 작은 파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끔은 내가 내 몸 안에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누가 나를 밀고 다니는 것처럼요. 가만히 있는데도 계속 움직이는 느낌.”
민영은 서서히 굳어가는 얼굴로 말했다.
“... 혹시, 병원이라도 가보셨어요?”
“병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내가 문제인 게 아니라, 이 동네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죠. 아니면, 그냥 내가 받아들이는 거일지도.”
하연은 파리를 손가락으로 툭 쳐냈다. 파리는 짧게 날갯짓을 하다 벤치 옆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나도 민영 씨도 그냥...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염려 섞인 충고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이상한 무게감을 담고 있었다. 민영은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한동안 둘 사이엔 말이 없었고, 오직 바람과 잔잔한 빗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