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 上
올해 여름은 달랐다. 에어컨 바람조차 눅눅하게 느껴질 만큼, 뭔가 도시 전체가 숨을 참는 듯한 무게로 내려앉아 있었다.
이재훈은 언제나처럼 출근길에 올랐다.
체형이 제법 통통한 편이라 여름이면 더욱 불편했다. 몸집이 큰 사람 특유의 묵직한 열기가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그것은 옷과 살 사이를 눅진하게 점령했다. 지하철역 입구부터 뺨을 타고 땀이 줄줄 흘렀고, 셔츠는 이미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팔을 조금 벌리고 걸었지만, 무게감 있는 팔뚝과 겨드랑이 사이에서 찰싹거리는 살과 천의 접촉음이 한 걸음마다 따라붙었다.
지하철 안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모두가 각자의 음악이나 화면에 몰두해 있었지만, 이재훈이 들어선 순간 어딘가 공기가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기둥 옆으로 다가서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미세하게 반응했다.
검은색 반팔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은 코끝을 움찔이며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곧 눈썹을 찌푸리고는 슬쩍 팔을 들어 자신의 냄새를 확인하는 듯했다.
형광색 등산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중년 여성은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에 더욱 가까이 당기며 불평했다.
“아유, 찜질방이 따로 없네? 에어컨 좀 세게 틀지 아휴 더워라”
그 옆에 동료 내지 친구인듯한 다른 중년 여성은 눈을 찡그리며 이재훈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누가 걸레 빤 물에 빠졌다가 나왔나. 무슨 냄새람.”
이재훈은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곁눈질로 스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애써 무시하려 애썼다.
이재훈은 그 말들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정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몇 정거장을 지나며, 이재훈은 등 뒤에서 작은 말다툼이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싸움으로 번지는 걸 목격했다.
“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니, 아까부터 계속 밀리는 건 당신이잖아! 똑바로 좀 서요, 제발.”
“아줌마, 누가 아줌마 뒤에 가만히 있겠다고 했어요? 냄새나 죽겠는데!”
“뭐요?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형광색 등산복을 입은 여성이 목소리를 높이자, 옆에서 지켜보던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한마디를 거든다.
“아, 그냥 조용히 좀 갑시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예민해요?”
“예민? 당신은 냄새 안나? 혹시 이거 당신 냄새야?”
말들이 오가는 사이, 주변 승객들도 하나둘씩 눈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열차 안의 공기는 점점 날카롭게 갈라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무표정하게 선 이재훈이 있었다. 등 뒤로 누군가의 손등이 닿고, 이재훈의 셔츠에서 축축한 감촉이 번졌을 때, 말다툼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지하철에서 내린 후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탈 때, 사무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했다. 불쾌감을 억지로 삼키는 얼굴들, 눈을 찡그린 채 외면하는 시선.
엘리베이터 안, 이재훈과 함께 탄 남자 직원은 단 한 층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와... 여기 에어컨 고장인가? 숨이 안 쉬어지네..."
그는 셔츠 목깃을 잡아당기며 연신 부채질을 하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허겁지겁 뛰어나가듯 빠져나갔다. 이재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등 뒤, 엘리베이터 벽에는 희미하게 젖은 사람 모양의 얼룩이 남아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이재훈의 책상 위엔 누군가 두고 간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
[의자에서 냄새나요.]
이재훈은 그것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의 주변에서만, 공기가 물처럼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는 요즘 들어 물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는 항상 2리터짜리 생수통이 놓여 있었고, 점심시간에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몇 병씩 사 마셨다. 누가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목이 자꾸 마르네요."
사무실 안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지만, 이재훈의 자리 근처만은 늘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그저 그의 체질이라 여겼다. 워낙 땀도 많고, 셔츠도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경우가 잦았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 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웠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끈적했고, 코끝에는 땀 냄새와는 다른, 어딘가 곰팡이나 젖은 천의 기운 같은 것이 감돌았다. 에어컨 바람이 직접 닿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따뜻한 증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후끈한 열기가 이재훈의 몸을 중심으로 맴돌았다.
“이상하게 이재훈 씨 주변만 공기가 다르지 않아요?”
이재훈과 같은 팀에서 일하는, 말이 많은 오하나가 회의실에서 나와 물을 마시며 툭 내뱉었다. 이재훈은 자리에 없었다. 잠시 인쇄물을 찾으러 간 사이였다.
팀 내에서 입이 험하기로 유명한 장태수가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고개를 들어 비웃듯 말했다.
“진짜. 아까 지나가는데, 수증기가 와~ 나 그런 거 처음 봤다. 무슨 가습기냐고.”
오하나이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겨드랑이에 셔츠 젖은 거 봤어요? 이재훈 씨가 지나가면 옷이 눅눅해져.”
복사기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거들었다.
“에어컨도 이재훈 과장을 못 이기나 봐요.”
잠시 웃음이 돌았지만, 곧 노골적인 말들이 이어졌다.
“옮는 병 아니에요? 진짜 병 있는 거 같은데.”
“진짜, 이재훈 씨랑 같이 엘리베이터 타기 싫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습식사우나예요.”
모두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엔 묘한 꺼림칙함이 남았다.
그 웃음은 곧 애매한 침묵으로 이어졌다. 사실, 모두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때, 아무 말 없이 이재훈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키보드 소리도 멎고, 대화는 끊겼다. 갑작스레 눅진해진 공기와 함께, 자리에 앉는 이재훈을 향해 누구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서만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지나치며 어깨를 스친 장태수는
“으, 축축해...”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이재훈의 책상 위 서류를 가져가던 오하나는 헛기침을 연달아 터뜨렸다.
"흠.. 흠!.."
이재훈은 그런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랬듯이 모니터를 응시한 채, 땀이 밴 손으로 꾹 눌러가며 자판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의 자리 바닥은 희미하게 젖어 있었고, 의자 등받이에도 축축한 흔적이 번져 있었다. 마치 그가 머무는 공간 자체가 서서히 물에 잠기고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배려 깊은 성격의 서은영은 복사물을 들고 이재훈 근처를 지나가다 조심스럽게 그의 책상에 손수건과 손선풍기를 놓고 갔다.
“이거... 혹시 몰라서요.”
짧은 말에 이재훈은 고개를 들었지만, 그녀는 이미 돌아서 있었다.
늘 조용히 말이 없는 유민석은 프린터 쪽으로 가다 이재훈 자리 옆을 지나쳤다. 그 순간, 피부에 느껴지는 미묘한 압박감과 불쾌한 습기, 그리고 어딘가 알 수 없는 ‘기운’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그 느낌은 순간적이었지만, 마치 다른 공간을 통과한 듯한 위화감을 남겼다.
그날 오후, 팀 회의가 끝난 후 회의실을 나서는 동료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회의실 에어컨 고장 났나 봐요. 이상하게 숨이 막히던데.”
하지만 에어컨은 정상 작동 중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 중 몇몇은 은근히 이재훈을 바라보았고, 장태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아 저 인간만 있으면 회의실이 사우나가 되네.”
이재훈은 시선을 피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분위기는 점점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재훈은 퇴근 전, 셔츠를 갈아입기 위해 사무실 뒤편의 탈의실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언제 사용됐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샤워실이 구석에 있었고, 그 앞에는 오래된 철제 캐비닛들이 비좁게 줄지어 서 있었다. 탈의실 문을 열자 안에서 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벽에는 그의 등이 닿았던 자리에 미세한 습기가 번져 있었고, 손잡이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가 사라진 후, 장태수가 탈의실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밖으로 나와 입을 가리며 말했다.
“아 XX!, 이 냄새 뭐야.. 숨이 턱턱 막히네..”
유민석은 그의 말을 듣고 조용히 이재훈의 자리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그의 등 뒤로, 형광등 불빛이 미묘하게 떨리는 듯했다. 한여름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공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무언가가 이재훈의 몸에서 시작되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무실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회의실의 의자에 앉으려던 서은영은 손끝으로 의자 등을 쓸었다. 축축한 감촉이 손에 남았다. 자세히 보니, 이재훈이 이전에 앉았던 자리에만 희미한 물기가 번져 있었다.
“으, 이게 뭐야... 젖어 있잖아.”
서은영은 조심스럽게 물티슈로 닦아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말을 삼키고 조용히 닦아낼 뿐이었다. 하지만 곧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장태수가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보고 코를 찡그렸다.
“또 이재훈이었지? 와... 이 정도면 진짜 인간 사우나 같은 거야 뭐야.”
오하나가 뒤따라 들어오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도 회의실이 아니라 찜질방 같았어요. 어제도 셔츠 다 젖은 거 입고 있었잖아요. 이재훈 씨 요즘 너무 상태 안 좋아 보이지 않아요?”
장태수가 과장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 나 아까 화장실 갔는데 바닥이 축축하길래 청소했나 싶었거든? 근데 아니야. 이재훈가 들어갔다 나왔더라니까. 사람 지나간 자리에 물웅덩이 생기는 거 처음 봤다.”
오하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거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땀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냄새도 좀... 묘하잖아요. 뭐랄까, 땀이라기보단... 생선 비린내랑 곰팡이 낀 이불 섞은 냄새?”
장태수는 표정을 찌푸리며 웃었다.
“하아... 이재훈.., 사람 착한 건 알겠는데, 요즘은 진짜 좀... 좀비처럼 보여. 땀에 절고 눈도 풀려 있고.”
그 사이 조용히 앉아 있던 서은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긴 했어요. 진짜 많이 아파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장태수가 멋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아프면 병원을 가던가. 아니면 좀 사람이 씻고 다녀야지. 이건 진짜 비위 상한다니까.”
오하나가 다시 말했다.
“프린터 버튼까지 젖어 있었어요 이재훈 씨가 쓰고 가거나 지나가면 근처가 끈적해지거나 눅눅해진다니까.”
그 말에 분위기는 순간 가라앉았다. 모두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유민석은 말없이 벽에 기대어 그들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에 책상 밑으로 볼펜 하나가 떨어져서 몸을 숙였는데, 그 밑면이 전부 곰팡이더라고요. 그냥 습기가 찬 게 아니라, 진짜 검은곰팡이가 퍼져 있었어요. 책상다리까지... 시커멓게 곰팡이가 있었어요.”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유민석은 이재훈이 퇴근하며 남긴 책상 위의 컵받침을 내려다보았다. 종이 위엔 어딘가 점액질 같은 윤기가 도는 얼룩이 퍼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땀이 아니라, 더 깊고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그냥 땀이 아니다... 이건, 뭔가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