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

습도 下

by 바삭새우칩


다음날 아침.

이재훈은 수시로 입술을 핥았다. 입 안은 끊임없이 마르고, 혀끝은 종이에 베인듯 아팠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병을 비우고, 다시 정수기로 향했다. 물을 마시면 잠시 숨이 트이는 듯했지만, 곧 또다시 목이 타들어갔다.

업무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손끝의 미끌거림, 흐릿한 시야, 가라앉는 집중력. 동료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사무실에 불이 꺼질 무렵까지도 이재훈은 끝내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마감 시간은 이미 지났다. 오하나가 가방을 들고 나서며 말했다.


"이재훈 씨, 야근이에요?"


이재훈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 먼저 가요. 내일 봐요.”


서은영도 일어나며 가방을 챙겼다.


"이 과장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요즘 좀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이재훈은 아무 말 없이 화면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곧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만 키보드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렇게 모두 퇴근하고 텅 빈 사무실엔 형광등 불빛만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이재훈은 억지로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에어컨은 켜져 있었지만, 공간은 정적과 함께 점점 더 눅눅해졌다. 그의 몸에서는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열은 곧바로 사무실 공기 속으로 퍼져나갔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 이재훈은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셔츠는 축축하게 달라붙어 있었고, 오하나 너머의 형체는 자신이면서도 자신 같지 않았다. 피부가, 살이, 온몸이, 공기 중으로 증발되어 흩어지는 듯한 느낌.

수건으로 땀을 닦아도 닦이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더 이상 땀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액체였다. 투명하면서 점성이 있고, 단백질과 기름 냄새가 났다. 셔츠를 벗으려다 그는 멈칫했다. 천이 피부에 감겨 붙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왜 이래…”


그는 억지로 셔츠를 잡아당겼다. 그 순간, 날것의 고기가 찢기는 듯한 감각과 함께 살갗이 따라 뜯겨나갔다.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 비명이 목구멍을 치솟았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피부가 벗겨진 부위는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곳에서 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미세하게 맺혔다. 하지만 곧 증발되듯 공기중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부위가 욱신거리고, 아픔은 징징거리는 소음처럼 뇌에 맴돌았다.


비명을 삼킨 이재훈은 탈의실로 비틀거리듯 몸을 옮겼다.


“이게 뭐지.. 내 몸이 왜 이러지?”


너무 더웠다. 온몸의 수분이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이재훈은 숨이 턱턱 막히는 그 열기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풀기 시작했다.


첫 단추를 푸는 순간, 천 아래 눌려 있던 피부 일부가 점액처럼 녹아 나와 셔츠 안감에 들러붙었다. 옷을 벗는 동안, 셔츠의 섬유 사이로 살점들이 떼어져 나와 끈적한 점액질 덩어리로 바닥에 떨어졌다. 껍질처럼 벗겨지는 셔츠는 이미 완전히 젖어 있었고, 축축하게 늘어진 채 팔을 타고 질질 미끄러졌다.

그는 마치 옷이 몸에 걸리적거리는 이물질처럼 느껴져 그대로 바지를 걷어차듯 벗어던졌다. 천과 살이 떼어지는 곳마다 습기 어린 고통이 따라붙었고, 바닥엔 벗겨진 피부와 액체가 뒤섞인 끈적한 흔적이 남았다.

곧 알몸이 되었다.


손끝이 희미하게 투명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증기도 땀도 아닌, 무언가 더 근원적인 변질. 그의 살은 마치 고열 속 젤라틴처럼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고, 그의 존재 전체가 공기 속에 분해되어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탈의실 거울 앞에 선 그는 낯선 형체와 눈을 마주쳤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젖은 살덩이의 집합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 점액질의 잔흔이 남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지막 남은 습관처럼.


비틀비틀 책상 앞까지 걸어간 그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실었다. 등받이와 엉덩이 밑에서 물이 밀려나듯 찰박, 끈적한 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철퍽.


그 액체는 둔탁하고 축축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몸이 의자에 완전히 밀착될 때, '철퍽'하고 육중한 울림이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 바닥에서부터 자욱하게 김이 피어올랐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카톡도, 메신저도, 전화도 닿지 않았다. 팀장은 단체 메일로 ‘이재훈 씨가 갑작스러운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쓴다’고 알렸지만, 팀원들 중 누구도 그 소식을 먼저 듣지 못했다. 장태수는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땀 뻘뻘 흘리더니, 결국 병났나 보네.”


그가 앉지 않은 이재훈의 자리에는 여전히 어딘가 눅진한 기운이 맴돌았다. 의자 등받이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마지막으로 앉았던 의자에는 희끄무레한 액체 자국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요 며칠 동안 불쾌 했던 코를 찌르는 듯한 그의 냄새가 사무실 안에 가득했다.


“이거… 아직 안 마른 거야?”


장태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에어컨도 틀어놨는데… 왜 이 자리는 계속 눅눅할까? 냄새도 그대 로고."


“어제도 이랬잖아.”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때도 이재훈 씨 주위만 이상했잖아.”


서은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이재훈 과장님 사무실에 아직 있는 건 아닐까요?”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누구도 웃지 않았다.


“탈의실은 누가 가봤어요?”


오하나가 물었다.


장태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탈의실 하고 샤워실에는 없고 근데 캐비닛 옆에 젖은 옷가지 몇 벌 놓여 있었던 건 봤어. 검은 셔츠 하나, 바지도 있었고.”


“그 옷… 어제 이 과장님이 입고 있었잖아요.”


서은영이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이재훈의 물건이라면, 지금도 탈의실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장태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재훈 그 자식, 땀이 너무 많아서 여벌 옷을 항상 더 들고 다녀. 어제도 셔츠 다 젖어가지고 갈아입더니 그거 그냥 깜빡하고 두고 간 거 같은데…"


유민석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가방이랑 폰… 사물함에 있었어요. 그대로. 충전도 안 돼 있고, 가방 안은 손도 안 댄 것처럼 정돈돼 있었어요.”


그 말에 장태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진짜… 폰이랑 가방을 두고 어디 간 거야. 잠깐 나갔으면 가져가야 되는 거 아니야?”


오하나도 고개를 갸웃했다.


“지갑도 없고… 폰까지 놓고 갔다면 진짜 이상하긴 하네요. 뭐 급하게 병원이라도 간 건가?”


“그럴 리가 없죠. 지갑이랑 폰 몽땅 놔두고 병원을 갔을 리가 없잖아요.”


서은영이 조용히 말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확신을 갖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의자 근처의 공기는 여전히 습기 어린 막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그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았고, 다들 조용히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흔적은 말없이 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타오르지도, 흔적을 남기지도 않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점심시간이 되어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며 사무실은 조용해졌다. 불이 꺼진 회의실과 텅 빈 책상들 사이, 유민석은 혼자 그의 자리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는 조용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아주 깊게. 불 꺼진 사무실, 정적이 내려앉은 책상들 사이로 묵직한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공기엔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배어 있었다.


유민석은 숨을 가만히 참았다가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이재훈의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혼잣말처럼 나직이 말했다.


“습기, 땀, 단백질, 지방, 수분… 이재훈의 냄새.”


그리고 한 박자 뒤, 거의 속삭이듯 덧붙였다.


“이재훈, 아직 여기에 있어.”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지하철을 놓칠까 봐 서둘러 뛰던 더운 여름 아침이었습니다.
숨이 차오르고,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흘렀으며, 제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가 주변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문득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혹시 나는 지금 이 공간에 불쾌함을 퍼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불쾌한 무언가를.
[습도]는 바로 그 느낌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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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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