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上
장마가 시작된 뒤, 도시는 하루도 마른 적이 없었다.
지하철역 계단엔 물기가 찼고, 인도엔 우산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유리창엔 김이 서렸고, 배수구에선 어김없이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회색 구름은 낮게 깔렸고, 하늘은 더는 파랗지 않았다.
이재우는 늘 그렇듯 그가 다니는 공장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출근 중이었다.
머리 위에 쓴 우산은 낡을 때로 낡아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고, 발목까지 오는 바지는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날도 비는 예외 없이 내렸다.
공장 정문에서 가까운 교차로를 지나려던 참이었다. 그가 보았다. 신호등 앞 인도 가장자리, 편의점과 가로등 사이 좁은 공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 가방도 없고, 우산도 없었다. 비에 젖은 셔츠가 살갗에 들러붙어 있었고, 넥타이는 축 처진 채였다.
그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고개를 완전히 젖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재우는 무심코 걸음을 늦췄다. 저 자세, 저 시선... 평범한 아침 출근길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작게 내뱉은 혼잣말이 우산 안에서 맴돌았다.
남자의 표정은 무감했다. 놀라움도, 감탄도, 두려움도 없이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재우도 고개를 들어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올려다봤다. 구름. 낮고 무거운 회색의 덩어리. 그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바라볼 대상이 없었다.
“혹시 드론 같은 거 라도 날고 있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내 스스로도 그 말에 낯을 붉혔다.
신호등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우산을 흔들며 길을 건넜다. 이재우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시선은 종일 이재우의 뒷머리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비는 어제보다 더 거세게 쏟아졌다. 바람이 섞인 장대비가 우산을 밀어내고, 신발 안엔 물이 들어찼다.
이재우는 늦지 않으려 서둘렀고, 어제의 장소에 이르렀을 때 그 남자를 다시 보았다.
“또 저 사람이야.”
똑같은 자리, 똑같은 옷차림, 똑같은 자세.
그는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빗물은 그의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고, 어깨는 물에 젖어 짓무른 듯 보였다. 눈동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딘가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단순한 하늘 보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뭐야 어제부터 저기 있었던 건 아니겠지.”
이재우는 무의식 중에 뒷걸음질을 쳤다. 어딘가 이상했다. 이틀 연속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행동. 비정상적인 규칙성이었다.
그는 남자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걸 보았다. 중얼거리는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건 확실히 어떤 말을 하고 있는 입술의 움직임이었다.
이재우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구름이 아주 미세하게,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 깊숙한 곳에서 무겁고 길게 울려 퍼지는, 쿠르르릉 하고 구름을 갈라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천둥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았고, 번쩍거리는 번개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거대한 심장이 구름 속에서 한 번 세게 고동친 듯한 소리였다.
이재우는 얼어붙었다.
“무슨 소리야...”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을 만큼, 그 소리는 멀고 깊었다.
그리고, 다시 남자 쪽을 바라봤을 때 남자가 사라졌다.
너무 조용하게, 너무 갑작스럽게.
그 자리에 있던 존재가, 한 순간에 없던 것이 되었다.
이재우는 그대로 그 자리를 응시했다. 그가 몇 초, 몇 분을 그렇게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 어디로 갔지?”
빗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도로 위 물줄기도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발자국도 없었다. 비에 젖은 인도는 말끔했다. 그 자리는, 처음부터 비어 있었던 것처럼 깨끗했다.
이재우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출근길 사람들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고, 누구도 그의 사라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뭐지?”
바람이 불자 우산 안쪽이 들썩였고,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희미하게 퍼져 있는 ‘움직임의 흔적’이 구름처럼, 비처럼, 혹은 살아 있는 뭔가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이재우는 입을 다물었다. 더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뒤.
그날 아침도 비가 내렸다.
장마는 예고 없이 길어졌고, 하루에 한 번씩은 도로가 물에 잠겼다.
전날 사라진 남자의 기억은 이재우의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계속해서 같은 장소를 바라보았다.
출근길이면 무조건 확인했다.
남자가 서 있었던 그 좁은 인도 한복판을.
매일 지나쳐야 하는 그 몇 평 남짓한 공간을.
그러나 그 자리는, 그 후 며칠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산을 쓴 채 걸었고,
오토바이는 빗길을 가르며 지나갔고,
도로의 매연은 여전히 습기 속에 퍼져 있었다.
그 일이 꿈이었을까.
이재우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며 그는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드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정말 그가 사라졌던 게 사실이라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다시 그 자리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비가 오던 어느 아침,
우산 너머로 흐릿하게 보인 실루엣.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 얇은 방수 바람막이, 크지 않은 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자세.
이재우는 그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몇 번인가 출근길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방향, 버스 정류장 근처 편의점 앞에서 본 적도 있었고,
같은 버스에서 교통카드를 찍던 모습도 기억났다.
이름도, 일하는 곳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도시의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얼굴과 실루엣만은 자연스레 익숙해진, 그런 사람이었다.
“왜... 또 하늘을...”
이재우는 중얼였다.
그녀 역시, 고개를 완전히 젖힌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그대로 얼굴을 때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우산도 쓰지 않았고, 어깨 위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얼굴은 반쯤 그림자에 가려졌고,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정확히 남자와 똑같았다.
이재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냥… 우연이겠지…”
그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직선거리로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를 걷는 데 그날만큼 오래 걸린 날도 없었다.
발밑의 물웅덩이는 유난히 깊었고,
우산은 바람에 휘청였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