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上
형광등은 낮은 소리로 윙윙거렸고, 회의실 안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면 속 숫자들은 제멋대로 흔들리는 것처럼 일렁였고, 팀장의 목소리는 멀리서 울려오는 잡음 같았다.
정나리는 요즘 자신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걸 느꼈다. 출근길은 유난히 버거웠고, 회의 중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화면 속 숫자들이 자꾸만 어지럽게 튀어나오는 듯했고, 팀장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퇴근 후 소파에 앉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TV도, 휴대폰도, 친구의 톡도 모두 무채색으로 흐릿해 보였다. 그냥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하루가 끝나 있었다.
무기력은 점점 더 짙어졌고, 정나리는 점점 자신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팀장 눈치를 보며 야근을 끝내고 나왔을 때, 밤공기는 눅눅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의 땀 냄새, 바닥에 밟힌 근처 식당 전단지, 이어폰 너머로 새어 나오는 누군가의 볼륨 높은 음악까지 모든 것이 피로감을 더했다.
지하철 안에서도 정나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었고, 뺨에는 마스크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손에 들린 건 에어팟 한 짝과 노트북. 에어팟은 한쪽은 배터리가 나갔고, 다른 한쪽에선 통화 잔여음인지 음악 조각인지 모를 지직거림이 계속 들려왔다. 노트북 가방 끈은 정나리의 어깨를 짓누르며, 하루 종일 이어진 회의와 팀장의 말꼬리 잡기를 상기시켰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골목은 어둡고 습했다. 보도블록 구석 진 틈에서 피어난 이름 모를 잡초는 이미 눕듯이 쓰러져 있었고, 벽돌 틈에선 검무튀튀한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축축한 냄새를 뿜어냈다. 쓰레기봉투는 얼마나 눌러 담았는지 불어 터져 있었고, 거기서 흐른 국물은 배수구까지 길게 얼룩을 남기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누군가 내다 놓은 곤죽 같은 우산은 오래된 시체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었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툭툭 떨어지는 빗물이 정나리의 어깨를 때렸다. 도시의 지친 표정들이 그녀의 감각을 짓눌렀다. 아니, 도시 전체가 무언의 고통을 호흡처럼 내뿜으며 그녀의 지친 몸에 엉겨 붙는 듯했다.
도어록 소리를 지나자마자 자동으로 켜지는 작은 전등 불빛 아래서 정나리는 현관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가방을 내려놓았고,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그 한숨에 하루의 모든 피로가 실려 나가는 듯했다.
"아 진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요즘엔 숨만 쉬어도 피곤해."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고, 팔을 들 힘조차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은 채, 그냥 조금만 더 일어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기력했다. 오늘 점심 식사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아 허기가 들었지만, 뭘 먹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녀는 현관에 앉아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 배고파.. 뭐 맛있는 거 없을까."
그녀는 천천히 휴대폰을 들어 배달앱을 열었다. 하지만 스크롤을 내릴수록 결정은 더 어려워졌다. 치킨, 피자, 분식, 일식.... 전부 다 질린 것 같았다. 클릭했다가 취소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지우고, 추천 메뉴를 눌러봤다가 다시 뒤로 가기를 반복했다.
“아 몰라, 뭐가 당기는지도 모르겠고... 하아.... 뭐 괜찮은 거 없나.”
결정장애와 짜증이 뒤섞인 상태로 한참을 흘리던 그때, 그녀의 시선에 이상한 가게 하나가 걸렸다. 화려하지 않은 사진, 정보도 거의 없는 가게. 하지만 별점은 4.9. 리뷰 수도 엄청났다. 익숙한 검붉은 닭발 사진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당신을 위한 추천 맛집! 지금 이 순간, 혀끝이 얼얼해질 준비되셨나요?"
라는 문구와 함께, 검붉은 소스가 짙게 발린 닭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매운 거, 오랜만이네.’
클릭. 이상하게 메뉴판은 단 한 가지, 불닭발 정식뿐이었다. 사이드도, 음료도 없었다. 그런데도 주문 수는 수천 건을 넘겼고, 평점은 대부분 5.0을 유지하고 있었다. 리뷰들은 놀랄 만큼 극찬 일색이었다.
[이건 진짜 인간이 만든 맛이 아님.]
[너무 맛있어서 눈물샘 터졌어요.]
[입안이 아니라 영혼이 타는 맛.]
[리뷰 없이는 재주문이 안 되는 맛집.]
마지막 리뷰가 이해가 안 됐지만, 정나리는 잠시 고민후 결국 주문 버튼을 눌렀다. 이름도 처음 보는 가게였다. ‘화심닭발(花心)’이라는 식당. 주소지는 서울 강진구 무명로.
배달은 이상하리만치 빨랐다. 20분도 안 되어 벨이 울렸고, 정나리는 인터폰도 확인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배달원은 말이 없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봉투를 건넸고, 정나리는 인사 한마디도 없이 그것을 받았다.
검은색 봉투. 손에 들자마자 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단내가 섞인 매운 향, 어딘가 쿰쿰한 고기 냄새. 식탁 위에 올려놓고 봉투를 열었을 때, 정나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닭발은 살아 있는 것처럼 증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모양이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잔뜩 오그라든 닭발과는 달랐다. 살이 탱탱하게 붙어 있었고, 발가락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굵고 길었다. 뼈마디도 굵직했다.
정나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브라질산인가?'
소스는 붉은 광택을 띠며 유혹하듯 빛났고, 깨가루가 살짝 뿌려져 있었다. 젓가락을 들 필요도 없었다. 손으로 조심스레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매콤한 기름이 손끝에 묻었고, 정나리는 조심스럽게 입술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첫 입은 천천히, 혀끝에 닿은 매운 기운을 탐색하듯 입 안에서 굴렸다. 불이 확 붙는 듯한 매움이 치고 올라왔다. 눈이 살짝 감기고, 뒷목이 서늘해졌지만, 그 고통이 곧 묘한 쾌감으로 변했다.
두 번째 조각부터는 속도가 빨라졌다. 손이 자연스럽게 닭발로 향했고, 이내 손가락마다 소스가 묻었다. 입가에 매운 기름이 번졌지만 닦지 않았다. 혀로 한 번 훑고는, 다시 다음 조각을 집어 들었다. 어느새 젓가락 대신 손으로 집어 먹고 있었고, 입에서 소리가 났다. 쩝쩝, 후루룩, 뜨겁고 매운 것을 식히기 위해 입김을 뱉는 소리,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는 손.
그녀의 눈빛은 점점 초점이 흐려졌고, 호흡은 가빠졌다. 닭발은 그녀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밥 없이, 음료 없이, 입 안은 불 타올랐지만, 그녀는 소스 한 방울까지 손가락을 빨아가며 먹고 또 먹었다.
결국 정나리는 닭발 한 팩을 혼자서 비워냈다. 그제야 입 안이 가라앉았다. 손끝은 얼얼했고, 혀는 마비된 듯 감각이 사라졌지만, 놀랍게도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뇌를 짓누르던 잡념이 모두 매운맛에 타버린 것 같았다. 뭔가 해낸 것도 아닌데,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나지막이 웃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명확한 감각, 그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느낌 같았다.
잠이 쏟아졌다. 설거지도 하지 않은 채 불도 끄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온몸에 남아 있던 긴장과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매운맛이 남긴 얼얼함이 아직 입 안에 맴돌았고, 그것이 나른한 자장가처럼 그녀를 감쌌다.
창밖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정나리는 깊고 조용한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정나리는 오랜만에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꿀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순간부터 이상했다. 물을 마셔도, 토스트를 씹어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점심에 사무실 근처 유명 파스타 맛집에서 파스타를 먹었지만, 플라스틱을 씹는 것 같았다. 유일하게 떠오르는 맛은 그 닭발뿐이었다.
‘그 맛만은 확실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살아 있는 느낌이었어.’
입 안이 허전했다. 목구멍이 그 매운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밤, 정나리는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검색어 ‘화심닭발’. 결과 없음. 최근 주문내역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황한 정나리는 배달앱 화면을 이리저리 뒤지다 결국 앱 메인 하단에 작게 떠 있는 배너 하나를 눌렀다. 처음 보는 상호명이었지만, 사진은 이상할 정도로 낯익었다. 분명 어제 봤던 그 닭발이었다. 뼈 마디가 또렷하고, 붉은 소스에 젖은 고기살이 두툼하게 붙어 있었다. 사진은 일반적인 음식 사진과는 달리, 묘하게 구도도 정제되지 않은 채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끌었다.
'입안을 뒤집는 마성의 맛, 리뷰 전용 재주문 가능'이라는 문구가 그 아래에 떠 있었고, 별점은 4.9로 어제와 같았다. 정나리는 의아했다. 분명 이름이 달랐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집이다.'
주문 버튼을 누르려 하자 화면이 멈췄고, 붉은 배경 위에 짧은 문장이 떴다.
[리뷰를 남기지 않으면, 재주문이 불가능합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막힌 기분, 통제된 기분, 모든 선택지가 제한된 듯한 답답함. 정나리는 주저하며 리뷰창을 눌렀다. 어떤 말이라도 적어야 했다. 생각나는 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매웠지만 맛있었어요. 다시 생각나네요.”
확인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부드럽게 전환되었다. '주문 가능'이라는 녹색 아이콘이 켜지고, 다시 메뉴가 나타났다. 익숙한 붉은 닭발. 정나리는 재빨리 주문 버튼을 눌렀다.
리뷰를 쓰고 난 뒤에도 정나리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손끝엔 아직도 닭발 소스의 끈적한 감각이 남아 있는 것 같았고, 목 안쪽엔 무언가 미끌거리는 게 걸려 있는 듯했다. 시원한 물을 들이켜도 그 잔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자꾸만 생각나는 맛.
불을 켜지 않은 방 안, 화면만이 유일한 빛이었고, 그것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생각이 밀려들 여유가 없었다. 정나리는 재주문한 닭발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식탁으로 향했다.
배달원은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똑같이 숙인 고개, 똑같은 검은 비닐봉지, 심지어 그녀가 기억하는 손의 각도까지도 같았다.
비닐을 열자 닭발 특유의 매운 향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주저함 없이 손으로 집었다. 첫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혀끝이 싸늘하게 저렸다.
어제보다 더 맵고, 더 깊은 단맛이 섞여 있었다.
먹는 속도는 전보다 더 빨라졌다.
이번에는 무언가가 입 안에서만 퍼지는 게 아니라, 목뒤까지 스미는 듯한 감각이 있었다.
숨이 가빠졌고, 손끝이 떨렸다.
먹방 BJ처럼, 푸드파이터처럼, 일회용 포장 용기에 있는 닭발을 전부 먹고, 입가에 검붉은 소스를 잔뜩 묻힌 채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식탁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던 정나리는, 다시 리뷰를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엔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구체적으로.
리뷰창을 열자 전보다 더 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이건... 이 세상의 맛이 아니에요. 아니, 이 세계를 벗어난 맛. 혀가 기억하기 싫어하는 맛이에요.]
[처음에는 혀가, 그다음엔 이가, 그다음엔 손이...]
[후기를 쓴 기억이 없는데 계속 뜨네요. 손가락이 쓴 건가요?]
[매운 게 아니었어요. 그건... 내 안의 무언가를 불태우고, 남은 껍데기를 조용히 핥아갔어요.]
스크롤할수록 문장들은 점점 무의식의 언어처럼 뒤틀렸다. 글자가 엉키거나, 말의 순서가 뒤바뀌거나, 일부는 사람의 문장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다시 오라고 했어요. 불타는 곳으로]
[뼈를 씹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누구의 뼈인지도 모르고.]
[다들 조용히 드세요. 목소리를 들키면, 입이 아니게 되니까요.]
정나리는 어느 순간 손가락을 멈췄다. 무언가에 끌려가는 감각과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한 한기가 퍼져 나왔다. 리뷰창에 떠오른 문장들이 갑자기 낯설고 기분 나쁘게 뒤틀려 보였다. 그녀는 불쾌한 전율을 느끼며 리뷰를 쓰려다 멈췄다..
정나리는 급히 배달앱을 끄고 휴대폰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꺼졌던 화면이 번쩍이며 배달앱이 알림을 띄웠다.
[당신의 리뷰가 등록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다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누르지도 않은 배달 추적 화면이 자동으로 떴다. 배달원 위치 아이콘이 맥동하듯 깜빡이고 있었고, ‘20분 뒤 도착 예정’이라는 문구가 붉은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그 순간 정나리는 다시금 목을 넘겼다. 이번에는 닭발이 아니라, 말 못 한 말이, 아니 입으로 담지 못한 공포가 목구멍에 걸린 뼛조각처럼 밀려 올라왔다.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 화옥닭발 – 주문번호 #000]
누군가가 아니, 무언가가 그녀의 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다음 포식을..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