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 上
박승철은 인터넷 방송을 거의 매일 시청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TV보다도 휴대폰 화면 속의 생방송이 그의 시간을 채워줬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건 흔히 말하는 인기 BJ들이 아니었다. 그는 주로 시청자 수 10명도 채 안 되는, 말 그대로 '하꼬 비제이'들의 방송을 찾아다녔다. 그들이 보여주는 어설픈 춤, 일그러진 화질, 반응 없는 후원창. 승철은 그런 어설픔과 저급함을 조롱하며, 자신만의 위안과 우월감을 느꼈다.
그는 가끔 후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응원이 아니라 조롱의 연장이었다.
1000원, 2000원, 많아야 5000원.
[1000원 후원. 저앞 편의점 가서 알바한테 '저랑 사귀실래요?' 해봐.]
[1000원 후원. 저기 밥먹는 사람한테 한입만 하고와 한입 얻어먹으면 5000원 쏜다.]
채팅창에 쏟아내는 말들은 그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다.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세상 위에 서 있다고 느꼈다.
그날도 평소처럼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그가 사는 역 근처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향하고 있었다. 날은 저물었고, 도로는 축축한 습기와 초여름의 더위가 뒤엉켜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지하철역의 넓은 역광장을 지나 골목길 구석으로 접어들자, 형광빛 조명이 이상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형광 핑크색 링라이트가 인도를 밝히고 있었고, 그 안에는 어떤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길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소리는 노래라고 하기엔 너무 기괴했고, 고함이라고 하기엔 너무 구슬펐다. 음정은 무너져 있었고, 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하거나 고개를 저으며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지나쳤다.
박승철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는 이상게도 어색함과 익숙함 동시에 느꼈다. 그녀는 링라이트 안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었고,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엔 생기가 없었다. 뭔가를 억지로 따라 하는 인형 같았다.
그녀의 외형은 더 기이했다. 머리는 부분적으로 밀려 있었고, 남은 머리는 땋아 내린 변발 같았다. 눈은 크지만 텅 비어 있었고, 치아는 몇 개 빠져 있었다. 입술은 짙은 립스틱이 번져 있었고, 목덜미와 손등엔 핏자국인지 멍인지 모를 얼룩이 있었다. 몸은 마르고 축 늘어져 있었지만, 배만 볼록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녀 뒤에는 두 명의 BJ가 있었다. 고도비만 남성은 짧은 바지를 입고 맨살의 뱃살을 흔들며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말라붙은 체형의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수 없는 인물은 길거리 소품처럼 만든 부적과 인형을 들고 화면 밖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축제라도 열린 듯 정신없이 떠들고 웃으며, 서로의 카메라를 교차 촬영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받을수록 더 과격하고, 자극적인 행동을 선보였다. 여자 BJ는 갑자기 근처 벤치 위에 올라가 배를 드러낸 채 웨이브를 췄고, 고도비만 크루는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떨며 웃었다.
“조명 좀 더 올려. 눈동자 비쳐야 해. 구도 지려야 시청자들 들어온다고.”
그때였다. 갑작스레 익숙한 후원 알림이 울렸다.
[죽도록쇼킹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여자는 즉각 반응했다.
“죽도록쇼킹님~ 사랑해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입가에 손을 댔다가, 곧 뺨을 딱 소리 나게 때렸다. 마치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리액션은 빠르고 정확했다.
카메라 앵글은 끊임없이 움직였고, 고도비만 BJ는 숨을 몰아쉬며 셀카봉을 돌렸다. 중성적인 인물은 정체불명의 인형을 화면 앞으로 휙 던지며 음침한 웃음을 터뜨렸다.
"리액션 다음 거 뭐야? 빨리 정리해. 죽도록쇼킹님 또 쐈다."
[죽도록쇼킹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여BJ는 눈이 번쩍 뜨였다.
“헐 대박~ 진짜 감사해요! 이번엔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그녀는 눈동자를 위로 뒤집어 흰자만을 드러낸 채, 음악에 맞춰 몸을 꺾고 흔들기 시작했다. 관절이 꺾인 듯한 동작과, 끊어진 듯 이어지는 웨이브는 춤이라기보다 경련에 가까웠고, 그녀의 입꼬리는 비정상적으로 벌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람 흉내를 내는 무언가 같았다.
이들의 방송은 광기어린 퍼포먼스로 번지고 있었다.
박승철은 찜찜한 기분을 안고 돌아섰다. ‘또라이들...’ 작게 욕을 내뱉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그녀의 얼굴은 계속 그의 뇌리에 남았다. 그녀의 웃음 없는 웃음, 공허한 눈동자. 그날 이후로 그는 인터넷 방송을 켜면 은근슬쩍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닉네임을 몰랐지만, 어딘가 다시 나타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사무실 안은 나른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누군가는 자리에 고개를 기댄 채 짧은 낮잠을 자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쇼핑몰 앱에서 운동화를 고르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습관처럼 넘기고 있었다. 몇몇은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세워놓고 유튜브 쇼츠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 틈바구니 속, 누군가가 무심코 건넨 화면에 박승철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화면 속에서는 익숙한 조명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녀였다.
화면 속의 그녀는 어딘가 건물의 모퉁이 골목 같은 곳에서 핑크빛 조명 아래, 맨발로 벽을 두드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전날 방송에서 그녀는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눈을 뒤집고 흰자만 드러낸 상태로 관절을 꺾듯이 몸을 휘며 춤을 췄다. 음악이라기엔 괴상한 전자음에 맞춰, 바닥을 발로 차고 벽에 등을 비비는 동작을 반복했고, 혀를 길게 내밀며 웃었다.
“와 이게 뭐냐... 미친 사람 아냐? 눈 뒤집고 이상한 소리 내면서 바닥에 기어다니고, 머리는 반쯤 밀려 있고…”
“어. 아침에 쇼츠로 떴어. 지하철역 근처에서 민폐 방송하던 여자. 고함 지르고 벤치에 기어오르고… 사람들이 피하더라.”
“진짜 이상한 애더라. 경찰 신고 들어간다는 댓글도 있던데. 누가 그걸 찍어서 쇼츠에 올렸나봐.”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던 중, 그중 누군가가 말했다.
“어?!, 저 뒤에 사람 누구냐? 어깨 너머에 서 있는 저 사람.”
박승철은 숨을 멈췄다. 화면의 오른쪽 모서리, 구석. 흐릿하게 잡힌 실루엣. 수트 차림의 남자. 자세히 보면, 그의 손에 들린 텀블러와 안경 프레임. 바로 어제 그가 들고 있던 그것들이었다.
“이거... 박승철씨 닮지 않았어요?”
한 동료가 농담처럼 말했다.
박승철은 잽싸게 화면을 닫았다.
"야. 저시간에 저런 옷차림이 한둘이냐?!"
그러나 목덜미에는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그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유 없이 손이 근질거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방송을 다시 검색하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마치 머릿속 어딘가에 그것이 각인된 듯, 그는 자꾸만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날 밤, 집에 도착한 박승철은 다시 그녀의 방송을 검색했다. 낮에 무심코 본 유튜브 쇼츠 속 기괴한 춤과 리액션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BJ조화]라는 닉네임은 그 영상 아래에 떠 있었고, 그 이름은 박승철의 기억 깊숙이 박혀 있었다. 여전히 시청자 수는 0. 제목은 ‘나는 여기 있어요’였다.
화면을 터치하자 익숙한 조명이 켜졌고,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화면 한가운데로 다가왔다. 이번엔 골목이나 길거리가 아닌, 좁은 방 안이었다. 벽지에는 빛바랜 캐릭터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고, 뿌연 천 조각이 창문을 덮고 있었다. 그녀는 방 안에서 혼자 방송을 하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이전보다 훨씬 건조했고, 입가만 움직일 뿐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반응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sc9765님, 입장]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오셨네요~ 오늘은 어떤 거 보고 싶으세요?”
박승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손으로 뺨을 살짝 쳤다.
“요런 거... 괜찮으세요?”
뺨을 한 번 더, 이번엔 약간 더 세게. 그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녀는 바닥에 앉아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엎드리기 시작했다. 배경에서 전자음이 흘렀고, 그녀는 천천히 손끝으로 바닥을 긁었다.
화면 속 그녀는 눈을 천천히 치켜뜨며, 입꼬리를 이상하게 올렸다. 짧은 웃음과 함께 혀를 내밀며 말했다.
“sc9765님, 계속 보고 계시죠?”
[sc9765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박승철은 더는 단순한 시청자가 아니었다. 그는 매일 밤 그녀의 방송을 기다렸다. 익숙해진 입장음, 무표정한 얼굴로 시작되는 방송 화면, 형광 핑크빛 조명. 그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은 점점 자극적으로 변했다. 박승철은 처음엔 몇 천원의 후원을 통해 그녀에게 리액션을 요구했다. 손등을 때려라, 혀를 내밀어라, 머리를 벽에 박아라. 그녀는 모두 수행했다. 망설임도, 거부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보내는 명령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그녀는 스스로를 더 모욕적인 방식으로 연출해냈다.
[sc9765: 머리 박고 엎드려 뻗쳐 5분 미션 성공시 2,000원.]
[sc9765: 코로 콜라먹기 미션 성공시 3,000원.]
처음엔 그녀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는 매일같이 더 가혹하고, 더 수치스러운 명령을 고민했다. 그건 일종의 창작이었다. 그는 자신이 디렉터이자 프로듀서라고 생각했다.
[sc9765: 편의점에서 계산하지말고 페트 콜라 원샷. 성공시 5,000원 중간에 멈추면 실패.]
[sc9765: 길거리에서 3회 구걸 성공시 5,000원]
[sc9765: 먹다 버린 컵라면 국물 찾아서 마시기 3,000원.]
그녀는 해냈다. 점점 더 이상한 방식으로. 그가 상상한 것보다 더 능숙하게, 더 천천히, 더 '보여주듯이'. 그녀는 그가 쏘는 후원에 맞춰 하나하나 착실히 반응했고, 박승철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처음엔 단순한 우월감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에 반응하고, 수치심을 버리고 움직이는 모습에서 그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감정은 곧 흥분으로, 집착으로 바뀌었다. 그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채팅창을 켜두었고, 어떤 명령을 내릴지 미리 적어두며 손가락을 풀었다.
그녀가 박승철의 닉네임을 부르며 리액션을 시작할 때, 그는 몰입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원하는 장면이 화면에 펼쳐지는 순간, 그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후원을 보낼수록 그녀는 더 격렬하게, 더 천천히, 더 이상하게 움직였다.
그는 점점 현실보다 그 방송 속에서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명령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는 그 과정을 전능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점점 그는 자신이 그녀를 '만들어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의 방송에 다른 시청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 명이었다. 박승철은 무시했다. 그러나 그 수는 곧 열 명, 스무 명으로 불어났다. 채팅창은 점점 빨라졌고, 후원도 빗발쳤다.
[괴식러: 계란 씹지말고 삼키기!]
[햇빛트라우마: 창문 열고 노래 부르기!]
[하꼬불쌍: 간장 한컵 먹기!]
그녀는 모두 받아들였다. 때론 고통에 찬 얼굴을 하며, 때론 미소를 머금고. 그녀는 명령에 순응했고, 그에 비례해 방송은 더욱 흥분되고 파괴적으로 변해갔다. 카메라 앵글은 점점 낮아졌고, 조명은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어 더욱 기괴한 인상을 주었다.
박승철은 분노했다. 이건 그의 무대였다. 그가 만들어낸 괴물이었고, 그만의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이제 아무나 들어와 그녀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는 질투심과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더 센 명령을 내렸다.
더 큰 돈을 후원했다.
5000원,
1만 원,
2만 원.
[sc9765: 미친듯이 춤춰봐.]
[sc9765: 콧구멍으로 소주 한병 원샷 하기!.]
[sc9765: 똥개처럼 기며, 바닥에 떨어진거 핧아 먹어.]
그녀는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시선은 더 이상 박승철 하나를 향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채팅에 반응했고, 모든 명령에 순종했다. 자신을 찢어 분열시키는 듯, 여러 개의 지시를 동시에 처리했다.
그녀는 일일이 반응했다. 누군가의 채팅에 따라 몸을 틀며 춤을 췄고, 음악도 없는 방송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콜라 캔을 따서 원샷했고, 입에 들어간 탄산이 목을 타고 올라오자 숨을 참으며 억지로 삼켰다. 이어서 컵라면을 허겁지겁 밀어넣었고, 그걸 삼킨 직후 다시 토해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라고 했고,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박자도, 가사도 틀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 울고 있었다. 온몸은 땀과 음식물 찌꺼기로 번들거렸고, 화면 속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눈에는 고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송은 극한에 달했다. 그녀는 벽을 긁었고, 바닥에 침을 흘리며 기어 다녔다. 조명이 꺼질 듯 깜빡였고, 그녀는 몇 번이나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 모습은 더 이상 리액션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같았다. 그녀는 눈을 뒤집은 채 선 상태로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근육이 비틀리고 목이 꺾인 듯한 자세로 굳은 채, 이상하게도 웃고 있었다. 끔찍하고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그 순간, 박승철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연출이 아니다. 진짜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몸을 웅크린 채, 미동도 없이.
채팅창은 조용해졌다. 모두가 정지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쓰러진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박승철은 채팅을 남겼다.
[sc9765: 야. 뭐하는 거야. 일어나.]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하꼬불쌍: 자작극이네.]
[괴식러: 진짜 죽은 거 아냐?]
[햇빛트라우마: 오... 레전드...]
[관리자: 인터넷 방송 정책 위반으로 방송이 정지되었습니다. 해당 방송은 시청자의 신고로 인해 긴급 차단 조치되었습니다.]
화면은 자동으로 꺼졌다. 그녀의 방송은 강제 종료되었다.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