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탈

강탈 上

by 바삭새우칩

이진석은 피트니스 센터의 거울을 사랑했다. 조명, 땀, 펌핑된 근육이 각도를 탈 때마다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의 몸은 시간과 돈이 만든 예술품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믿었고, 다른 이들도 그것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단백질 보충제는 종류별로 구비돼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그에겐 그것이 투자였고, 자기 관리였다.

brett-jordan-U2q73PfHFpM-unsplash.jpg Unsplash의Brett Jordan

거울 앞에서는 언제나 광배를 넓게 펴고, 이두를 단단히 조이고, 팔꿈치를 살짝 구부려 각도를 잡았다. 얼굴은 정면을 보되 턱은 약간 숙이고, 쇄골과 승모근의 경계를 드러내는 자세.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세밀하게 분해하고 조립하며, 최고의 구도를 찾아낸다.


그날도 그랬다. 평소처럼 PT 수업을 마친 그는 헬스장 가장 큰 거울 앞을 차지하고 스트레칭 중이었다. 땀이 흥건히 젖은 탱크톱은 그의 삼각근과 광배근을 강조했고, 그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조명 각도에 맞춰 움직였다.


그의 시야 한편, 오른쪽 구석에서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랙 근처에서 프리웨이트를 드는 남자. 첫인상은 빈약함 그 자체였다. 어깨는 좁고, 팔뚝은 가늘고, 다리는 길쭉하되 힘이 없었다. 자세도 삐뚤었고, 표정도 어설펐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밟힌 건, 그 남자의 시선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이진석을 훔쳐보고 있었다.

이진석은 그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비교’라기엔 너무 큰 차이. ‘동경’이라기엔 어딘가 불쾌한 시선이었다.


‘저런 자세로는 아무리 해도 안 늘지...’


이진석은 허리를 펴고 일부러 더 부풀려진 가슴을 자랑하듯 스트레칭했다. 마치 본능처럼, 그 남자를 향해 등을 돌리고 데드리프트를 시작했다. 땅에서 일어날 때, 허벅지 안쪽에 힘이 들어가도록 폼을 잡고 거울을 노려보며 반복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는 박자에 맞춰, 일부러 내는 짧은 신음. ‘지나가던 누구든’ 그 소리에 주목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마지막 세트를 마치고, 물을 마시러 가던 순간,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멈칫했다. 왼쪽 광배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좌우 밸런스가 깨져 있는 느낌. 그는 자세를 고치려 했지만, 미세하게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가슴 근육의 볼륨도 덜했고, 팔 안쪽 핏줄이 흐릿했다.


“이진석 회원님, 오늘은 좀 근량이 빠지셨어요?”


평소 친분이 있는 트레이너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은 이진석의 자존심을 긁었다.


“탈수돼서 그래요. 물 좀 마시고 다시 펌핑하면 돌아옵니다.”


“혹시 식단 조절 중이세요? 요즘 얼굴이 좀 날카로워지신 것 같아서요.”


“저녁 탄수화물 줄였어요. 단백질은 유지하고, 보충제도 바꿨어요. 요즘엔 닭가슴살 질려서 흰살생선으로 가고 있어요.”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꼈다.


“운동 루틴은 그대로 가세요?”


“상체 이틀, 하체 하루, 코어 하루. 일요일은 휴식. 근데 요즘 펌핑감이 예전 같지 않네요.”


“그럼 오늘은 상체 하는 날이네요? 랫풀다운 말고 체중 풀업부터 넣고 시작해 보죠. 어깨 안정화에도 좋아요.”


이진석은 거울을 슬쩍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틴에 간섭받는 걸 싫어했지만, 요즘은 뭔가 어긋났다는 느낌이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다음날 그 남자는 그 자리에 있었다. 벽면 거울 끝자락, 그 구석 자리에. 어제보다 더 선명한 자세로, 이진석을 보고 있었다.


웃으며 넘겼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거울 속 어깨선을 계속 훑고 있었다. 그는 샤워실로 향하는 길에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복근을 확인했다. 윤곽이 흐려졌다. 물기 때문일까? 조명 때문일까? 아니, 그냥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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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후, 수건으로 몸을 닦던 그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맞은편 거울에서 그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그 구석에서, 이진석을 보고 있었다. 이번엔 여전히 빈약했고, 자세도 여전히 어설펐다. 하지만 눈빛이 조금 더 뚜렷해진 듯 보였다. 정확히는, 이진석을 뚫어지게 복제하는 시선이었다.


‘뭘 봐, 진짜.’


이진석은 턱을 괴고 씩 웃었다. 하지만 속은 불편했다. 괜히 신경이 쓰였다. 자신을 따라 하는 초보자가 있다는 건 자존심을 세워줄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자신만을 관찰하는 시선은 기분이 나쁜 법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평소처럼 윗옷을 벗고 라인을 확인했다. 그의 아름다운 근육은 여전했다. 빛을 머금은 듯 솟은 가슴근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새기는 듯했고, 어깨는 세상의 무게쯤은 가뿐히 견딜 수 있다는 듯 당당하게 솟아 있었다. 핏줄이 선명하게 뻗은 팔은 살아 있는 지도 같았고, 복부는 조각가의 정밀한 칼끝으로 새긴 연속된 선 같았다. 그는 그 몸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잘 조율된 악기이자, 전시된 조각품이라 여겼다.


다음날 오후,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 사무실은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회의도 끝났고, 마감도 당장 급한 건 없어 각자의 책상에서 다들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무실 후배가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며 기지개를 켰다.


“하암... 와, 어우 씨, 담 걸릴 뻔했다.”


그가 어깨를 부여잡고 몸을 뒤틀며 신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이진석이 힐끗 고개를 돌리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진수야, 그거 딱 운동 부족 증상이야. 혈액순환 안 되면 그렇게 근육이 뻣뻣해지는 거야.”


“요즘 날도 꿉꿉하고 더운데 뭘 하긴 하겠어요.”


“그러니까 몸이 굳는 거지. 허리까지 나가면 답도 없어.”


이진석은 자리에서 허리를 펴며, 일부러 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근육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동작. 그러곤 후배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형 좀 봐. 이렇게 유연하고 딱 잡힌 몸이 돼야 아픈 데가 없지.”


그리곤 모니터에 들어 갈듯 한 자세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직장동료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너는 목이 앞으로 너무 나왔어. 그 거북목 똑바로 자세 교정 안 하면 디스크 바로 간다.”


그는 동료를 힐끗 훑더니 이내 자기 텀블러를 들고 마시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혈압, 혈당, 담, 우울증까지. 만병의 원인은 다 운동 부족이야.”


말투는 짐짓 조언하는 듯했지만, 누가 들어도 자랑에 가까웠고, 그런 이진석의 태도에 직장 동료들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요즘 다시 운동에 불붙었나 봐요?”


사무실 여직원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녀는 요즘 야근이 줄어들어 그런지 텀블러를 닦으며 느긋한 얼굴이었다.


이진석은 기다렸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팔을 앞으로 쭉 뻗고, 한쪽 팔뚝을 구부리며 근육을 뽐냈다.


“요즘 다시 벌크업 들어갔지. 팔은 아직 좀 남았는데 등은 꽤 채워졌어. 이두는 아침에 펌핑하고 나왔더니 딱 좋더라고.”


그는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며 몇 차례 힘을 줬다. 핏줄이 불쑥 솟아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헬스요? 저는 요즘 필라테스 해요. 허리 아파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필라테스도 괜찮지. 코어 힘 기르기엔 최고야. 너는 자세가 워낙 좋은 편이라 더 효과 있을 거야.”


여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러닝크루도 나갔었는데, 장마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못 가고 있어요. 물에 빠진 쥐새끼꼴로는 달리기 싫더라고요.”


“요즘은 실내 위주로 돌려야지. 장마철에 러닝 하다 미끄러지면 큰일 나.”


이진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요즘 애들은 운동을 참 안 해. 그러나 형 나이되면 고생들 좀 할 거다.”


하지만 팔을 들며 봤던 손등의 핏줄은,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았다. 소매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난 타투도, 마치 오래된 인쇄물처럼 조금씩 번진 듯 흐릿했다.


이진석은 그날도 별다른 약속 없이 곧장 피트니스 클럽으로 향했다. 바깥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퇴근 행렬 속에서 그는 당연하다는 듯 운동복 가방을 어깨에 멨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 헬스장은 특유의 땀 냄새와 철제 기구가 맞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다시 나타났다. 똑같은 복장, 똑같은 위치,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실루엣. 어제의 빈약함은 사라지고, 어깨선은 또렷해졌으며 팔에는 미세하지만 명확한 근육의 곡선이 생겨 있었다.


‘하루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가 없는데.’


이진석은 숨을 고르며 벤치에 앉아 습관처럼 손목을 돌렸다. 이두 컬로 몸을 풀기 시작한 그는 오늘만큼은 그 남자보다 더 완벽한 루틴으로 자신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무게를 늘리고 자세를 정확히 잡았다. 하지만 3세트를 넘기기도 전에 그의 호흡은 엉키고 있었다.


옆 거울 너머로, 그 남자가 스쿼트를 하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무게는 이진석이 현재 드는 수준과 거의 같았다. 이진석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한참 아래였던 그 남자가, 이제는 자신과 같은 중량을 들고 있었다. 자세도 마찬가지였다. 등 각도, 무릎의 움직임, 허리를 세우는 타이밍까지 이진석이 오랜 시간 다듬어온 그 자세였다.


'뭐야? 저 중량을 저 자세로?'


트레이너조차 이진석의 자세를 교정하느라 몇 달이 걸렸었는데, 그 남자는 아무런 지도 없이 그의 폼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아니, 따라 한다기보다, 완전히 '자기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진석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데드리프트로 이동했다. 평소보다 중량을 5kg 더 얹었다. 바벨을 들자 팔이 떨렸다. 첫 세트부터 숨이 거칠었고, 두 번째 세트에서는 무릎이 벌어졌다. 무게를 놓치진 않았지만, 뭔가 끊어진 느낌이었다.


땀이 흐르고, 호흡은 가빠졌다. 그는 물을 마시려다 거울 너머의 그 남자를 다시 봤다. 이제는 랫풀다운을 하고 있었다. 팔의 벌어짐, 광배근의 수축, 호흡 타이밍 모두 완벽했다. 심지어 이진석만이 하던 세트 사이의 짧은 팔 털기 습관까지도, 그 남자는 하고 있었다.


‘머야?.. 저놈 저거까지 따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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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석은 이두 운동으로 넘어갔다. 중량을 낮춰야 했다. 손목이 흔들리고, 팔에 피로가 쌓였다. 반면 그 남자는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웃지도 않고, 헉헉대지도 않았다. 이진석이 예전에 하던 루틴대로, 이진석의 리듬대로.


'말도 안 돼. 저건 내 루틴이야. 내가 만든 방식이라고...'


트레이너가 다시 다가왔다.


“이진석 회원님, 오늘은 마무리 스트레칭 하시죠? 좀 많이 힘들어 보이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못 하겠다는 자존심 상하는 신호를 말 대신 몸으로 표현했다. 물병을 들고 천천히 거울 앞을 지나갈 때, 그는 문득, 자신이 그 남자처럼 보이려 애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새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그가 자신을 따라잡은 게 아니었다. 이제는 자신이 그를 뒤쫓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가슴 기구 앞에 앉았다. 가볍게 두 세트. 기계처럼 반복하며 속으로 말했다.


‘내가 만들어온 방식인데... 이걸 따라 한다고?.’


그는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어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뜨거운 수증기가 밀려왔다. 그의 걸음은 무겁고,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물기 어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지쳐 있었고,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젠장... 잘하는 거라고? 나보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샤워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치아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귀 안에서 울릴 만큼 강하게.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꾹꾹 눌러 삼키며, 그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내일이다. 내일은 반드시 이긴다. 다시 내가 증명한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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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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