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下
다음 날, 출근한 민영이 팔을 걷자 김대리가 다가와 말했다.
"민영 씨, 팔 붉은 거 왜 그래요? 너무 심한 거 같은데...?"
민영은 팔뚝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모기 때문이죠, 뭐. 요즘 유독 심한 것 같지 않아요? 장마 때문인지 진짜 많아졌어요."
그때 최수정이 커피잔을 들고 다가왔다.
"맞아. 우리 동네는 요즘 거의 전쟁 수준이야. 엘리베이터에서도 나오고, 방 문 닫아놔도 들어와. 방충망 뚫고 오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야."
김대리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말했다.
"신기하네, 우리 동네는 별로 없어요. 며칠 전에야 겨우 한두 마리 본 정도? 오히려 출근해서 더 많이 물리는 것 같아요."
사무실은 장마로 눅눅했고, 대화는 점점 더 짜증과 불쾌함으로 채워졌다. 민영은 대충 웃으며 커피를 홀짝였지만, 머릿속은 다른 데에 있었다. 하연이었다. 그녀의 피부, 눈빛, 말투, 그리고 너무 빠른 회복.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퇴근 무렵, 하늘이 어둑해지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향하던 길목, 우산도 없이 천천히 걷던 민영은 공원 입구 근처에서 우연히 하연을 다시 마주쳤다. 하연은 그늘진 나무 아래, 비를 피하듯 가만히 서 있었다.
“하연 씨?”
민영이 말을 걸자, 하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도 역시 핏기 없는 얼굴이었다. 눈 밑은 퍼렇게 꺼져 있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마치 며칠째 앓아누운 사람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씨에도 얇은 옷차림 그대로였다. 젖은 어깨와 소매 끝이 피부에 달라붙어, 보는 사람이 더 서늘해질 정도였다.
“하연 씨, 감기 걸리겠어요. 이러다 더 젖으면 큰일 나요. 우산도 없이 왜 이렇게 계세요?”
민영은 가까이 다가가며 걱정스레 말했다. 하지만 하연은 짧은 미소를 띠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비 오는 날이 좋아요. 세상이 조용해지잖아요."
그 말투는 담담했지만,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감정 자체가 결여된 듯했다. 민영은 멈칫했지만, 애써 태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정적 뒤, 하연은 몇 마디를 더 건넸고, 그녀의 말은 예전보다 부드럽게 이어졌지만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민영은 인사를 하고 다시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로등 불빛 아래 젖은 아스팔트가 반사되고 있었고, 그녀는 문득 뒤를 돌아봤다. 하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검은 덩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엔 비구름이 낮게 깔린 건가 싶었지만, 그것은 수백, 수천 마리의 모기떼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채 무리를 이룬 그들은, 덩어리처럼 일렁이며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방향은 좀 전까지 하연과 대화를 나누던 공원.
윙~~ 윙윙윙윙윙
날갯짓의 소리는 이제 바람소리와 섞여 귓속을 찌르듯 울려 퍼졌다. 민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공원 쪽을 바라보았다. 하연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녀는 우산도 펴지 않은 채, 망설임도 없이 다시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무언가, 아주 이상한 것이 그 속에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공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어둠은 나무 사이사이 깊이 내려앉아 있었다. 잔잔하던 비는 어느새 이슬처럼 내리고 있었고, 가로등 불빛은 습기 어린 안개를 뚫지 못한 채 흐릿하게 번졌다. 그 아래,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야가 익숙해지자, 그건 모기들이었다. 무수한 모기떼가 하나로 엉겨 붙어 있었다. 그들은 마치 무엇인가를 예비하는 의식을 치르듯 돌고, 뭉치고, 흩어졌다가 다시 한 점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민영은 걸음을 멈췄다. 어깨가 저절로 굳었고, 손끝이 싸늘해졌다. 공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끈적함이 감돌았고, 귀를 감싸는 날갯짓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더 정교하게 그녀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귓속에 대고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모기떼가 이렇지?.'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천천히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걷는다는 의식조차 없을 만큼, 몸은 얼어붙었고, 시선은 자연스레 공원 가장 안쪽 벤치로 향했다.
그곳에 하연이 있었다.
얇은 하얀 티셔츠는 빗물에 완전히 젖어 몸에 들러붙었고, 그녀의 몸에는 수백 마리, 아니 수천, 수만 마리의 모기들이 시커멓게 달라붙어 있었다. 팔과 목, 어깨, 무릎, 심지어 눈꺼풀 위까지. 그녀는 그 상태로도 평온하게, 혹은 완전히 무력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연... 씨...?”
민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고개를 약간 들어, 자신과 눈을 맞추려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눈동자에서 감정이나 의지는 찾을 수 없었다.
모기들은 흡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몸 안에 무언가를 '주입'하고 있었다. 빨대를 꽂듯 박힌 주둥이마다 그녀의 핏줄이 파르르 떨리며 부풀어 오르고, 피부색은 처음에는 생기 없는 회색으로 바뀌는 듯했으나, 곧 얇은 핏줄을 따라 붉은 기운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안쪽에서부터 피가 퍼져 나오듯, 차츰차츰 생기가 얼굴로 번졌고, 그 혈색은 오히려 병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입술에도 기이한 선홍빛이 스며들었고, 볼에는 열이 오른 듯 붉은 기운이 돌았다. 마치 피가 '주입'되며 몸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광경이었다.
민영은 그 기이한 광경 앞에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입을 벌렸지만 목구멍에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등골로 냉기가 흘렀다. 이건 악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 깨어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야?'
머릿속에서 수많은 부정과 의심이 교차했다.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이 울부짖었지만, 발은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분명 기괴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하연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모기들이 그녀에게 피를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생기를 넣고,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 수천 마리의 모기떼 속에서도, 단 한 마리도 민영에게 덤벼드는 놈은 없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이질적이고 불안했다. 왜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는 거지? 여기서 내가 이질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이 무언가와 무관한 사람인가?
민영의 가슴은 터질 듯 요동쳤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연을 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저 장면이 '구원' 그 자체인 걸까? 혹은, 이 이상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쳐야 할 유일한 기회는 지금일까?
눈앞에 벌어지는 기묘한 의식 속에서, 민영의 생각은 끝없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하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고개 움직임조차 사람의 것이 아닌 듯 부자연스러웠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지금껏 민영이 보아온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때, 하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기이하게 올라갔다.
“괜찮아요, 민영 씨. 이젠 아프지도 않아요.”
그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입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입을 빌린 듯한 말투였다.
그때였다.
부르르르—부와 아아아아 앙~~
그때였다. 공원 뒤편에서 방제 차량의 엔진 소리가 무겁게 울려왔다. 곧이어 차량 뒤편의 노즐에서 뿜어져 나온 회색 연기가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서서히 공원 안으로 번져 들어왔다.
이내 연기는 하연과 모기떼를 삼켰고, 그 순간이었다. 귓가를 메우던 날갯짓 소리가 비틀리듯 끊기더니, 수천 마리의 모기들이 마치 경련을 일으킨 듯 허공을 휘저으며 방향을 잃고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땅바닥, 벤치, 어디든 그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그 한가운데서 하연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은 모기떼와 연기에 뒤엉켜 퍼졌고, 연막은 순식간에 공원을 덮었다. 민영은 연기에 시야가 가려져 그 안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마치 무대의 막이 내려오듯, 연기는 하연과 모기떼를 모두 감추었다.
민영은 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연기 너머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막은 그녀에게도 빠르게 밀려들었고, 시야 전체를 뿌옇게 가렸다.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석유 냄새가 폐 속으로 들어왔고, 목구멍은 따갑게 조여들었다. 기침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았다. 들리는 건 날갯짓이 뒤틀리며 꺾이는 듯한, 습하고 불쾌한 소리뿐이었다. 이내 그것도 멎었다.
비명도, 윙윙거리던 모기 소리도, 모든 것이 연막 속에서 삼켜지듯 사라졌다.
한참 뒤, 연막은 점차 옅어졌고 공원엔 적막이 내려앉았다. 하연이 있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닥 위에 검게 말라붙은 모기들의 시체만이,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흐릿해진 연막에 뿌옇게 비추는 가로등 밑, 민영은 끝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은 요동쳤고,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민영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뒷덜미엔 아직 연막의 냄새가 남아 있었고, 머릿속은 멍했다. 이해하려 들면 들수록, 모든 게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하연 씨는... 대체 뭐였던 걸까.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내가 꾼 이상한 꿈이었을까.'
'정말 있었던 일이긴 한 걸까... 그냥, 내가 너무 피곤했던 걸지도 몰라.'
민영은 고개를 약간 떨군 채 천천히 걸었다.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 비쳐 들었고, 귓가에는 아직도 희미한 윙윙거림이 맴도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보려 해도, 하연의 마지막 표정과 연막 속에서 사라진 그 순간은 지워지지 않았다. 민영은 다시 한번 팔을 문질렀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가려운 감각은 아직도 피부 안쪽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 행동이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녀는 그저 조용히 걷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 거울을 보던 민영은 자신의 팔에 엷은 붉은 자국이 사라져 있는 것을 알았다. 간지러움도, 욱신거림도 없었다. 대신 희미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마치 어젯밤의 모든 일이 실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회사에 도착하자 김대리와 최수정은 여느 때처럼 모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갑자기 조용해졌지 않아? 이상하게 하나도 안 보이더라."
"맞아. 우리 집도 마찬가지야. 모기향 피워둔 것도 아닌데 깨끗하더라고."
그 순간, 민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공원에서 마주한 그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하연의 모습. 그녀는 회사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하연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말이 목에서 걸렸다.
퇴근 후, 민영은 일부러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저녁, 그녀는 천천히 공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 종일 말없이 곱씹었던 감정과 생각들이 가슴속에 어지럽게 얽혀 있었지만, 말로 꺼내기도, 스스로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바람은 잔잔했고, 공원 입구의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그녀는 하연과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벤치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변엔 사람도, 소리도, 모기도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벤치를 바라보았을 때였다.
위이잉~~
작고 선명한 날갯짓 소리가 바로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모기 한 마리가,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궤적으로 민영의 코 앞을 날아지나 간 것이다.
그녀는 숨을 멈춘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팔에는 아무 자국도 남지 않았지만, 잠깐 동안 느껴진 바람의 결이 피부 위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엔 그저 평범한 저녁의 어둠과, 잔잔히 움직이는 나무 그림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는 실제와 무관합니다.
혹여 현실과 유사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모기에서 출발했습니다.
끈적한 공기, 자꾸만 깨게 만드는 날갯짓, 문득 피부에 남은 가려움.
그 짜증 나는 존재가 ‘왜 굳이 사람의 피를 빠는가?’라는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모기는 본능적으로 피를 빨아들이지만, 그 행위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한 준비 행위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피를 빼앗는 게 아니라, 주입하는 존재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