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김새우 터진 등 수선하는 일기
김혜리 작가님과 이슬아 작가님의 조용한 생활이라는 팟캐스트를 아시나요? 그 팟캐스트에서 “최근에 발견한 아름다운 무엇”이 무엇인지 써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때 이 글을 써서 냈답니다. 운 좋게도 이슬아 작가님이 제가 낸 글을 손수 골라서 읽어주셨어요. 다음 문장이 예상되지 않는 매력이 있다고 하셔서 감사했어요. 제가 취업한 것을 알게 되고 작가님이 하트도 보내주셨답니다… 그리고 제게 쉼보르쉬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를 읽어주셨어요. 김새우의 터진 등이 여러모로 수선된 하루였죠.
일단 제 글을 첨부합니다!
최근 발견한 아름다운 무엇은 제 삶인데요. 사실은 놀라운 발견입니다. 왜냐면 저는 지난 1년간 처절한 탈락을 경험했습니다. 아름다울 일이 없는 삶이죠. 저는 시사교양 PD를 꿈꿨는데요, 정말 저번 해 내내 저는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탈락을 경험했어요. ‘어유 너무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고 탈락. ‘인턴까지 한 달 시켜보고’ 탈락, ‘제 답변을 듣자마자 호탕하게 발사된 비웃음을 겪고’ 탈락, ‘점심시간이 곧이니 3분 만에 나가 달라’는 말을 듣고 탈락 등. 어려서, 여자여서, 학교가 SKY가 아니어서, 그 밖에도 수많은 이유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취업 재수를 결정하고 어느 날 길을 걷는 데요, 놀랍게도 삶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내리쬐는 햇살과 푸른 구름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 길로 곧장 제가 평소 가보고 싶었던 동네 카페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했습니다. 2500원밖에 안 하더군요. 그걸 마시면서 걸어봤어요.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반짝이고, 적당히 서늘하고 적당히 따스했어요. 참 아름답더라고요. 갑자기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째 스스로 놀랐어요. 저는 제가 취준생이어서, 여자여서, 학교가 SKY가 아니어서, 어려서…. 등등의 이유로 “아직은” 행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행복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곧장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에 갔어요. 더 행복해졌어요. 논 시간만큼 읽지 않은 신문과 주간지는 쌓였지만, 밀린 읽을거리들을 읽으면서도 행복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삶을 주관적으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어요. 세상이 날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제 나름대로 심지를 갖고 살아가려는 한 여성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였어요. 아마 앞으로도 자주 쉽지 않겠죠, 그렇지만 여자들이 살아내는 삶은 그냥 아름다운 걸로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