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치이는 김새우 일기
나는 일상을 탈부착하는 삶을 산다. 다양한 결의 내 일상을 묻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탈부착해서 설명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지내?”라는 말에 솔직함과 표현의 정도를 고심하다 말을 꺼낸다. ‘일상 탈부착’이 시작된 것은 미국 교환학생 때부터다. 교환학생을 온 동기들은 대부분 집안이 잘살았다. 그저 중산층이라는 게 아니라, 정말 보기 드문 부잣집 딸, 아들들이 많았다.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어제는 아웃렛에 가서 명품백을 3개, 지갑을 4개 사 왔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면에 집안도 평범하고 낯선 타국에서 잘 적응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오늘도 방안에만 있었다고 머쓱하게 웃기도 했다. 집안 환경과 본인의 사회성에 따라서, 누릴 수 있는 일상이 크게 차이가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잣집 딸들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이야기하며 몸매 관리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또, 집에만 있는 친구가 물어보면 나는 요즘 한식당에서 일하니 한식이 그리우면 찾아오라고 했다. 연구실을 알아보는 공대 오빠에게는 요즘 교수님이 운영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으니 비자 관련해서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점심 타임에 한식당에서 일하다, 오후에는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밤에는 한국어 과외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상의 전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상을 교묘하고 능숙하게 ‘탈부착’하는 데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언론반에 들어오고 싶은 후배 앞에서는 취업난에 대한 걱정은 쏙 들어가고 언론반 스터디가 참 알차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그러다가도 취준생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공채가 참 뜨지 않아 힘들다고, IMF 때 태어난 97년생들은 자라 코로나 세대가 되었다고 웃는다. 그러고 보면 일상 탈부착은 유전이다. 24년 전 우리 아빠는 갓난아기인 나와 젊은 엄마에게 직장이 부도가 났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 혼자 놀이터에서 울었다고 했다. 아빠의 눈물로 키운 나는 자라서 코로나로 더 좁아진 취업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코로나 세대 취준생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에 앉아 뜨지 않는 공채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런 일상은 놀이터에 잠시 앉혀 놓고, 집에 들어가서는 언론반 술자리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밥 먹듯이 일상을 탈부착하는 나는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솔직한 일상을 마주하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누군가가 어제 뭐 했냐는 말에 자연스럽게 자신이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고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이야기였지만, 매일 마주칠 때는 알지 못했던 뒷면이었다. 모두가 공부하고 스터디를 할 때, 홀로 택배를 내리는 그를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닌 척 조용히 이야기할 때의 마음도 생각해보았다. 그 은밀한 고백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 예고 없이 마주친 진심에, 조금씩 내 일상을 풀어놓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20개의 글 사이에 슬쩍 글을 들이밀며 툭 고백해본다. 나의 일상 탈부착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