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읽다가

PART 2 슬기로운 환자 생활

by 작가정신

저녁 준비하다 부고가 뜬 것을 봤다. 나보다 한 살 위, 나랑 비슷하게 6년 전 박사를 받고 2년 전까지 연구 교수를 하다 지금은 모교에 전임이 되신 듯한데, 너무. 젊은 나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20년간의 아까운 세월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까지 연락하던 출판사 사장님도 놀라신 것으로 봐선 사고사나 돌연사가 아닌가 싶다.


입원했을 때, 완전히는 아니지만 의식이 몽롱해지고 시야까지 반쯤 어두워지는 경험을 했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 같았다. 매일 밤 한두 시간 밖에 잠을 잘 수 없었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다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는 있을까? 이대로 영원히 잠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절박하고 처량한 심정이었다.

작년에는 학과에도 나의 병을 알리지 않고 연구 학기를 받아 수술을 마쳤는데, 이제는 더 감출 수가 없었다. 학과장에게, 당장 수술을 해야 할지 치료 방향을 상의해야 했기에 이 선생님에게, 지인들에게 차례로 연락했다. 만일의 경우 알츠하이머 상태로 홀로 남겨질 수도 있는 엄마를 위해 요양 시설과 믿을만한 변호사도 찾아야 했다. 환자라는 내 처지와 어울리지 않게 이렇게 바쁜 것이 오히려 나의 육체와 정신을 조금씩 회복시켰다.

외할머니의 가족력 때문에 늘 치매를 우려하셨던 엄마. 재작년에 엄마의 신경과 주치의께서 엄마의 상태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경도인지 장애에 접어들었다고 전해 들었을 때도 내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그날 선생님은 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엄마는 치매를 감별하기 위해 개발된 현대 의학의 모든 검사를 받으셨고, 검사 결과의 모든 지표들은 엄마가 알츠하이머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음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런 문제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엄마도 이런 문제를 남들 심지어 친척들)에게 알리는 걸 극도로 꺼려 하시는 성격이신데, 나도 성격이 기본적으론 내성적이라 더욱 그렇다, 그나마 나에겐 모친의 경도인지 장애 판정을 받고 나에게도 어머니 뇌 검사를 권유했던 재활원의 유 과장이 있었고, 작년에 아버지를 알츠하이머와 당뇨로 보낸 고등학교 동창 진영이가 있어, 내 심정을 토로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가 늘 말씀하셨듯 남은 남이고 무엇보다 이 병에는 현대 의학도 뾰족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선 누군가에게라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치매나 돌연사와 달리 암은 대체로 인간에게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준다. 지난 3월 퇴원 후, 내 의무 기록 사본을 읽어보며 이 지경에도 내가 의식과 시력을 잃지 않은 것에, 유전자 변이가 있어 급여로 쓸 약이 있음에 얼마나 감사드렸는지 모른다. 비록 사는 것도 죽음만큼이나 쉽진 않지만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조금씩 나의 삶도 꺼내 놓으며, 새롭게 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이전 16화서재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