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일하고 싶다
PART 3 삶은 계속된다
의대생들이 꽃동네에서 장애인, 노숙자들과 2박 3일을 지내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내게는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나의 첫 직장은 공공 병원이어서 주기적으로 장애인 시설들에 순회 진료를 나가야 했었다. 매 달 한 번에서 많게는 두세 번 각기 다른 시설에서 검진이나 간단한 진료를 하는 일이었다. 보통은 소아과와 치과가 기본으로 나가고 경우에 따라 재활의학과나 정신과 선생님들도 참가하셨다. 다른 과들은 의사가 여러 명이라 돌아가면서 나오셨지만 치과는 나 혼자뿐이라 나는 매번 다녀와야 했는데,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 돌이켜 봐도 단조로운 병원 생활의 숨통을 열어주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사무직 증후군이랄까? 통상 치과 환자는 치과에 본인이 찾아오기 때문에 치과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출퇴근 시간 외에는 치과 건물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병원 증축으로 한창 바쁠 무렵에는 사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치과 창 밖의 꽃들이나 신록, 낙엽, 눈을 보면서 실감하기도 했다. 그래서 업무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침부터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오가는 차 안에서 차출돼 온 입원실 간호사, 다른 과 선생님, 병원 기사 아저씨 등과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도 어제 일처럼 새롭다.
게다가 본업인 진료를 통해 놓칠 수 있었던 환자의 병을 알려드린다는 자긍심과 보람이 있었다. 환자들 대부분은 우리 팀이 다녀가지 않으면 병원에 스스로 가기 힘든 중증 장애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설마다 형편은 다 달랐고 열악한 곳이 많았지만 의료진을 정말 환대해 주셨다.
이윽고 화면 속 학생들이 화장실 청소와 빨래를 하며 뇌성마비 환자와 힘든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오니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대접받으며 진료만 보았지 그들의 생활환경이나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건네지 못했었기에 후회가 남았다. 이번 체험을 기획하셨다는 인문사회의학 교실 교수님의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진심을 다해 챙겨주려 애쓴 학생들에게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멋진 마무리 말씀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그분처럼 교수가 되고 싶어 그 병원을 떠났다. 그러다 재작년 건강 검진 도중 갑자기 발견된 암으로 인해 지금은 휴직 중이다. 수술과 항암을 거치면서 의사에서 환자로, 연구자에서 도리어 연구 대상자가 되어 버리니 마음이 요동치는 날들이 많았다. 환자 입장에서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때때로 의료인인 나조차도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본다. 가족도 수술방 앞까지만 따라올 수 있을 뿐이고 인간이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일에 공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느 시처럼, 그러는 너는 어떤 의사였는가 나에게 묻게 된다. 더 나아가 ‘지금 아픈 것이 나의 선 넘은 욕심의 결과인가?’ 하는 생각마저 해 본 적이 있다. 아마 건강 때문에 가정도 힘들어지고 내가 꾸던 꿈들에서도 멀어졌다는 좌절감에 그랬던 것 같다.
이십 대에는 마흔이 넘으면 모든 것이 안정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당연히 알 수 있으리라 여겼었다. 내가 나를 다 알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지금 나를 살리고 있는 희망을 여기 써본다.
나는 다시 일하고 싶다. 완치, 그리고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부질없고 헛되기 만한 기대인가 다 놓으려다가도, 여전히 보람된 일을 하고 행복해지고 싶은 숨길 수 없는 나의 마음이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알게 되는 날도 선물처럼 왔으면 좋겠다. 그런 기적 같은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