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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즈 Jan 03. 2022

없는 동화 <고양이 나비>

간절함이란 무엇일까?

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강이 그 밑에서 구불구불 흐르는 곳 가까이에

열 가구정도가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 있었습니다.


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지어진 집에서는

두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었는데

별들이 산 뒤로 사라질 때쯤이면

두 마리의 닭이 번갈아 가면서 

목청껏 울어댔죠.

그러면 조용히 흐르는 강 위로 미끄러진 닭울음소리가 

산을 타고 작은 동네 전체를 울렸습니다.

뒤이어 유일하게 

큰 도로와 맞닿아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에서 키우는 콜리처럼 생긴 개 레쉬가

닭들을 따라 우는 건지,

조용하라고 소리는 지르는 건지

따라서 짖어댔습니다.


그렇게 조용한 마을이 동물들의 소리로 시끄러워지면

하나 둘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동글이 마을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순이 할머니는

장에 갔다 돌아오다가 마을 입구에서 

어미를 잃은 듯 애용애용 거리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는데

불쌍해보였지만 곧 어미가 오겠지 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그 새끼고양이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애용애용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걱정되는 마음에

혹시라도 지금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다면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작정하고

새끼고양이를 봤던 곳으로 갔습니다.

이미 해가 지고 난 뒤라서

후레쉬를 들고 조심조심 도착했는데

그곳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어미가 데리고 갔구나 안심을 하고 

혹시 몰라서 고양이가 있던 곳을

후레쉬로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줄 알고 비췄던 그 자리에

낮에 보았던 새끼고양이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쓰러져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흰색과 노란색이 섞인

이 작은 생명체를 

쭈글쭈글하지만 핏줄이 다 비추는 

작은 한 손으로 품에 안고

다른 한손에는 후레쉬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오자마자 이 가엾은 생명체를

두꺼운 수건으로 감싸고 자신의 이불위에 두고는 

며칠 전 큰아들이 사놓고 간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밥그릇에 붓고 전자렌지에 데웠습니다.

할머니는 전자렌지에 우유가 데워지는 사이

혹시 움직임이 있는지 확인하러

고양이가 있는 안방과 전자렌지가 있는 주방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전자렌지에서 땡~ 소리가 나자

할머니는 우유가 든 밥그릇을 꺼내

안방으로 와서 새끼고양이 곁에 앉았습니다.

우유가 너무 뜨겁진 않은지 확인하려고

할머니는 새끼손가락을 우유에 갖다 대고는

온도가 괜찮았는지 새끼손가락에서

떨어질랑말랑하는 우유방울을 

새끼고양이 입으로 가져다댔습니다.

다행이도 새끼고양이는 

혓바닥을 낼름거리기 시작했고

몇 분 뒤 몸도 가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이 새끼고양이에게

나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나비는 건강하게 자라서 

어느덧 함께 살게 된 것도 두 달이 다되어갔습니다.    

 

나비는 호기심 많은 따라쟁이였는데

할머니가 자기를 쓰다듬으면

나비도 할머니의 거친 손을 핥아주었습니다.

할머니가 밭일을 하러 나가면

나비도 할머니를 따라 밭으로 나갔고,

할머니가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면

나비도 파리를 쫓아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사이

나비는 별들이 보이는 창틀에 올라가 

반짝거리는 별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별들이 사라질 때 쯤 

강가 쪽에서 닭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비는 그날따라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몰래 살짝 집을 나가서

그 소리가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닭장 안에 두 마리의 닭이 있었는데

나비는 닭이라는 생명체를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닭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세요?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닭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닭이라고 해. 지금 나는 소원을 비는 중이야>

<무슨 소원이요?>

<삐약삐약 이쁜 아이들을 가지게 해달라고 비는 중이지>

<아이요?>

<그래, 너도 엄마가 있잖아. 

너처럼 예쁜 아이를 낳고 싶어.

그런데 아이가 아니고 동글한 알을 낳아서

이집 주인이 매일 아침에 가져 간단다.

그래서 매일 누구보다도 가장 일찍

간절하게 빌고 있어.

알이 아니라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닭의 이야기를 들은 나비는

언젠가 할머니도 계속 알을 낳다가

간절히 빌어서 자신을 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닭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닭님! 그렇게 빌면 원하는 게 이루어져요?>

<그럼 이루어지고말고. 대신 간절해야해.

진짜 이루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절실해야해.>


나비는 무슨 말인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닭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비는 다시 창틀에 올라가

별들이 사라진 하늘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닭님처럼 따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비는 원하는 게 없었습니다. 

할머니와 즐겁게 사는 게 전부였는데

닭의 말을 듣자 원하는 게 없는 자신이 이상했습니다.

원하는 게 있고 그것을 간절히 원하며

새벽마다 비는 게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비도 원하는 것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닭님처럼 동네 전체를 울리도록

큰 소리를 가지는 거였습니다.


나비는 매일 새벽 별이 사라질 때 쯤

닭님보다도 일찍 큰 소리로 빌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지만

닭님처럼 큰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간절함이 부족한 것 같아서 

간절함을 만들어내려고 

더욱 기를 쓰고 왜 자신이 큰 소리를 내야만 하는지

온갖 이유를 만들어서 

새벽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더 큰 소리를 내어 빌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따뜻하기만 했던 할머니는 화를 냈습니다. 

이상했지만 나비는 자신의 간절함이 

부족한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닭님의 소리가 들리면

반대편에서 멍멍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동안에도 그 소리를 들었었지만

오늘은 생생하고 더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어쩌면 닭님보다 더 큰 소리를 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비는 할머니 몰래 

그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나비는 철문사이로 자신보다 덩치가 5배는 커 보이는

생명체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그 생명체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잠깐만! 잠깐만 고양아>

나비는 바짝 엎드린 자세로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개야. 주인님은 나를 레쉬라고 부르지.

무서워 하지마. 나는 함부로 무는 

교양 없는 개가 아니란다.> 

나비는 레쉬의 당당하고 큰 목소리가 왠지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서웠지만 용기내서 물었습니다.


<레쉬님. 사실 레쉬님처럼 큰 소리를 내는 게

제가 원하는 거고 간절한데, 왜 안 이루어질까요?

닭님은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거든요.>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뭐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

운이 좋으면 말이야. 하지만 그건 극히 소수의 일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저도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까요?>

<간절한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원하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니야.

누가 그걸 이루어줄 수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지.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너는 누가 밥을 주니?>

<우리 할머니가요>

<그래, 밥 주는 사람이 최고야.

네가 원하는 것 따위는 필요 없어.

밥 주는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나비는 레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밥 주는 사람은 할머니인데

요즘 들어 할머니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나비는 레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할머니 품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품은 따뜻했고, 

지금까지 왜 내가 소리를 크게 내려고했는지

간절해지려고 했는지 그 많던 이유조차 까먹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오늘도 할머니 품에 잠들어 있는데

밖에서 나비와 비슷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자신을 부르는 소리처럼 느껴져서

나비는 얼른 창틀 위로 올라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습니다.

그곳엔 나와 비슷한 흰색과 노란색을 가진

덩치는 조금 더 큰 고양이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고양이는 나비를 보지 못했는데

나비는 처음 보는 자신과 비슷한 생명체에 놀라

몸을 숙이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비는 이상했습니다.

너무 무서웠는데 다시 가까이서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주 찰나였지만 아주 깊은 기억 속에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비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간절해졌습니다.

간절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들이 올라와

나비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그 소리는 강가에 울리는 닭님의 소리보다도

힘차게 울리는 레쉬님의 소리보다도

훨씬 큰 소리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보았던 그 고양이가 나비 앞에 나타나있었습니다.

마당에 있던 나비는 깜짝 놀라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귀를 뒤로 눕혔습니다.

그 고양이는 아주 천천히 나비에게 다가오더니

나비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냄새를 맡고는

나비의 몸을 혀로 핥기 시작했습니다.

나비는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의 엄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의 혓바닥이 할머니의 손길만큼 따뜻했고

자신도 그의 몸을 핥으면서 그르릉 거리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창밖에서 뒹굴고 있는 두 마리 고양이를 

흐뭇하면서도 왠지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없는 동화 <고양이 나비>는 제가 쓴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동화죠.

유튜버 진용진 님의 없는 영화를 보고 

콘텐츠 콘셉트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 번쯤 궁금했을 법한 주제인

원하는 걸 이루려면 간절해야 하는가? 

간절하지 말아야 하는가?처럼

제가 궁금했던 주제를 바탕으로

동화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어느 날 제 자신을 보니

좋다는 건 다 따라하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간절해야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간절해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간절함은 간절하도록 

만들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간절하기 때문에 간절한 것 아닐까요? 

마음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노력들이

지금 당장에는 좋은 결과를 일으킬 것 같지만

무조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심이란 만들어낸 마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대로의 마음이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달아주세요.

이상 써니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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