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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의미 Sep 30. 2022

꿈의 길이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8시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중환자실로부터 전화가 오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똥을 쌌다. 병원은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전면 불가능했다. 영의 상태를 확인할 방법은 오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마저도 두 번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규정상 전화를 거는 것이 불가능 한 건 아니었지만 영이 깨어나지 않아 물어볼 말이 한정적이었다.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가 화면에 뜨면 어김없이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들려오는 목소리 너머로는 일정한 심전도 기계 비프가 울렸다. 영은 일주일이 넘게 의식이 없었다.


검사에 따라 어떤 예후들과 경과들이 가능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추측들을 전달받았다.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뇌의 영역”이 특히나 더 그러하다고 의사들은 말을 줄였다. 소화할 수 없는 의사들의 말을 하루 종일 질겅질겅 씹었다. 모호하고 거대한 가능성은 한층 현실감각을 떨어뜨렸다. 시나리오는 무궁무진했다.


편마비가 생겼을 경우,

인지를 못할 경우,

기억이 없을 경우,

언어장애가 생겼을 경우,

성격이 변했을 경우.

그 모든 경우 이전에 깨어날 경우와 깨어나지 않을 경우.


유체이탈 엇비슷한 걸 해본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였는데 선잠에 들었던 것인지 일어나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의식은 또렷했고(적어도 그렇게 느껴졌고) 시야에 불빛이 흐릿했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엄마 영이었다. 백열등 부엌 불 아래서 아무렇지 않게 책을 읽고 있었고 무심한 뒷모습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부르는데!' 소리를 지를수록 이불이 몸을 더 무겁게 짓눌렀고 숨을 쉬기 어려웠다. 어떤 순간이 지나 발작처럼 들숨을 몰아쉬며 몸이 풀렸다. 공기가 이렇게 차가웠을까. 놀라 울고 있는 나에게 달려온 영은 영문 모를 당혹스러움을 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잠시 안겨 가슴팍을 퍽퍽 때리면서 익숙한 겨드랑이에 코를 박았다. 잃어버릴뻔한 냄새를 힘껏 들이마셨다. 꼭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영이 우리를 두고 여행을 갔다면 쿠바를 갔을 것 같았다. 예전에 관심 있게 보던 공정 여행사에서 중년 여성들과 함께 가는 쿠바 여행 패키지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화면 속 아바나의 낡은 건물과 올드카가 땡볕 아래 반짝였다.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시가를 피는 여자들이 거리를 서성였다. 화면 해상도를 올리며 영이 한숨을 쉬었다. 혼자 여행 가는 데에 천만 원이나 쓰는 게 맞을까? 천만 원이면 집 대출금을 갚을 수도 있고, 네 학원비를 보탤 수도 있고, 동남아시아 가족여행을 갈 수도 있을 텐데. 나열한 기회비용에도 불구하고 영은 꽤나 오랫동안 포스터를 응시했다.  


영의 호흡, 맥박, 혈압은 안정적이었다. 손발이 차서 온찜질을 했고 욕창방지 패드를 갈았고 콧줄로 식사를 마쳤다. 전화로 나열된 영이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어떤 날은 전화가 끝나자마자 무작정 서점으로 가서 책을 뽑아 들었다. 생물시간 스치듯 흘렸던 용어들은 고춧가루처럼 얼얼하게 코를 울렸다. 처음으로 행간이 이해되는 것 같았지만 찾고 싶은 내용은 없었다. “신드롬”, “증후군”으로 뭉뚱그려진 병리적 상태는 밝혀진 게 많지 않다는 의사들의 첨언과 다르지 않았다. 뇌는 우주다. 문장을 머금고 눈을 감았다.      


영의 생활 루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막내 도롱이었다. 학교 졸업 후 대학을 아직 가지 않은 그의 일과는 영과 촘촘히 결합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영의 부재에 부엌에 가장 많이 들락거리게 된 사람도 도롱이었다. 덕분에 여전히 부엌 선반 위는 강박적으로 깨끗하고 화장실 변기 뚜껑은 닫혀있었으며 빨랫감은 개어진 채 소파 위에 얹혀 있었다. 집은 영의 영역이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도롱이 관찰하지 않은 영의 모습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호롱이 영의 배치와 의도를 벗어날 때면 도롱이 다가와 영이 했던 말들을 그대로 읊었다. “누나, 거기에 물건 올려두는 거 금지야.”,“형, 빨래는 의자에 걸어두지 말고 제때제때 세탁기 안에 넣어줘. 양말은 통 밖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처음 듣는 규칙들에 내가 한때 그와 같이 살았던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아빠는 매일 아침 성당에 나갔다. 기도는 내가 아는 한 그가 가장 애정하고 끈기 있게 지속하는 일이었다. “엄마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성직자가 되고 싶었어.”라고 단언했던 그를 로맨티스트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나중에서야 그게 신빙성 없는 발언임을 알게 되었다. “너네 아빠는 툭하면 자자고 보챘어. 그런 사람이 무슨 성직자니. 너도 콘돔 잘 챙기고!”

성욕은 어쩔 수 없었지만 신을 향한 그의 지속적인 구애는 영도 인정한 바 있었다. 어떤 세월의 풍파가 닥친데도 촛불과 묵주라면 그는 진정 괜찮았다. 한 번은 내가 채 돌이 지나지도 않았던 무렵, IMF의 시류 탓에 몇 년째 구직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그가 몇 날 며칠을 잠도 안 자고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울고 있는 나를 재우다 일렁이는 촛불에 비친 아빠가 걱정된 영은 조용히 그에게 걸음을 옮겼다. 슬쩍 어깨너머로 보인 혈서에는 “나 오직 주님에게”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영은 그 순간, 본인이 잘못된 결혼을 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야, 너네 아빠는. 사람이 참 일관성이 있어.” 영은 자주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영의 방 침대는 천연 라텍스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머리만 대면 잠이 솔솔 오곤 했었다. 애인 늘보는 첫날부터 이 침대를 좋아했다. 늘보는 영이 쓰러진 날 밤부터 착실한 기사 노릇을 별말 없이 해주었고 끼니를 챙기지 않는 우리를 대신해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밥을 조달했다. 어느 날은 내 짐, 본인 짐을 가득 싸들고 들어오더니 영이 돌아 오기 전까지 그녀의 방에서 지내자고 제안했다. 그의 출퇴근을 보며 시간이 가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가끔은 그의 실없는 농담에 맞춰 숨을 골랐다.


환자 커뮤니티에서 추천한 유튜브 동영상들을 보다 지쳐 꿈에 들어갔다. 꿈은  번개 같았다. 머리를 세게 연달아 내려치고는 이내 사라졌다. 두세 개의 장면이 연달아 재생되었다. 깨면 충격적인 색깔, 냄새가 근육통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습관처럼  가지를 빌었다. 꿈에  나오지 않길. 영을 돌볼  있길.


카리브해가 보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는 마리메꼬 샛노란 원피스를 입고 시가를 피고 있었다.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곳이었다.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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