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터져라 우는 매미 떼에 아침 일찍부터 눈을 뜰 수밖에 없었던 삼형제는 주말마다 매미를 잡으러 밖으로 나갔다. 가무잡잡하고 몸에 상처가 제일 많은 열한 살 호롱이 앞장서 길을 나서면 여섯 살 도롱과 열세 살 내가 뒤를 따랐다. 부랴부랴 매미 통과 채를 챙겨 날쌘 호두 뒤에 따라붙으면 어느새 호롱은 손에 매미 한 마리를 쥐고 있었다.
“누나, 이건 말매미 암컷이야. 배에 난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어.”
배가 새하얗게 질린 말매미가 찍, 오줌을 갈기며 꼬리를 깔딱깔딱 흔들었다. 채는 곧잘 휘두르지만 매미 몸통을 잡지 못하는 나는 매번 호롱이 잡은 매미를 가까이서 쳐다만 보았다. 호롱은 날개 무늬, 꼬리 모양새, 다리 갈고리를 세심히 살핀 후 궁금해하던 도롱에게 매미를 넘겨주었다. 도롱은 형이 넘겨준 매미를 소중한 보석 마냥 뒤집어 보고는 “형아~” 하며 방금 전 그가 했던 얘기를 또 다시 물었다. 호롱은 손에 묻은 오줌을 슥슥 바지에 문지르고 옆 나뭇가지에 앉은 참매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도롱은 잡았던 매미는 놓아주었다.
1970년대 지어진 주공 아파트 단지는 오래된 플라타너스, 벚나무가 즐비했다. 수액에 취한 매미는 여름 내내 매암 매암 맴맴맴- 슭- 찌륽 찌륽, 쏴아- 울었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송충이가 팔랑팔랑 흩날렸다.
새로운 매미가 입주할 수 없을 정도로 통이 꽉 차면 세상 억울하듯 울던 매미들도 조용해졌다. 간혹 한 매미가 날뛰면 연달아 대 여섯 마리가 따라 울다 곧 그만두었다. 그 시점이 되면 우리는 땀으로 샤워한 등을 옷깃으로 펄럭대며 그늘을 찾았다. 보통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터로 향했다. 제일 무거운 내가 시소 중간에 앉고 호두와 도롱이 같은 방향 의자 두 개에 나란히 앉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명령하는 쪽은 나였다. 지시에 따라 호롱이 통 문을 열면 30마리 중 열 마리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호롱 옆에 찰싹 달라붙은 도롱은 매미가 나갈 때마다 깡마른 다리를 벙벙 굴렀다. 호롱이 기다란 채로 통을 몇 번 툭툭 치면 화들짝 놀라 나가는 매미가 또 대략 열 마리였다. 마지막까지 통에 남은 매미들은 가운데에 두고 우리는 시소를 탔다. 오르락내리락하며 더 놓아줄지 말지, 남은 매미를 기절시킬지 물에 적실 지 논의했다. 도롱은 조잘거리는 형과 누나 사이에서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배드민턴 채를 가져오는 건 막내 도롱의 몫이었다. 일을 벌이려는 누나, 형과는 멀찍이 떨어져 주차된 차 뒤로 귀를 막고 얼굴만 내밀었다. 호두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매미를 던지면 내가 배드민턴 채를 휘둘렀다.
“아 씨, 놓쳤어. 더 낮게 던져봐.”
빗 맞고 날아가는 매미, 맞고 기절한 매미, 날개가 잘려 파닥거리는 매미가 더러 있었다.
<매미 프로젝트>를 끝으로 작당도 모의도 없었다. 어린이를 졸업하면서 관심사, 취미, 또래 집단이 전부 달라졌다. 공조가 필요한 난제도 딱히 없었다.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대학병원에서 영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이동한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일반병실은 간병인 1인이 꼭 동행해야 했다. 간병인은 PCR 검사를 받고 코로나 음성임을 확인한 뒤 입소할 수 있었다. 병원에 들어가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대면 면회나 산책은 불가능했다.
뜨거운 차가 필요했다. 나는 영이 소화에 좋다며 먹으라고 강요한 허브티를 끓였다. 잠을 못 자 눈이 퉁퉁 부은 호롱이 눈을 비비며 허공을 응시했다. 답답한지 거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도롱은 사자 갈기처럼 퍼진 곱슬머리를 하나로 쪽 졌다.
셋 중 호롱이 가장 바빴다. 그는 실기 시험 때문에 비정기적으로나마 학교를 나가야 하는 공대생이었다. 대학 막 학기 온라인 수강생인 나와 대입 준비생인 도롱의 눈빛이 맞부딪혔다. 우린 남는 게 시간이었다.
간병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닐테지만 도롱은 나와 달리 대부분의 일을 정확히 해내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여행을 떠나기 세 시간 전에 짐을 싸고, 약속 시간에 딱 맞춰 집을 나서다 길을 잘못 들어 늦는 일이 허다했다. 내가 과장된 이모티곤과 허접한 변명으로 허둥거릴 때 도롱은 며칠 전부터 약속 장소와 시간, 교통수단을 다 파악하고도 파티 호스트의 취향을 고려한 선물을 준비했다. 내가 있는 힘껏 관심을 끌기 위해 과장된 공수표를 날릴동안 그는 타인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이 무서워 말을 아꼈다. 내가 도롱보다 간병인으로서 나은 점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영이 생리를 하게 되면 익숙하게 생리 컵을 비울 수 있었고, 화장실을 갈 때 같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이유가 꽤 중요하다는 것에 동생들이 의견을 모았다. 기한은 정하지 않지만 내가 지치면 이어 도롱이 들어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회의 결과를 회사에 있는 아빠에게 전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에 검사 결과가 나오면 저녁에는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은 부천에 있었다. 영이 쓰러졌을 당시 열이 났기 때문에 코로나 감염 의심 환자로 분류되어 아무 병원이나 갈 수 없었다. 뇌, 심혈관계 수술을 할 수 있는 3차 병원이면서 코로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음압병실이 있어야 했다. 얼떨결에 도착한 부천은 김포와는 교통이 아주 불편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했고 자가용을 이용한데도 자주 정체구간이 생겨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날 오후, 오랜만에 애인 늘보와 함께 인천 집에 들렀다. 영이 쓰러진 날 아침에 널고 나온 빨래는 무차별적으로 볕에 노출되어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부엌에서 물 비린내가 났다. 물에 담가 둔 냄비는 쉰 김치 조각이 떠다녔다. 늘보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쌀쌀한 바람에 먼지가 뒹굴러 다녔다. 내가 소파에 누워 천장에 눌어붙은 모기를 셀 동안 늘보는 잽싸게 빨래를 걷고, 개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이윽고 “뭐가 필요하지?”하며 벽장 깊숙이 숨겨져 있던 커다란 가방을 꺼내왔다. 늘보는 장난감 슬라임처럼 찌부된 나를 능숙하게 일으키더니 체한 사람 속을 달래듯 등을 쓸었다. 트림을 억지로 뱉어도 속이 더부룩했다. 병원에서 온 문자를 늘보가 읽고 그 장단에 맞춰 짐을 하나 둘 챙기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이 지난 병원 정문은 고요했다. 드문드문 배달음식을 시킨 간병인들, 링거를 꽂고 흡연을 하러 나온 환자들이 유유히 문을 통과했다. 문 앞을 지키는 검은 정장 직원은 정제된 표정으로 꼼꼼히 신원을 확인했다. 희미한 백열등 조명 아래 주차된 앰뷸런스만이 요란하게 빨갰다.
매고 들고 낀 가방 틈으로 도롱이 헤어 에센스, 스킨, 로션, 수분 크림, 연고를 끼워 넣었다.
“누나, 엄마가 얼굴이 땅긴다고 하면 이 스킨 바르고 크림 바르면 돼. 순서 기억 안 나면 엄마한테 물어봐. 피부가 갈라졌으면 이 로션 바르면 되고 허벅지 사이가 간지럽다 하면 이 연고 주면 돼.”
고개를 끄덕였지만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도롱은 심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모르면 전화를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요목조목 리스트를 챙기는 도롱 옆에서 아빠와 호롱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팔을 벌렸다. “전화할게.” 부둥부둥 보드라운 호롱의 등을 크게 한번 쓸었다. 머뭇거리며 다가온 아빠와는 쭈뼛쭈뼛 악수를 나눴다. 어쩔 수 없는 긴장감에 손바닥 땀이 고였다. 얇은 가을 점퍼 주머니 안으로 늘보가 1+1 초코바 밀어 넣었다. 영과 자주 먹던 딱딱하고 두꺼운 캐러멜 초코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