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실은 2층이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돌렸다. 간병인 팔찌엔 프린트된 영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그 밑에 내 이름이 나란히 기입되었다. 살면서 “보호자”란 타이틀을 걸어본 건 처음이었다. 추워서 약간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이동 침대를 실을 수 있을 만큼 널찍했다. 비어있는 공간만큼 망자들이 함께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알코올 솜 냄새가 공간을 가득 에워쌌다.
뇌 과학자들에 몇 가지 가설에 따르면 초기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시점에 이르러서야 뇌는 기억이 생존에 필수요건이라 판단했고, 경험 데이터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명적 실수를 줄여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만약 영의 뇌가 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누락했다 하더라도 그건 뇌의 오류였다. 혹시나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데도 연연하지 말자고 거듭 생각했다. 인터폰을 누르자 전화로만 듣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중환자실입니다.”
“김미영 환자 보호자입니다. 오늘 일반병실로 옮기기로 했어요.”
인터폰을 끊는 잡음과 함께 자동문이 열렸다. 어쩐지 문 안으로 들어가선 안 될 것 같아 기웃거리고 있는데 차트를 든 간호사가 보였다. ‘저요?’ 표정으로 쳐다보니 간호사가 손짓으로 화답했다. 구석에 던져둔 짐을 들쳐 매고 튕기듯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명이 필요한 서류들이 많았다. 간호사는 순서를 헷갈리는 본인을 민망해하며 차근차근 종이를 내밀었다. 수술 동의서, 입원 동의서, 마약성 진통제 및 약물 투여 동의서,,,. 간호사는 “보호자 동의” 공란을 손가락으로 톡, 톡 짚으며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동의를 안 할 수도 있는 건가? 낯선 단어를 몇 개 골라 되물었지만 역시 명확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였고 등에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시키는 대로 어색하게 펜을 들어 초등학교 시절 장난처럼 끄적인 서명을 그렸다. 이해도 안 되는 내용에 허접한 서명을 남발하고 있자니 눈 뜨고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건 절차일 뿐이야. 요동치는 마음을 달랬다. 내가 이해하고 반문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었다. 치료의 방법론적 접근에 있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서명을 마친 나에게 간호사는 당장 엄마 영에게 필요한 준비물을 몇 가지 추가적으로 언급했다. 지하 편의점에서 모두 구매할 수 있으니 구비 후 다시 인터폰을 눌러 달라 부탁했다.
성인용 기저귀 종류는 다양했다. 팬티처럼 입을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찍찍이 테이프로 차고 빼는 종류도 있었다. 순면인지 펄프인지, 라이트 핏인지 라운드 형인지에 따라 달랐다.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다만 영이 혼자 입고 벗을 순 없을 것 같아 내가 쉽게 갈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골랐다. 기저귀 말고도 빨대가 있는 플라스틱 컵, 물티슈, 비닐장갑, 소형 가위 따위가 더 필요했다. 필요한 건 많고 시간은 촉박한데 빠릿빠릿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목록을 전부 확인했는데도 무언가 빠뜨린 기분이었다.
중환자실 자동문은 종종 열렸다. 문이 움찔거릴 때마다 바닥에 있던 짐을 들었다 놓았다. 곧 엄마가 나올 거라고 했던 간호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머리를 잘랐을까. 헝클어진 파마머리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때 무심코 머리카락 없는 영을 상상했다. 내가 기억하는 영은 항상 단발머리였다. 볼륨펌으로 형태를 잡은 머리 스타일은 마치 영화 <헤어스프레이>에 나오는 주인공 트레이시 같았다. 숱은 많아 보이지만 전형적 뽀글이 파마는 죽어도 싫다던 영은 단발을 유지하면서도 본인의 콤플렉스를 가리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일과는 머리숱을 부풀리는 일로 시작되곤 했다. 스무 살부터 반복해온 프로페셔널한 드라이를 끝낸 후엔 말린 결대로 뒷 머리와 앞 머리를 정성스레 헤어롤로 말았다. 돌돌 말린 머리로 전화를 받고 빨래를 개고 국을 끓이고 운전을 하다 일을 나갈 때만 잠시 무장해제시켰다. 푸들처럼 보송보송 부푼 머리털은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다.
이번에는 나이가 아주 지긋한 대머리 할아버지가 실려 나왔다. 그새 엄마가 폭삭 늙어버린 걸까. 자글자글한 주름에 머리가 아찔하다가 다른 이가 울면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보호자는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침대 머리맡에 기댄 아줌마는 할아버지를 “아빠”라고 칭하는 것 같았다. 격하게 우는 바람에 제대로 발음하는 문장이 하나도 없어 확실하진 않았다. 실려가는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게 어리둥절해 보였다. 본인이 왜 여기 왔는지 조차 모르는 표정이었다. 적나라한 백지장. 모든 게 현실이었다.
심장이 경박스럽게 팔딱이더니 모든 땀구멍에서 열을 내뿜는 것 같은 더위가 느껴졌다. 난 영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엄마 안녕?’, “잘 있었어?”, “다들 걱정했어?”, “사랑해?” 울지 않고 한 문장을 온전히 말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다. 다음엔 정말 내 차례일 것 같아서 전신이 저렸다. 주먹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폈다.
“김미영 환자 보호자님?”
간호사 뒤로 링거를 주렁주렁 매단 침대가 다가왔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동그랗고 작다란 이마였다. 이마 위로 짧은 연회색 머리칼이 불규칙적으로 자라고 있었다. 길고 넓은 눈매와 갈색 눈동자는 천장을 맥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퍼런 핏줄이 올라온 손등엔 주삿바늘이 가차 없이 꽂혀있었다. 일시에 세상이 흐렸다.
“엄마!”
눈알도 콧구멍도 목구멍도 뜨겁고 시렸다. 뱉은 목소리가 내 것이 아니었다. 천장을 향하던 영의 시선이 잽싸게 방향을 바꿔 날 쳐다봤다. 눈빛에 생기가 어렸다. 눈썹이 바싹 올라가 이마에 주름이 졌다. 영의 얇고 긴 입꼬리가 꿈틀거리더니 입술이 벌어졌다.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어어어?”
커다란 눈망울이 꼭 구슬 같았다. 눈꺼풀을 깜빡, 감으면 곧 눈물도 또옥 떨어질 것 같았다. 침대를 밀던 간호사가 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꼭 묻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다. “누군지 기억하시겠어요?” 마스크에 걸린 눈물방울을 옷소매로 닦아내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영이 고개를 끄덕인 것만 같았다.
“엄마, 나 기억해?‘
“우우어.”
영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져 나왔다. 오랜만에 침을 삼켰고 말도 꺼냈을 것이었다. 엄마는 불편한 듯 눈살을 찡그렸다. 익숙한 미간 주름이 반가웠다.
“엄마, 내가 누구야?”
“…쟈아아. 쟈아아.”
끊어진 음절은 아주 조용했다. 영이 뻐끔뻐끔 아주 천천히 속삭인 탓이었다. 그 숨소리를 조금이라도 잘 들으려고 입술 앞까지 바싹 귀를 가져다 댔다. 완벽히 꿈같은데 기미 내린 광대와 반달 모양 쌍꺼풀과 귀에 닿은 말랑말랑한 볼 촉감이 엄마의 것이었다. 어설프게 흐르다 만 영의 눈물을 살짝 볼에서 닦아 냈다. 웃음이 나왔다. 불현듯 다시 단전이 뜨거웠다.
“엄마 아아, 흙, 흥, 킁. 정마알 다행이야. 진짜루우우, 흙, 정말 다행이야.”
비말과 물 콧물과 눈물로 젖은 마스크는 덜 마른걸레처럼 이상하고 습한 냄새가 났다. 물을 쏟아내며 영에게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간호사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병원이 떠나가라 코를 팽팽 풀었다. 비염이 심해서 꼭 눈물보다 콧물이 풍년이었다. 간신히 숨을 고르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은 환자들을 위해 천천히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