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의미 Oct 30. 2022

인풋과 아웃풋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고 영은 강조하곤 했다. 그런 사람 밑에서 자라더니 어쩔 수 없이 신중하지 못하고 말보다 몸이 나섰다. 가르친 이의 의도는 달랐겠으나 나는 줄곧 그렇게 이해했다. 목표물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베려면 행동이 앞서야 했다. 이는 종종 경솔하고 덤벙거린다는 평가로 돌아왔고 가끔 용감하다는 칭찬으로 돌아왔다. 커서 보니 영도 주변에서 비슷한 평가들을 받아오곤 했다. 직설적이고 대담하지만 잦은 실수와 예상치 못한 빈틈으로 주변을 놀래 켰다. 가끔 엄마에게서 내가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거든. 영도 나를 키우는 내내 그랬다고 증언했다. 그리하여 사실 영과 나의 효율성은 아주 낮았다. 시작은 장대했으나 끝은 미미했으며 시도해 비해 성공은 극히 드물었다.


엄마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민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변기 위에서 나를 붙잡고 있는 영과 응급 호출 벨을 듣고 뛰어온 세 명의 간호사. 화장실은 정적이 흘렀다. 영은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새벽 세시가 넘어가는 시각, 당직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간호사들은 놀라고 졸린 눈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저희 엄마가 소변줄을 빼겠다고 고집을 부리 셔서요.”

영은 왼손으로 위태롭게 나의 허리춤을 잡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손은 허벅지 옆으로 축 늘어졌다. 영은 내 배에 머리를 묻고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

“아니 엄마. 뭐가.”

“아니, 아니.”

낮고 힘이 없는 목소리는 규칙적인 거부 의사를 내뱉었다. 영은 말끝마다 나를 힘껏 쳐냈다. 영의 말에 밀려나다 보니 이제는 저항의 대상이 나인 것만 같은 착각에 속이 울렁거렸다.

“엄마 이거 빼면 또다시 차야 해.”

“아니, 어차피. 응? 어차피. 혈압도 재고. 나 혼자. 응?”

“엄마 아직 혼자 하면 안 돼. 머리 뼈 안 닫아서 넘어지면 큰일 난 다구. 수술 또 해야 한다니까?”

“아이 씨. 아니. 답답해”

간호사들도 합세했다. 어머니, 따님 말대로 넘어지면 위험해서 그래요. 당분간만은 기저귀에 일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저귀는 보란 듯이 바닥에 내동댕이 처져 있었다. 일련의 시위 같았다.

영은 멀뚱멀뚱 기저귀를 보다가 간호사들의 설득 몇 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는데 내 말은 영의 귓바퀴에도 도달하지 못했음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영은 힘겹게 변기 위에서 일어났다. 변기는 깨끗했다. 간신히 힘이 들어가는 하체로 상체를 버티면서 영은 나에게 안겨 다시 휠체어 위로 옮겨졌다. 오늘 밤만 세 번째였다. 영은 쪽잠을 자던 나를 아무렇지 않게 깨웠다.

어렵게 침대 위로 누운 영은 또 다시 머리 위를 멍하니 응시하면서 왼쪽 머리를 만졌다. 움푹 꺼진 머리를 따라 바늘 자국이 선명했다. 자국 위로 응고된 피딱지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영은 조금씩 딱지를 떼고 손으로 굴렸다가 침대 옆으로 떨어뜨렸다. 침대에는 벌레 같은 피딱지와 딱지에 붙어 있던 짧은 머리카락이 굴러다녔다. 하얀 침대 시트 위로 드문드문 핏방울들이 묻어있었다. 한참을 머리를 잡아 뜯던 영이 가만히 움직이던 왼손을 쭉 펴 손톱 요모조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세상에 남은 가장 중요한 일이 그것인 것처럼. 유사 털을 핥는 고양이 같았다. 유일하게 영이 아무렇지 않은 시간이었다.

“엄마, 내가 진짜 잘 닦아줄게. 알잖아, 나 잘하는 거. 그러니까 기저귀에 볼일 보면 안 될까?”

“………”

“아직 엄마 머리뼈 닫는 수술 안 해서 혹시나 넘어질 까봐 불안해서 그래. 엄마 잘못이 아니라 내가 부축 잘못하다가 엄마 넘어질 까봐서. 그러면 큰일 나잖아. 어?”

“………”

영은 나에게서 살짝 비켜난 곳에 시선을 뒀다. 내가 영에게 혼날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했다. 섣부른 실수를 했을 때, 신중하지 못했을 때, 영에게 받았던 눈빛을 내가 그대로 쏘고 있었다.

열을 체크하던 간호사가 흠짓, 놀라더니 잠긴 오줌주머니를 들었다. 이거 언제부터 잠겨 있었던 거예요? 아마 이것 때문에 불편하셔서 소변 줄 빼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이게 잠기면 소변이 안 흘러서 방광을 자극해요.

아까 산책하려고 휠체어에 탔을 때 잠깐 잠근 게 생각났다. 황급히 줄을 풀자 쪼로록, 고여 있던 소변이 시원하게 흘렀다. 등이 뜨거웠다. 잽싸게 영의 눈치를 살폈다. 영은 익숙하게 왼 다리 위에 핸드폰을 올리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못 들은 모양이었다. 아, 내 잘못이었구나. 축 늘어져 있는 영의 오른 손가락을 괜히 만지기 시작했다. 주먹을 줬다 폈다,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팔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힘을 준만큼 영의 팔이 이리저리로 흔들렸다.

 

새벽 다섯 시가 좀 넘으면 병실 불이 켜졌다. 간호사들이 들어와 자고 있던 사람들을 깨우고 혈압과 체온을 재고 먹을 약을 나눠주었다. 두 시간도 채 자지 못한 영과 나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 금방 반대편을 응시했다. 눈에 힘이 풀려 잠시 기댔는데 간호사가 다시 한 번 나를 깨웠다. 영의 아침은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 더 빨랐다. 준비해야할 게 많았다. 미지근한 물을 콧줄로 흘려보내고 이어 고농도 섬유질 영양제를 연결하면 영은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영은 금세 코를 골며 잤다. 어렵게 잠든 영을 깨워 몸을 세우고 침대를 올려 자세를 바로잡았다. 영의 코로 모카 라테 같은 액체 밥이 규칙적으로 들어갔다. 대략 한 시간 반 안으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게끔 영의 식사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영의 배에서 꼬로로록, 액체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영은 가만히 왼쪽 손톱을 응시했다.


표정이 심상치 않을 것을 보니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나는 영의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파?”

“……어.”

“똥배야?”

“응.”

“힘주고 있는 거야?”

말없이 영은 있는 힘껏 얼굴을 찡그렸다. 새우등처럼 오므린 등이 긴장으로 뻣뻣해진 게 보였다. 별 도움도 안 될 텐데 같이 힘을 주고 있었다.

영이 왼쪽으로 돌아 누웠다. 나는 별 말없이 물티슈를 챙기고 커튼을 단단히 닫았다. 영은 괜히 내가 쓰고 있는 마스크를 코 높이 더 치켜올렸다.

“안 맡을 게, 그리고 맡음 좀 어떠냐. 냄새 하나도 안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다는 표정으로 영은 눈을 굴렸다. 영의 비언어적 표현은 종종 언어를 능가했다. 표정만으로도, 한숨, 손짓만으로도 생생하게 의도를 전달했다. 오른손을 베고 누운 영은 코로 크게 날숨을 뱉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언제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한숨. 나는 샌들을 벗고 잽싸게 영의 침대로 올라가 빠르고 정확하게 영의 엉덩이를 닦았다.

“엄마 그거 알아? 엄마 몽고반점”

“………”

“내 거랑 완전 똑같이 생겼어!”

“………”

“엄마 기분 상해할 거 없어~ 나 매달 왁싱받을 때 딱 이 자세로 받아! 왁싱사 언니랑 떠들면서.”

‘정기적으로 왁싱도 받냐?’

고개를 든 영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막 물티슈로 닦은 엉덩이를 부채질하던 중이었다. 예상치 못한 얼굴이었다. 질문을 던지는 얼굴. 덕분에 또박또박한 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생생한 착각에 기분이 달떴다. 더 유난스럽게 부채질을 서둘렀다. 후후, 입바람도 가세했다. 부채질을 끝내고 기저귀를 치우자 영은 재빨리 벗은 하체를 이불로 가리기 바빴다. 엄마, 가서 버리고 올게. 공기 통하게 이불 좀 걷고 있어. 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왠지 이불을 더 세게 움켜쥐는 것 같았다.


영은 변을 닦은 자리를 자꾸 긁었다. 종종 내가 맡은 일은 몇 번이고 재확인해야 안심하던 그녀였다. 본인을 잘 아는 만큼 나를 알았다. 간혹, 영의 손톱 사이로 변이 묻어 나오면 영은 손을 들어 보이고는 ‘이것 봐. 아직 완벽하지 않잖아’라는 표정으로 채근했다. 여보소, 엄마야. 손가락으로 후비면 변이 안 나오는 똥꼬가 어딨냐. 내 똥꼬가 지금 엄마 똥꼬보다 더 더러워. 난 최선을 다한 거라고. 변명을 늘여놓으면 영은 또 납득이 된다는 듯 입을 삐죽 댔다. 손톱 사이로 군데군데 묻은 변 찌꺼기를 물티슈로 닦고 손세정제를 바른 다음 로션으로 냄새 코팅을 마치면 영은 자신의 손가락 냄새를 맡았다. 옆에서 조용히 영의 표정을 살피면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정쩡하게 누워 코로 아침식사를 먹던 영이 나를 불렀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손짓이었다. 깨끗하게 닦아도, 냄새가 안 난다 해도 여전히 불편한 모양새였다.

“한 번.”

“응? 엄마 뭐라고?”

“… 화. 장. 실.”

영은 단호하게 속삭였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입바람 소리만으로도 영은 익숙하게 나를 압도했다. 하아. 한숨을 깊게 쉬며 영을 쳐다봤다. 설득할 수 없는 표정이라 별수 없이 휠체어를 가져왔다. 맨발의 영은 왼손으로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고 기우뚱한 다리를 천천히 휠체어에 태웠다. 수액 줄 두 개와 코에 끼워진 밥줄이 줄줄이 영의 머리 위에서 흔들거렸다. 내 손도 덩달아 덜덜거렸다.

화장실 문을 열고 불을 켰다. 휠체어를 천천히 뒤로 뺐다가 힘을 주어 화장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휠체어를 고정시키는 사이, 영이 급하게 몸을 앞으로 숙였다. 변기 위 “낙상 주의” 궁서체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엄마, 잠깐만 기다려줘. 나랑 합이 맞아야지. 칼을 뽑은 영은 거침이 없었다. 허둥대는 날 뒤로하고 양 허벅지에 힘을 주고 안전 바를 잡은 왼손으로 상체를 지탱하더니 몇 걸음을 걸어 엉거주춤 변기에 걸터앉았다. 곧 시선을 정면에 둔 채 엉덩이를 뒤로 밀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시원한 소리가 화장실을 메웠다. 눈앞에서 칼날이 아른거렸다. 등에 땀이 고인 게 느껴졌다.

영은 손가락으로 휴지를 가리켰다. 다 끝났다는 소리 같았다. 그녀의 진두지휘 하에 나는 챙겨 온 물티슈를 열고 영의 앞에 섰다. 내 허벅지에 기댄 영의 머리는 가벼웠다. 가만히 기다리는 영을 위해 최대한 빠르게 뒤처리를 끝냈다. 눈을 감은 얼굴이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에 영은 느긋해 보였다.

변기에서 일어나려고 자세를 잡는데 영의 엉덩이 밑으로 링거 줄이 밀려 들어갔다. 휠체어로 옮겨 타면서 영은 습관처럼 왼팔에 껴진 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찰나에 영의 머리 위로 찐득한 식사가 흘러내렸다. 식사 팩과 연결된 밥줄은 맥없이 영의 어깨 위로 빠져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끈적한 것의 정체를 확인하려 영은 고개를 젖혔다. 영의 이마 위로 영의 액체 밥이 흘러내렸다. 바닥은 어느새 흥건했다.

스피드가 중요했다. 언젠가 영이 말했던 것처럼 빠르게 일을 처리하려면 우선순위가 확실해야 했다. 영의 어깨 위로 늘어진 줄을 빠진 줄과 연결하고 휴지를 잔뜩 뜯었다. 휴지 더미가 바닥의 액체를 다 먹을 동안 물티슈로 영의 등과 이마와 옷을 닦았다. 영은 자꾸 이마를 문질렀다. 무거워진 휴지 더미를 버리고 물티슈로 잔 얼룩을 닦아냈다. 영은 물끄러미 나를 관찰했다.

침대에 기댄 영을 확인하고 공용 휠체어를 창고에 가져다 놓았다. 영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던 엉덩이를 쭉 밀어 침대에 안착해있었다. 영을 확인하고 의자에 앉고 나서야 뚝뚝 떨어진 땀을 닦을 수 있었다. 에어컨은 별 소용이 없었다. 단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영은 왼손가락을 요모조모 살피고 있었다. 일말의 안도가 밀려왔다. 한참을 손가락을 살피던 영이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쟈아아.”

“응?”

“밖에 나가, 나가면, 맛있는 거. 사주우께.”

“……졸라 비싸고 맛있는 걸로. 부탁해.”

“웅. 절라.”

“또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영은 왼손을 훠이훠이 휘저었다. 커튼을 닫고 간병인 침대에 앉았다.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영을 멍하니 쳐다보다 챙겨 온 소설을 꺼내 읽었다.

 


이전 10화 7층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