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톤 벽에 눈이 쨍했다. 충격에 놀라 눈물로 떡진 눈꺼풀을 사정없이 비비는데 간호사가 팔찌가 필요하다며 나를 불렀다. 출입을 위해선 바코드가 필요했다. 팔찌를 가져다 대자 “통제구역” 자동문이 열렸다. 안내 데스크 같은 당직 간호사실과 긴 복도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복도 끝까지 새하얘서 순간적으로 울렁거렸고 이내 익숙해졌다. 얼마 안가 침대가 멈춰 섰다. 앞으로 영과 머물게 될 722호는 간호사 당직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프런트에 앉아 있던 간호사는 차트를 확인하더니 우리를 따라왔다. 영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머물고 있던 환자들 옆에 끼워졌다. 룸메이트들은 유달리 “숙”자 돌림이 많았다. “명숙”, “정숙”, “효숙”을 손으로 꼽으며 내가 아는 다른 “숙 시스터즈”를 생각했다. 그들은 주로 엄마보다 열 살은 많은 5-60대 언니들이곤 했다. 귀퉁이를 차지한 영의 이름은 조금 이질적이었다.
당직을 서던 간호사 두 명이 몰려와 영이 타던 이동 침대를 고정했다. 한 명은 긴장한 기색이었고 실무에서 한발 떨어진 한 명은 노련했다. 그녀가 수간호사인 것 같다고 생각한 건 여유로운 표정 때문도 있지만 혼자만 연갈색 상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영의 눈도 덩달아 분주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 전투적으로 사위를 누볐다. 평소라면 이것저것 묻고 따지느라 입이 바빴을 것 같았다. 궁금한 기운이 주체가 안 되는지 가끔 왼팔이 찌릿찌릿 움직였다. 다발로 연결된 링거 줄은 실타래처럼 얽혀 잘 풀리지 않았다. 간호사가 링거 지지대를 옮기고 줄을 풀 동안 수 간호사는 나에게 영의 이름과 나이, 증상과 병명을 확인했다. 이어 유의사항과 역할 읊어주었다. 얼추 열 개쯤 되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물주는 걸 잊어 죽어간 화초들을 기억했다. 시들시들하다 목이 꺾여버렸지. 지금 집에 살아있는 화초들은 모조리 애인 늘보의 관할이었다.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영은 이불에 들려 병실 침대로 옮겨졌다. 어쭙잖게 침대 끄트머리를 잡고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은 어두웠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 커튼이 걷혀 있었다. 침대는 동그란 커튼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커튼은 곧 벽이었다. 물론 소리까지 차단하지는 못했다. 침대 바로 앞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누군가 가래 끓는 기침을 숨넘어갈 듯 뱉더니 이내 잠잠했다. 때 마침 용변을 보고 나온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최근에 염색을 한 듯 머리는 검은콩 자반처럼 검고 윤기가 흘렀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간병인 없이 혼자 화장실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러웠다. 게다가 허리도 곧고 걸음도 거리낌 없었다. 할머니가 링거대를 천천히 밀면서 슬그머니 우리를 훑었다. 호기심 어린 눈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젊은 분들 같네.”
할머니는 우리 바로 옆자리였다. 옆 커튼이 흔들리자 전체 커튼이 출렁였다. 영은 불편한 표정으로 허공을 휘휘 저었다. 침대 머리맡 미등을 켜고 커튼을 쳤다. 할 일이 많았다.
발신 신호 두 번만에 확대된 아빠 코가 보였다. 넙데데한 콧등은 빨갛게 부어있었다. 이거 왜 이러지? 화면 속 얼굴들이 뒤집히더니 잠잠했다. 신호가 일정하지 않아 말들이 끊겼다. 다만 어떤 괴성은 불규칙적이지만 명확하게 전해졌다. 낮고 묵직한 야생동물 울음소리였다. 울고 있는 건 도롱이 아닐까. 그의 음역대는 베이스와 바리톤 사이였다. 독보적으로 영을 닮은 탓이었다. 이어 흐릿한 식탁 조명 아래 도롱과 아빠, 호롱이 보였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우는 도롱, 맺힌 눈물을 닦는 아빠, 애써 미소를 머금은 호롱이 있었다. 엄마는 괜찮아요, 우리는 괜찮아. 과장스럽게 손을 흔들다 퍼뜩 자고 있을 다른 환자들을 떠올렸다. 이어폰을 영의 귓구멍에 꽂으려는데 소독약이 말라 엉겨 붙은 두피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보니 좌뇌를 중심으로 머리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개두술을 진행했다 들었다. 출혈 부위 뇌압을 낮추기 위해 두개골을 절개했다고.
그럼 지금은 두개골이 없는 건가?
없어도 아프지 않은 건가?
영은 아까 한바탕 운 바람에 생각보다 차분하게 통화를 했다. 울고 있는 남편, 자식들보다 처음으로 마주한 자기 모습이 더 신경 쓰이는 듯 고개를 자꾸 이쪽저쪽으로 돌렸다.
소등 후 접힌 간이침대를 펼쳐 누웠다. 밤새 내가 할 일은 딱 하나였다. 예상치 못한 응급 상황이 생기면 비상벨을 누를 것. 낙상 혹은 화장실 미끄럼 사고를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영은 아직 다리에 힘이 자유자재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호흡이 불규칙하거나 열이 오르거나 수술부위 통증을 호소할 수 있다 했다. 일러준 간호사의 말을 열심히 되새김질했다. 과거에는 많은 경우 위급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판단보다 내 감정을 숨기기 바빴으니까. 초등학생 때 물에 빠져 익사할 뻔하거나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차에 감금돼 협박을 받을 때도 끝까지 불안한 감정을 통제하느라 주변이 읽히지 않았다.
이번엔 달라. 기민해야 해.
눈을 감고도 기도처럼 주문을 외웠다. 미세하게 영의 숨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가끔 반사적으로 일어나 조용히 영의 인중 앞에 약지 손가락을 갖다 댔다. 연약하고 따뜻한 바람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숙 시스터즈는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한 것 같았다. 아침 회진이 끝나면 촤아악, 익숙한 듯 차례로 커튼이 열렸다. “명숙이, 오늘은 왜 머리가 아파.”, “효숙이, 의사 승생님이 재활 열심히 하래잖아.” 잔소리를 서로 퍼부었다. 쉬도 때도 없는 바시락, 바시락 소리는 어수선함을 가중시켰다. 그들이 뻥튀기를 빠개고, 사과 깎고, 아몬드를 씹는 장면이 쉽게 그려졌다. 옆 칸 할머니는 이때부터 볼륨을 높여 트로트를 들었다. 친목회는 별 관심이 없는 게 확실했다. 텃세 아닌 텃세였다. 오독오독, 콰삭 콰삭, 쫩쫩 소리는 불쾌하기까지 했다. 아직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영이 신경 쓰였다. 다과회는 아침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됐다. 영은 강박적으로 커튼을 가리켰다. 틈이 벌어져 약간이라도 내부가 노출되는 걸 못 견뎌했다.
엄마 영이 종일 누워있던 날은 손에 꼽혔다. 몸이 너무 아프거나 마음이 너무 아파야 전원을 껐다. 기억 속 어떤 장면은 영이 막내 동생을 낳고 병원에서 돌아온 날이었고, 어떤 장면은 외할아버지 장례를 마친 주말이었다. 그 연장선에 오늘이 있었다. 1분이 60초로 쪼개졌다. 그 간격이, 자잘한 파편이 느껴졌다. 무한한 점 같은 순간들 사이로 치덕치덕 한 감정의 사이클이 돌고 돌았다. 우린 위태롭게 흔들렸다. 움푹 꺼진 머리 때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손과 다리를 내려다보며 엄마는 서럽게도 울었다. 겨우 돋은 딱지를 떼고 그 자리를 손톱으로 긁어냈다. 피는 뚝뚝 떨어졌다. 속상해서 화를 내고 어르다가 간호사를 호출하고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손을 침대에 묶었다. 세상이 무너졌는데 영이 못할 것은 없었다. 자그만 목소리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밖으로 나가자고. 집에 가자고. 그냥 다 때려치우자고. 한두 음절로 이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니. 애석하게도 영에게 서운했던 방식 그대로 말이 나왔다.
“엄마.”
“움……”
“자꾸 이러면 간호사 언니들한테 이를 거야. 엄마 더 꽁꽁 묶으라고.”
“우움우움.”
“그러면 안 되겠지, 그지? 더 답답하잖아. 그러니까 수술한 데 긁지 마. 집에는 엄마 다 낫고 가자. 내일 말고. 모레 말고.”
내내 엄마의 화를 잘 참다가도 몇 번은 벌컥 뛰쳐나갔다. 건너편 숙 시스터즈를 처음 본 건 그때였다. 간이침대를 펼쳐 식탁으로 만들어놓고 안고 다녀야 할 만큼 커다란 봉지에서 튀밥을 꺼내고 있었다. 딱 엄마와 노는 언니들 연배의 아우라였다. 혹시나 영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일부러 커튼을 닫지 않은 채 슬쩍 그들을 쳐다봤다. 나름의 지원 요청이었으나 셋 중 누가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안타까운 시선이 잠시 머물 뿐이었다.
복도에서 전화를 돌렸다. 가장 만만한 순서였다. 애인 늘보에게 울면서 하소연하고 막내 도롱에게 면박을 주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데. 너희들은 집이라 살 만하니? 과잉된 분노는 애꿎은 곳으로 향했다. 늘보도 도롱도 잠자코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었다. 매번 다급하게 끊으면서도 그랬다.
회진은 하루 한 번이었다. 오전 8시부터 담당 교수를 따라 레지던트, 인턴들이 돌아다녔다. 일부러 같은 병실 안은 겹치는 교수가 없게 환자를 배치한 것 같았는데 혹시나 생길 뒷말이나 억울한 마음을 사전에 방지한 것일까 싶었다. 엄마의 담당의는 호피무늬 안경테에 투 블록 머리를 짧게 친 젊은 교수였다. 터프하게 차트를 몇 번 넘기더니 지금 영의 상태를 “기적”이라 칭했다. 출혈부위가 커서 2-30센티가량의 두개골을 도려냈다고. 두개골은 안전모 같아서 잠시 벗고 있어도 괜찮았다. 기적이라잖아. 뭘 들어도 시큰둥했던 영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몇 가지를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지, 지금이 몇 년도인지. 대답을 시도하다 이내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는 표정으로 영은 나를 쳐다봤다. 뇌는 음절마다 버퍼링이 걸렸다. “예”, “아니요” 이상의 의사표현은 아직 어려웠다. “말은 천천히 돌아오실 거고 재활운동은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부터 시작하실 거예요.” 교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더 물어볼 게 있냐는 정적이 흘렀다. 의사들의 눈길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고개를 저었다.
오줌통을 비우고 돌아오는데 숙 시스터즈 중 한 명이 영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는 영은 불안한 듯 고개를 돌렸다. 긴장에서 시험을 보면 꼭 배가 쓰렸는데 그때 느낀 요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헐거운 뚜껑이 자꾸 텅텅텅 튀었다. 빈 통은 요란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과장스러운 인사는 내가 듣기에도 부자연스러웠다.
벌컹벌컹 심장이 뛰었다. 슬랩스틱 희극인처럼 분주히 쓰레기를 치우고 불편하게 앉아있던 영의 자세를 고쳤다. “아이고, 딸이 고생이네! 아주 효녀야, 효녀. 엄마가 젊은데.” 뒷통수를 보고서라도 그녀는 하고픈 말은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면전에 대고 커튼을 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했다. 괜히 침대 시트 얼룩을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숙 시스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른 건 아니고 이것 좀 먹으라고. 돼지감자인데 옆 침대 언니가 직접 말린 거라네.” 내민 봉지 안에는 감자칩이 한 움큼 담겨있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듣고서야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커튼 경계 밖으로 나갔다. 촤르르륵, 결계를 재정비하고 털썩 주저앉았는데 영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입술을 떨었다. 그녀의 입술처럼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좃같아. 좃같아서 안 먹어. 엄마 난 효녀 아니야. 하나도 안 힘들어.”
물티슈로 영의 얼굴을 닦았다. 곧 쿨쿨 숨소리가 짙어졌다.
복도 건너편 휴게실로 향했다. 넓은 통창은 물때가 너저분하게 끼어있었다. 밖으로 너른 공원이 펼쳐졌다. 허리를 뒤로 꺾어 누울 기세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감자칩은 짭조름하고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