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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의미 Oct 04. 2022

가위바위보

간발의 타이밍으로 죽지 않았다는 모험담만큼 짜릿한 건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 상황, 절묘한 우연과 마주하여 종내 생존에 이르렀는지. 간발의 차를 얘기할 때면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척추가 찌르르 울렸다. 그 맛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여름엔 사하라 사막, 겨울엔 무르만스크를 들렀다. 극한의 경험은 성장에 필수요소처럼 보였다. 다분히 자초한 일이었음에도 고통스러웠고, 성장통이려니 했다. 이런 경험이라도 없으면 내가 너무 별 볼일 없었다.


나의 싸가지가 사라질 때란 이 “성장담”에 대한 판타지가 타인에게로 옮겨갈 때였다. 보통은 쉽게 재단하고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영에게는 날 비린내 나는 생각을 속 편하게 말했다가 아차, 하고 입을 닫았다. 어쩐지 당연시해온 영의 보살핌에 대해 특히 무심했다.

“엄마는 그냥 ‘김미영’으로 살아, 난 ‘누구 엄마’보다 그게 더 좋아.”  영은 나에게 화를 퍼붓다가도 금세 골똘해졌다. 내가 이기적인 모양새가 딱 본인 같다는 것이다. 욕구 결핍으로 인한 자존감 결손이 원인일 것이라 추측했다. 내 감정에 엄마의 해석 따윈 필요 없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존심이 부스럼처럼 긁혀 떨어졌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발견한 영의 일기장을 모르는 척 자주 훔쳐보곤 했다. 그 시기 난 자주 영에게 매를 맞았다. 동생과 싸우거나 거짓말을 하면 어김없이 영은 때릴 태세를 갖췄다. 장난감 칼이나 효자손이 자주 영의 손에 들렸지만 보통은 그냥 손바닥을 사용했다. 화가 폭발한 영은 매를 찾을 정신도 없었다. 그런 영의 일기장을 정독한 건 혹시 내가 진짜 주워온 딸은 아닐지 의심이 들어서였다. 스물다섯 살 엄마의 머릿속에는 별 희한한 감정들이 애달프게 끓어 넘쳤다. 몇몇 단어들은 무슨 뜻인지 몰랐어도 그냥 이해가 됐다. 볼펜이 오래 남아있던 글자는 꼭 볼펜 똥이 남아있어서 더 유심히 앞 뒤 문장을 살펴봤기 때문이었다. 나를 낳아서 행복하다는 건지 불행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쑥쑥 크는데 왜 마음이 아픈 건지, 처음으로 눈을 맞췄는데 이어 허망함이 밀려오는 건 뭔지. 감정의 이유를 묻는 문장이 많았다. 본인이 “자초한”, “선택한” 일이라는 말이 역접과 함께 등장했다. 일기장을 읽으며 미리 울어두었다가 영에게 맞을 때는 꾹 참았다. 영은 내가 감정이 없는 아이인가 싶어 더 세게 때렸다. 시간이 지나 빨갛게 부은 허벅지와 엉덩이가 푸르뎅뎅해지면 후시딘을 가져와 발라주었다. 울음이 역류할 것 같았지만 참았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혼란스러웠다.


영은 자꾸 비교했다. 쌍꺼풀이 진하고 속눈썹이  동생보다 동양적인 나를, 같이 영어를 배우는 친구보다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살찐 나를, 표현이 서투른, 둔한 나를 자꾸 데려왔다. 특별히 내가  미워서라기 보단 자식 모두에게 그랬다. 그건 영의 화법이었다. 감정의 진탕에 빠뜨리고선 혼자 훌쩍 떠나버릴  마냥  발짝 물러서기.  능청스러운 거리두기가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렸다. 덕분에   일기를 꾸준히 써가는 어린이가 되었다. 역시 글이 쉬웠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차마 못했던 말들과는 다르게 종이 위에선 거칠고 과장스러운 문체를 만들어냈다.  때의 나와 말할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영이 죽을 뻔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건 아빠를 통해서였다. 무더운 여름 어느 꼭두새벽에 양수가 터졌고, 잠이 덜 깬 당직 의사가 대충 봉합을 하고 수술을 끝내버린 탓에 영은 과다출혈로 쇼크상태였다고. 늘 “그러니까 엄마 말 잘 들어!” 같은 교훈적인 말을 덧붙이며 말이 끝나곤 했지만 난 그 얘기가 아빠가 전해준 이야기 중 제일 좋았다. 그때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히 그리며 말을 따라가면 내가 조금 소중해졌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구체적으로 물었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아빠는 의사에게 어떤 쌍욕을 퍼부었는지. 깨어난 엄마는 제일 먼저 무얼 물었는지.

   

8월의 새벽녘 문득 깨어난 영은 눈을 열심히 깜빡였다고 했다. “네”는 한 번. “아니요” 는 두 번.


“환자 이름이 김미영 맞나요?”

깜빡.

“머리가 아프세요?”

깜빡. 깜빡. 깜빡

“지금이 2021년도 맞나요?”

깜빡.


며칠이 지나자 고개도 가눌 수 있었다. 예, 아니 오를 고갯짓 했다.


또 며칠이 지나자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었다. 마비가 왔던 오른손은 움직이지 않지만 왼손으로 천천히 바위, 보, 가위 모양을 만들어냈다. 바위는 쉽고 보와 가위는 천천히 노력하고 있다고 간호사는 전했다.


스피커 폰 앞에 모여 앉은 우리는 그 장면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넓은 영의 이마, 희미하게 접힌 목선, 여러 겹으로 늘어난 쌍꺼풀, 입을 벌려 쳐진 아랫입술, 밝은 갈색 눈동자. 전화가 끝나면 영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실어 날랐다. 어떤 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신화, 민담, 전설보다 더 기적 같은 이야기. 별 수 없이 흥분된 목소리로 어쩔 수 없는 과장과 눈물을 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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