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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l 04. 2017

36. 쉽게 살면 행복해선 안 되는 걸까?

쉽게 얻은 행복이 불안하다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열심히 사는 것 같다. 당신이 적어도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까지 생계를 위해 움직였다면 당신은 열심히 사는 거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신은 열심히 사는 거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예요.

 원하는 목표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차곡차곡 모은 월급으로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이 목표인 회사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인 고시생,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인 운동선수. 음, 또 어떤 게 있을까. 아, 오늘 하루 무사하게 지나가는 것이 목표인 방랑하는 여행객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어찌 됐든 공통점은 모두 열심히 산다는 것.

 어떤 목표가 됐든, 어떤 가치를 위해서든, 우린 모두 열심히 산다. 그것이 삶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배워왔다. 그리고 솔직히, 계속 살기 위해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나도 열심히 살았다. 사실 '내 인생을 전부 바쳤어요'라고 말하긴 부끄러운 노력들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정도는 쳐줄만하지 않을까 싶은 시간들을 보내왔다. 중학교 땐 원하는 고등학교 합격을 위해 열심히, 고등학교 땐 원하는 대학 합격을 위해 열심히, 20대가 되어선 그냥 막연한 미래가 두려워서 열심히,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쉽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언짢아진다. 금수저 물려받아 원하는 거 다하면서 사는 부잣집 자식들이나, 뜬금없이 스타가 되어버린 낯선 얼굴의 연예인, 옷 까지 벗어가며 별풍선으로 제 지갑을 두둑이 채우는 인터넷 방송 bj를 보면 내 인생이 조금 허무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건 끝이 없는 삽질이 아닐까 싶어 지기도 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내겐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열심히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한 숟갈 더 보태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어쩐지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은 언젠가 불행하게 되어있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의 가치는 이미 내 DNA 속 뿌리 깊이 박혀버렸다. 열심히 노력해 성공한 사람들이 그 가치를 증명하듯 각종 매스컴과 책 속에서 쏟아져 나오지 않았는가. 이건 거의 종교에 가까울 정도다.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이 말인즉슨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와 같은 뜻이니 '쉽게 사는 삶'에 부정적 시선을 던지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적당한 자기 합리화나 정신 승리일 수도 있다. 어떤 강한 유혹이 생기면 이런 생각은 언제 또 다르게 제 모습을 바꿀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도 장담 못 한다.

 그러나 아직 그럴만한 유혹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인 걸까. 여전히 나는 '열심히'에 완전히 젖어있다.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가진 게 없는 나도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내가 가장 불안한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다. 특히 휴가나 방학 같은 때는 그 불안함이 더 커진다. 대학 생활 5년 중 휴학을 했던 2년간 나는 얼마나 불안해했던가.

 이건 어쩌면 '열심히' 중독의 일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열심히'의 가치는 무언가를 '꾸준히' '끈기 있게' 하는 것에 있는데, 쉬는 순간엔 '열심히'란 끈을 그만 놓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걸까, 지금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걸까,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데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쉬는 시간은 쉬는 게 아니게 된다.

 비단 나뿐만일까. 사람들은 모두 이 종교 같은 '열심히'에 중독이 되었는지 쉬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것만 같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라는 CF의 유명한 카피도 있지만, 떠나서도 열심히를 버리기란 쉽지 않다. '열심히'라는 것엔 바로미터가 없기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 밤을 새워가며 큰 프로젝트를 끝마쳤다고 해도, 그 노력으로 집 한 채는 커녕 방 한 칸 얻기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덴 기약이 없기에 쉬는 것도 쉬는 게 아닌 게 되어버린다. 순간의 달콤한 행복에 미래를 담보로 한 '열심히'를 양보할 순 없는 것이다. 어찌 저찌 '순간의 달콤한 행복'을 택했다 해도 그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자신은 스스로를 마치 사람 아닌 똥 만드는 기계처럼 느끼기도 한다.(지금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심장이 쿡쿡 쑤신다.)


 정줄을 놓고 놀아본 게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로 나는 늘 내일을 위한 삶만을 살았다. 이렇게 적으면 엄청 열심히 산 사람 같은데 그건 또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란 압박에만 시달릴 뿐, 실천은 잘 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인간입니다. 후후.

 쉽게 얻은 물질이나 상황이 생길 때도 불안함을 느낀다. 쉽게 얻었으니 물거품처럼 쉽게 사라질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쉽게 얻은 행복마저 불안하다. 행복이란 감정만은 그 과정이 어떻든 간에 온전히 느끼고픈 것인데 그게 잘 안된다. 열심히 해서 얻은, 스스로에게 타당성이 있는 행복 이어야지만 온전히 그 감정을 만끽할 수가 있다. 어쩐지 슬픈 얘기다.

 그래서인지 쉽게 살며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함을 느낀다. 그들이 택한 '순간의 행복'은 결국 미래에 파국을 가져올 것이라 나도 모르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다. 음, 저주는 좀 과격한 표현이고 귀엽게 질투 정도로 해두자.


 그런 그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한편 그래도 난 여전히 '열심히'엔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이다. 국민들이 김연아 선수를 사랑한 이유는 그녀가 이뤄낸 업적 때문이기보다 그녀의 노력 때문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그녀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희망을 봤던 것이다. 아무리 열악하고 힘든 환경이더라도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동계 올림픽이나 피겨 시즌이 되면 불었던 '김연아 열풍'은 어쩌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어왔던 숨은 가능성을 발견한 일이었던 것이다.

 희망을 품고 있기에 움직이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여 흘린 땀은 숭고하다. 그래서 제아무리 쉽게 사는 인생이 큰 행복을 보장해준다 하더라도 '열심히'보다는 더 큰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쉽게 살면 행복해선 안 되는 걸까요?

 제목으로 던진  이 질문에 답을 할 시간이다. 네, 쉽게 살면 행복해선 안돼요. 쉽게 사는 데다 행복하기까지 하겠다, 이거 이거, 너무 욕심입니다. 하나만 하세요, 하나만. 쉽게 사는 사람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야 해요. 쉽게 살면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열심히 사는 사람보단 덜 행복하세요. 그래야 열심히 사는 사람들 덜 억울하니깐.

 그리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좀 더 쉽게 살아도 됩니다. 우리 모두 김연아가 될 수는 없잖아요.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살았어요. 가끔은 농땡이도 좀 피우고, 일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꼼수 좀 써 가며 적당히 일처리를 해도 괜찮다고요.(물론 제가 책임질 건 아닙니다. 후후.) 그럼으로써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적극 대환영입니다. 당신은 그래도 되는 삶을, 충분히 열심히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왜, YOLO라는 말도 유행이잖아요. You only live once! 단 한 번뿐인 인생. 열심히만 살다 가기엔 당신의 젊음이 너무 아까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열심히'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싶다면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놀 때도 '열심히' 놀면 됩니다. 가장 조심할 것은 해파리 마냥 의식 없이 둥둥 떠다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놀 때도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놀자. 죽을 때까지 놀자. 후회 없이 놀자. 쉽게 사는 게 어렵다면 놀 때도 쉴 때도 열심히, 늘 그래 왔듯 '열심히' 해서 끝장을 보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 혹은 열심히 산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친다. 수고했어요. 일을 했건, 정줄을 놓고 놀았건, 당신은 '열심히' 하루를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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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nstagram.com/bpm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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