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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l 21. 2017

40. 굳이 책을 사서 읽는 이유

사라지는 것에도 영원한 것이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5년 안에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하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이 사라졌다. 많은 것을 사라지게 한 범인을 공개 수배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대표 격 수배범 되시겠다. 스트리밍 서비스란 문자 그대로 실시간으로 물 흐르듯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뜻한다. 실시간으로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이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서비스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이용하는 익히 낯설지 않은 서비스다.

 이 서비스로 무엇이 사라졌느냐. 왜, 이젠 그마저도 존재가 미비하였던 CD 앨범이나, 비디오 같은 것들의 존재감이 더 희미해지지 않았는가.

 이젠 가수들의 앨범 판매량은 가요 프로그램에서 순위를 결정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특정 아티스트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한 구매까지 이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어진 것이다. 그마저도 감상용이 아닌 기념용이다.

 일본의 가수 하마사키 아유미가 USB로 음반을 제작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젠 지드래곤도 같은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한다. LP에서 테이프로, 테이프에서 CD로, CD에서 USB로. 다음 종착지는 어디일까?

 우리 동네의 만화책방도 사라졌다. 추운 겨울, 누나와 함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손톱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귤을 까먹으며 만화책을 읽곤 했는데. 한 권에 200원, 두꺼운 건 300원 하던 만화책을 다 읽고 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추위와 귀찮음을 무릅쓰고 기어코 다음 권을 빌려오곤 했었다. 그런 시큼한 귤 냄새가 풍기는 추억들은 이젠 다시 만날 수가 없다. 불법 스캔본이 판치는 세상, 스마트폰 스크롤을 죽죽 내려가며 만화를 봐도 되는 세상이 도래하였으니.

 이젠 영화도 스트리밍으로 서비스한다. 여전히 극장은 극장만이 가진 낭만과 분위기(고로 '경쟁력')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젠 극장도 아날로그스러운 추억이 될지는.

 최근에는 '패션 스트리밍' 이란 서비스도 생겼다. 월정액으로 돈을 지불하고 원하는 옷을 빌려 입는 것이다. 비싸거나 구하기 힘들어서 입지 못한 옷들을 빌려 입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는데, 덤벙대는 나는 옷에 케첩이라도 흘릴까 무서워 절대 못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빌리는 것이 옷뿐만이랴. '에어비앤비'는 누군가의 집을 빌리는 것이지 않나. 이렇게 보니 4차 산업혁명은 내 것을 소유하는 것보단, 빌려 쓰는 것이 어울린다는 흐름을 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CD도, 비디오도, 옷도, 집도 소유하지 않는다. 스트리밍으로, 실시간으로 빌리면 그만이다. 어느새 그런 세상이다.


 나 또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애용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나라고 이런 흐름을 안 따르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서비스 중 '패션 스트리밍'을 빼곤 이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 심지어 어떤 건 애용자다.

 빌려 쓰는 것은 편하다. 저렴하고, 경제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릴 수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쓰레기가 남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샀다가 아깝다고 꾸역꾸역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금방 주인에게 돌려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도 딱 하나, 내가 '굳이' 빌리지 않고 사는 것이 있다. 책. 책이다.(췤췤 아닙니다.)


 나는 예전부터 책은 꼭 사서 읽었다. 대부분은 한 번 읽고 말거나, 또 요즘 책값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염두한다면 돈이 아깝게도 느껴질 만 한데 이상하게 책에 쓰는 돈은 아깝지가 않았다.

 물론 모든 책을 돈 주고 사 읽는 것은 아니다. 한번 빌려서 읽어본 책이 마음에 들었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거나, 책의 디자인이 취향을 저격했을 때 구입한다. 그렇기에 실패할 확률도 낮고, 이 말인즉슨 책을 손안에 넣었을 때 만족감이 크다.


 책을 굳이 사서 읽는 이유는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낯선 책장에 꽂힌 무수한 책들 중 하나를 '내 책'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랄까. 빌려 쓰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에서도 무언가를 소유하는데서 오는 만족도, 즉, 그 가치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앨범 CD 제작이 의미가 없어졌음에도 계속 제작되는 이유, 하마사키 아유미와 지드래곤이 USB로나마 음반을 제작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소유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일 것이다.

 LP에서 테이프로, 테이프에서 CD로, CD에서 USB로. 그 모습만 달라졌다 뿐이지 사실 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 형태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럼에도 지드래곤이 USB로 제작한 음반을 발표했을 때 꽤 오랫동안 잡음이 끊이질 않은 것은 이해할만하다. USB 다음은 어디인 건가, 싶었겠지. 사람들은 더 이상의 변화로 잃게 될 소유의 가치가 두려웠던 것이리라.

 나도 이 세상의 콘텐츠들이 소유할 수 없는 형태로 변해가는 것이 두렵다.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여전한데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사라져 간다. 지키고 싶은 영원함은 카메라로 사진 찍듯 마음에 새겨둬야 하는 판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는 것 같다. e북 같은 것이 등장했음에도 굳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국민들의 독서량이 줄어들며 그에 따라 독서 판매량도 뚝뚝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책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누군가는 굳이 그 책들을 산다. 어쩌면 '굳이' 사서 읽는 행동을 한다는 건 영원한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라는 거 아닐까.


 책을 사서 읽는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는 이유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머지않아 시들 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빛깔과 향을 소유해줬음 하는 그런 마음.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향유하겠다는 그 마음. 경제적인 면이나 실용적인 면에선 0점이더라도 말이다.
 책 표지의 질감과 색감, 종이를 넘길 때 느껴지는 빳빳한 감촉, 책장을 넘길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은은하게 풍겨오는 종이 냄새. 그리고 어쩐지 온도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까맣게 인쇄된 아름다운 문장들. 책이라는 이름의 꽃을 책장이란 이름의 예쁜 유리병에 하나하나 담아두고 있자면 무언가 충만한 것이 심장 깊숙한 곳으로 번져오기까지 한다. 새 책과 마주할 때 느껴졌던 순간의 빛깔과 향은 빛에 바랄지언정, 읽고 나면 가슴속에 영원한 무언가가 남는다. 마치 꽃처럼. 사라지지만 다른 형태로 영원한 것, 그런 의미로 꽃과 책은 많이 닮았다. 사라지는 것 속에서도 영원한 게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 속에도 영원한 것이 있다. 아무리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해도 절대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투성이다. 굳이 음반을 사지 않아도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굳이 사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것이 책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소유하겠다는 건 대체할 수 없는 영원한 무언가로 가슴을 적시고픈 욕심 때문이 아닐까.

 쓰레기가 남아도, 귀찮고 성가셔도 괜찮다. 이것만큼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그러니까, 안 해도 되는 걸 굳이 하련다. 꽃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책을 선물하련다. 그리한다해도 너무 빠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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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nstagram.com/bpm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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