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홋카이도의 설원 ; hokkaido, 2015

by SHUN

너의 의미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있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의 단순한 눈빛과 손짓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것처럼, 강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라면 더욱이 의미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은 너무 쉬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 어떤 감정에도 이유를 갖다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리어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울 때도 있다. 그 어떤 개 같은 경우라도 인생을 공부한다는 의미를 붙여버리면 되니까. 혹자는 이를 보고 정신승리라 했다. 정신승리면 어떠하리. 내가 사는 세상, 그 기준은 나인걸.


그러나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려 해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요동치고 있고, 이것에 어떠한 이름이라도 붙여주고 싶은데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때 말이다. 얼마 전에도 몇 번인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반년 간 준비한 무대를 마치고 마무리하며 사람들 앞에서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미친 듯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어쩔 수 없는 이유라도 갖다 대며 정신승리라도 하고팠지만 흘러내리는 눈물 앞에서 나는 불가항력이 되었다. 몇 달 전에 그런 적이 한 번 더 있다. 어린 배우들이 나오는 뮤지컬 공연을 보던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친 듯이 울고 있었다. 이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끊임없이 되물었지만 마땅한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얀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


한겨울의 홋카이도에서 만났던 새하얀 설원이 생각난다. 발자국 하나 찍혀있지 않은, 과연 끝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싶었던 눈이 부실정도로 하얗고 또 하얬던. 나는 그곳의 한 가운데 서서 까만 동공을 하얀 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러자 광활한 새하얀 빛이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으로 가슴 깊이 차올랐다.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아니, 부여할 수 없는, 최근에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으로 말이다. 그때 느꼈다. 아, 하얀 것을 보면 이런 눈물이 나는구나.


사람은 가장 순수한 것과 마주 했을 때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홋카이도의 설원과 마주했을 때처럼. 얼마전의 경험들도 다르지 않았다. 내 안의 가장 순수한 무언가가 나의 자아와 정면으로 부딪힌 순간들이었다. 가장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모든 걸 쏟아부었던 공연이 끝났을 때, 그리고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을 때, 순간 나는 끝없이 펼쳐진 홋카이도의 설원 한 가운데에 놓여졌다.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맑고 깨끗한 순수함이 심장 속에서 팽창하여 터지던 순간이다.




가장 단단한 눈물


한점 부끄럼이 없는 가장 깨끗한 순수함은 눈물을 부른다. 대자연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벅찬 감동은 그런 순수함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순수함에는 어떤 인위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단단한 힘이 있는 것이다.


홋카이도의 끝없는 새하얀 설원은 내게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네 마음 속에도 이 설원이 존재하고 있다고. 아직 순수함을 잃기엔 너는 너무 맑고 깨끗하다고. 그래서 내 안의 순수함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난다. 의미 따위 알 수 없는, 알 필요도 없는 가장 단단한 눈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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