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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Apr 07. 2017

24. 인절미 찬가

너와 나의, 소울푸드(4) 인절미

 말란족의 오랜 전통 중엔 '말랑말랑'을 스무 번 외치면 모든 만사가 말랑말랑하게 풀린다는 의식이 있다. 물론 거짓말이다. 당연히 그런 의식이 있을 리 없고 말란족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말랑말랑한 것을 좋아한다.

 말랑말랑한 것이 좋다. 말랑말랑한 아기 볼살을 꼬집는 것이, 말랑말랑한 젤리를 입 안 가득 채워 넣는 것이, 말랑말랑한 만득이를 쪼물딱 거리는 것이, 말랑말랑한 베개 속에 얼굴을 묻는 것이 좋다.

 말랑말랑이라는 단어부터가 예술이다. 말랑말랑한 날씨, 말랑말랑한 기분, 말랑말랑한 노래, 말랑말랑한 뱃살, 어디  갖다 붙여놔도 너무나 말랑말랑하다. 정부는 이 단어 사용을 적극 권장하여야 한다. 뉴스의 클로징 멘트로도 손색이 없다.

 "시청자 여러분, 그럼 말랑말랑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시청자의 복잡했던 하루의 노고도 마시멜로처럼 녹아들어 말랑말랑 해 질 것이다. 아, 말랑말랑해.

 사실 처음부터 말랑말랑한 것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기피하고 싶은 쪽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내가 말랑말랑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무언가 잔뜩 물고 있는 것 같은 포동포동한 나의 볼살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기 딱 좋아 매일같이 꼬집혔다. 그때부터 난 말랑말랑과 거리가 먼 것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각지고, 딱딱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것들, 그런 것들 말이다. 일부러 검은 옷만 입고 다니며 시크한 척해보기도, 반삭에 스크래치를 새겨 넣곤 패기 넘치는 열혈남아의 이미지를 연출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말랑말랑은 영원한 말랑말랑. 시커먼 옷들도, 불성 사나운 스크래치 빡빡이 머리도 나의 말랑말랑함을 감추진 못 했다. 본능처럼 말랑말랑한 것에 저절로 이끌렸기 때문이다. 자꾸 말랑말랑한 캐릭터가, 말랑말랑한 음식들이 좋아졌다. 속으로 '이러면 안 돼'를 외치며 자중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말랑말랑, 그 안에 있는 내가 자꾸만 나를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인절미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갑자기 웬 인절미야, 싶겠지만 이건 필연적인 전개다. 왜냐. 인절미는 말랑말랑 하니까. 나는 말랑말랑하고, 말랑말랑 한 것은 인절미.(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었던 나와 말랑말랑의 운명적인 관계처럼 인절미와 나의 관계는 역시 운명이었다. 인절미는 나와 정말 닮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인절미는 나와 닮은 점이 너무나도 많다. 우선 첫 째, 말랑말랑하고, 둘째, 허여 멀 건한 데다, 셋째, 매력이 넘친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를 간과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 사실 나는 매력 있습니다. 헛웃음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다. 이렇게 세 박자가 딱딱 들어맞는데 어찌 운명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내가 만약 떡으로 태어났다면 인절미였을 것이고, 인절미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내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의 매력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설명할 매력이 없는 건 아닌가요) 다행히도 인절미의 매력은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인절미를 위한 세레나데를 불러보려 한다. 자, 귀들 막지 마시고. 나 뮤지컬과예요.


 (자유롭게 음가를 붙여 읽어보세요. 노래하는 중입니다.)

 우선 인절미는 맛있다. 인절미는 흑임자 인절미든, 콩가루 인절미든, 팥 인절미든 다 맛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갓 쪄낸 따끈따끈한 인절미를 빼놓곤 인절미를 논할 수 없다. 갓 쪄낸 인절미는 뭐랄까, 차라리 예술이다. 갓 쪄낸 인절미를 콩고물에 두어 번 몸을 굴린 후 입안으로 골인시키면 '전생에 내가 나라를 구했었구나', 싶어 진다니까.(전생에 내가 나라를 구했었구나 ←코러스입니다.) 그렇다고 식은 인절미가 맛이 없느냐, 천만의 말씀. 적당히 식은 인절미는 쫀득함이 더해져 또 다른 식감을 자랑한다. 입 안 가득 머금어 맛있게 씹어 목구멍으로 넘긴 후 우유 한 잔 까지 마셔주면, '고소함'이라는 단어는 이 순간을 위해 탄생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짜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다들 집 냉장고에 처치 곤란한 떡이 한 두 덩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만약 인절미라면 당장 꺼내라. 그리고 프라이팬에 기름 두 바퀴 둘러주고 가장 약한 불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줘라. 눈 앞에 무엇이 보이는가. 구운 인절미? 아니다. 그것은 구운 인절미의 탈을 쓴 천국이다. 이 경건한 음식을 그냥 목구멍으로 넘길 수는 없다. 기도한다. 인절미의 수호신에게. 참고로 인절미의 수호신은 천사다. angel. 에인절.(저도 이것만은 안 하려고 했습니다만...)

 만약 인절미의 매력이 이것에서 끝이었다면 이렇게 시간 들여 노래 부를 일은 없었을 것이다.(잠시 잊었을까 봐 상기시켜 드립니다. 지금 노래하는 중입니다.) 인절미의 외모는 또 어떠한가? 미니멀리즘의 극치이지 않은가! 어떠한 모양을 내는 것도, 화려한 색소를 사용하는 것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네모난 모양,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뿜어내는 아우라는 어떠한가. 다른 떡들이 화려한 외모를 지닌 스타라면, 인절미는 뚝심 있는 배우 같지 않은가. 치장하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엄청난 아우라를 뿜어내는 배우 말이다. 오직 연기로만 승부하는 그들처럼 인절미 또한 맛으로 승부를 본다. 인절미의 절제미, 어쩌면 미니멀리즘의 태동은 인절미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이쯤 되면 나를 좀 미친 사람으로 의심할 것도 같다.)


 인절미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갑자기 너무 먹고 싶다. 그러고 보니 인절미를 못 먹은 지 꽤 오래됐다. 예전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식탁 위에 구운 인절미가 놓여있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없다. 구운 인절미는 밥 굶지 말라고 엄마가 준비해 놓은 작은 배려였는데, 만들어 놓은 지 시간이 한참 지나 기름을 머금은 채 딱딱해져 있었다. 그게 그립다. 갓 쪄낸 인절미도, 갓 구워낸 인절미도 아닌 게 이상하게 그립다. 식은 데다 기름까지 잔뜩 먹은 그 인절미 말이다. 이상하게 말랑말랑한 기분이 드네. 인절미 찬가에 추가해야겠다.(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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