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해우소

토지개혁 중심으로 돌아본 해방 후 역사적 사건

사실의 나열에서 진실을 찾다.

by 도연아빠

건국준비위원회 1945년 8월~9월
일본군 철수 개시 1945년 9월 30일
미군정 고문회의 운영 1945년 10월
주한 일본인 철수 1945년 10월 ~ 1946년 2월

(일본인들의 토지 및 건물 등 부동산 처분)
여운형 주도의 인민위원회 1945년 9월~12월

(일본인 재산 처리 등 배분방안 논의)


미군정 민주의원 운영 1946년 2월

(인민위원회 해산)

북조선 인민위원회 토지개혁 실시 1946년 3월 8일

(개인당 토지보유면적 제한, 무상몰수 무상 분배)
정판사 사건 1946년 5월(미군정의 조선노동당 탄압)


미군정의 여론조사 1946년 6~8월

(사회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중 선택/ 사회주의가 다수로 선택됨)


9월 총 파업 1946년 9월(조선노동당의 반격)


미군정 입법의원 선거 1946년 10월

(미군정 주도의 임시국회이며 민족반역자 처벌을 최초로 법제화함)

대구 10월 1일 사건 1946년 10월

(미군정 경제정책에 반대)
제주도 경찰 발포사건 1947년 3월 1일

(제주 4.3 사건의 원인)

여운형 암살 1947년 7월 19일

(인민위원회의 리더 살해됨)
제주 4.3 사건 1948년 4월 3일


제헌의회 의원 선거 1948년 5월 10일
제헌헌법 공포 및 정부조직법 통과 1948년 7월 17일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헌법/ 기업 등 국유화 조치 포함)
초대 대통령 선거 1948년 7월 20일
법전편찬위원회 구성 1948년 9월


여수 순천 사건 1948년 10월 19일

(제주도민 등 인민위원회 토벌에 반기를 든 좌익 군인들의 봉기)

국가보안법 제정 1948년 12월

(일제강점기 보안법 부활)


여수 순천 사건 주도 인물 모두 사살 1949년 2월

(군부 내 좌익 색출 및 학살/ 백선엽이 박정희 살려줌)


국민보도연맹 조직 1949년 6월 5일

(사회주의에 빠진 국민들 교화를 목적으로 함)


반민특위 습격 사건 1949년 6월 6일

(군부 내 좌익 세력이 제거되자 친일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함)


농지개혁법 1949년 6월 23일(유상매입 무상분배-> 유상매입 유상분배/ 자본주의 농지정책)


김구 암살 1949년 6월 26일

고등고시령 1949년 8월 23일
학도호국단 창설 1949년 9월 (여수 순천 사건 시 다수 학생들이 좌익계열에 가담/ 학교 내 친정부 리더 양성)


농지개혁법 개정 1950년 3월

농지개혁법에 따른 토지분배 1950년 4월~5월

한국전쟁 발발 1950년 6월

(농지개혁법 전면적 실시 연기됨)


분단의 시작은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토지 등 부동산을 남북이 달리 처리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공산주의적 토지개혁 조치를 하였고 남한은 인민위원회가 해산된 후에 미군정 주도의 무상분배(좌익)냐 유상분배(우익 및 친일파)냐의 투쟁서 유상분배로 정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는 무수한 희생이 있었다.


평생 소작인으로 또는 독립운동가로 살아온 이들에게 토지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이 있었을까?

아울러 독립운동가의 후손 등 유공자나 고아들은 어떻게 토지를 구입할 수 있나?

지금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마치 최저임금을 받는 국민이 대다수인 환경에서 최소 2~3억 원대 아파트를 공급하여 무주택 서민을 없게 하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낭랑 18세라는 노래가 1949년에 나왔다.

당시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담긴 노래라 생각한다.

https://youtu.be/SVjnv1v7PR0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에 출시된 또 하나의 노래

https://youtu.be/r8Actjxi6eM



낭랑 18세 소녀의 5년 후 심정이 봄 날이 간다라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희극이다.


어쩌면 우리의 부동산 문제는 1950년 5월에 멈춰진 과제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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