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해우소

고려와 훈민정음

한글날에 고려를 생각하다

by 도연아빠

역사는 문자로 기록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 이전 시대는 문자가 없거나 문자인지 그림인지 해독이 불가능한 시대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한자가 있었다.

한자는 갑골문을 시초로 한다.

갑골문은 제사장이 거북이 등껍질을 구워서 나오는 모양을 일정한 신의 계시로 해석한 것이다.

즉, 갑골문은 신과 제사장의 대화 수단인 것이다.

뜻은 표준화되어도 발음은 제사장의 개인적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었으리라.


갑골문이 한자가 되어 사람 사이의 대화 수단이 되면서 발음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의 논의는 이렇게 정리되었을 것이다.

국가 내에서는 왕궁 인근에 거주하는 집단들, 국외에서는 지금 미국과 같은 패권 국가 발음이 표준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문자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고구려, 백제는 말이 통했으나 고구려와 신라는 백제의 통역원이 있어야만 가능했다고 한다.

고구려와 백제의 발음 소리는 같지만 신라와는 다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신라는 성골 및 진골, 그리고 육두품과 백성들 사이에도 발음 소리가 다르지 않았을까?

(1945년 8월, 일왕의 항복선언문 방송을 다수의 일본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총이 만들어낸 것이 신라만의 한자 표기법 '이두'라고 생각한다.


신라를 계승한 고려에서 이두는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고려는 국제적인 해상 무역국가였고 멀리 중동에서도 상인들의 왕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지배 하에서는 육상을 통해서도 많은 상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태조 6년에 태어나셨다.

어린 세종이 만난 다수의 어른들은 고려인들이었다.

세종대왕은 신라가 만든 이두(한자 발음의 한글화)를 기초로 고려시대에 중동과 아프리카 등 다양한 민족의 발음도 효율적으로 한글화하여 발음할 수 있게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 아닐까?


문득 고려가 우리가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배운 것보다

엄청난 강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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